질문도 추측도 할 수 없는 이야기

크리스마스를 맞아… 친구들과 놀던 중 어쩌다가 성애性愛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이야기의 시작은 어떻게 사람을 사랑할 때의 첫 번째 기준이 성이 될 수 있을까, 하는 것이었던 것 같다. 우리들은 여성이었고, 남성을 사랑해 본 경험은 갖고 있지 않았다. 사랑, 혹은 비슷한 것을 했던 상대가 남성이었던 경우는 있었지만 그 역시 그 대상은 우연히 남성이었을 뿐 남성이라서 그럴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우리 모두는 여성을 좋아했다. 여성이라면 사랑할 수 있어, 라거나 여성이 아니면 안 돼, 라고 생각하지만은 않았지만 그래도 따지고 보면 좋은 쪽은 여성이었다. 사랑, 혹은 비슷한 경험이 아니라고 해도 이른바  ‘평균의 여성’이 ‘평균의 남성’보다 낫다고, 그러니까 더 착하거나 더 아름답거나 더 바르거나 더편하다고 여겼다. 그러니까, 여성을 사랑하는 일―혹은 사랑할 수 있다는 사실은 특별히 놀라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어떻게 남성을 사랑할 수 있지, 착하거나 아름답거나 바르거나 편한 남성을 찾을 수는 물론 있지만, 어떻게 그런 사람을 꼭 남성 중에서만 찾으려 할 수 있지,  우리는 궁금했다. 아무라도 할 수 있을 것만 같은 이성애에 대해 한마디 툭 내뱉고 넘어가는 일은 어렵지 않다. 여성이 대체 왜 남성을 사랑하지, 하고 물으면 어릴 때부터 그러라고 배우는데 별 수 있겠어, 한 마디로 넘어갈 수 있다. 태어나서 아빠와 엄마(그것이 자신의 것이든 아니든)를 보고 왕자와 공주 이야기를 읽고 남녀칠세부동석을 배우고 서로와 짝지어 자리에 앉고, 그러니까 그것은 쉬운 일이다.

그럼 게이는 어떤 걸까, 우리는 궁금했다. 누구도 남성에게 남성을 사랑하라고 가르치지 않았을 것이다. 여자 보기를 돌 같이 해, 라는 이상한 말에 남자를 보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면 왜, 게이는 남자를 사랑하는 걸까, 우리는 궁금했지만 알 수 없었다. 같은 남자가 편한가보지, 자기에게 없는 남성성을 갈구하는 것 아닐까, 같은 쉬운 말 쯤은 내뱉어 볼 수도 있었을 지 모른다. 조금 더 평범한 사람들이었다면, 여성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을 거야, 하고 말할 수 있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우리는 그렇지 못했다.

모르는 것은 묻는 것이 최선이다. 물을 수 없는 경우에는 고민하고 추측하고 실험할 수 있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묻는 쪽이 낫다. 섣부른 추측은 실례일 뿐더러 대개는 말도 안 되는 편견과 선입견을 답습할 뿐이니 말이다. 하지만 때로, 물을 상대가 있음에도 물을 수 없는 일이 있다. 때로 소수자에게 정체성에 관한 질문은 금기가 된다. 정체성에 대해 묻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을 알고 있다. 우리에게 답을 줄 수 있을 누군가도 그런 사람일지 모르기에 질문은 금기가 된다.

그래서, 질문도 추측도 할 수 없는 이야기가 생긴다. 그러고 나면 으레, 누군가가 나서서 말해 주기를 기다린다. 하지만 그것이 얼마나 무서운 바람인지를 또한 알고 있다. 자신의 이야기를, 금지된 이야기를, 당당히 말하는 이는 쉽사리 나락 속으로 빠져 든다. 자신의 섹스에 대해 이야기하던 여성주의자는 사람들 사이에서 범접할 수 없는 꼴페미가 되어버렸고, 내부적 민주주의를 피력하던 원칙주의자는 같이 일하기 피곤한 도덕주의자가 되어버렸다. 그들은 사실 나락 속에 빠진 것이 아니라, 한 계단 한 계단, 아래로 떠밀렸다.

그러니까 그런 바람을 품지도 못한다. 질문도 추측도 할 수 없는 이야기는 이어서 기대도 할 수 없는 이야기가 된다.

그런데 나의 경우, 어쩌면 그래서 피곤한 것은 나였다. 나에 대해서 질문도 추측도 기대도 할 수 없는 이야기들이 쌓여 가는 것, 주위의 모두가, 혹은 누군가가 궁금해 하면서도 이야기를 꺼내지 못하고, 이야기가 어쩌다가 나오지조차 않도록 신경 쓰는 일은 오히려 나를 불편하게 만들었다. 누군가가 그리 하고 있음을 내가 눈치 채지 못한다 해도 마찬가지다. 시간이 흐르면 내 곁에는 접근이 금지된 너른 원이 그려져 있다. 누군가는 늘 그 바깥에서만 나를 대했다. 그가 아무리 다가오고 싶어한들, 우리는 반지름만큼 멀리 있었다.

그래서 잘 모르겠다. 질문할 수 없는 이야기들, 그 이야기들을 어떻게 해야 할까.

3 thoughts on “질문도 추측도 할 수 없는 이야기

  1. 혹시나 싶어서 네이버 영영사전에 sex를 쳐보았어요.

    The two sexes are the two groups, male and female, into which people and animals are divided according to the function they have in producing young.

    …하아. =_=

    응답

  2. 보통의 사람이라면 성애 대신 이성관계라거나 하는 말을 썼을 것이다. 물론 그런 사람이었다면, 궁금증은 우리의 것처럼 전개되지 않았겠지만.

    아무튼, 성애, 라고 썼다. 글을 올린 후 사전을 찾아 봤더니

    국어사전
    성애 [性愛]
    [명사] 남녀 사이에 일어나는 성적 본능에 의한 애욕(愛慾).

    한자사전
    性愛 [ 성애 ]
    성 본능(本能)으로 인(因)하여 생기는 남녀(男女) 간(間)의 애정(愛情)

    라고 나온다. 아아, 내게도 쓸 수 있는 언어가 있었더라면.

    응답

    1. 혹시나 싶어서 네이버 영영사전에 sex를 쳐보았어요.

      The two sexes are the two groups, male and female, into which people and animals are divided according to the function they have in producing young.

      …하아.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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