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방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로 와서 여러 사람과 산다. 그리고 좋아하는 아역배우는 서울 오기 전에 좋아한 친구와 똑같이 생겼다. 공교롭게 그렇게 되었던 것이다. 어느 틈에 그래서 사진도 여러 장 모아두고는 했다. 무슨 연기를 하는 줄도 모르는 아역배우의 여드름 역시 꽤 오랫동안 조용한 금기. 중학교 교무실을 좋아하고 지하철에서 본 열 살 아이의 아름다움에 대해 일기장에 장황하게 쓴다면 아무래도 변태인 걸까? 공동생활은 어려운 걸까? 지금 이 문단은 커밍아웃인 걸까? 
“바이논란”은 간단한 일이 아니다. 그것은 성소수자의 개념, ‘이성애자 아닌 것’의 폭을 ‘우리’도 고민해야 한다는 뜻으로 읽힌다. 왜 다수의 이성애자는 트랜스섹슈얼과 호모섹슈얼을 구별하지 못할(않을)까? 그들에게  ‘레즈비언 아닌 성소수자’라는 건 어떤 의미일까? ‘이성애자 아닌 것’은 그대로 동성애자로 간주되는 이분법이 날 항상 돌아버리게 했다. 그 단순명료함 아니 단일함 앞에 어떤 말도 무력하게 느꼈다. 결코 동성애자도 ‘쏘쿨한’ 이성애자도 아니었다. 왜 구멍이 될 수 없었을까? 왜 경계에 걸터앉아 짓뭉갤 수 없을까? 입에서 나온 모든 말은 진부한 기존의 담론 안에 흡수되고 말았다. 오히려 공고히 하고 있는 것일지도 몰랐다. 말려들고 답습하며 대수롭지 않은 풍경 하나. 우리 안에 다른 분류를 만들어내든 우리 밖으로 튀어나가든, 알맹이는 잃어가면서 껍질만 단단해진다는 기분이 나날이 두터워져갔다.
내가 무엇일까? 자기자신을 알기 위해 말을 입기도 한다. 그간 숱하게 집어든 말들이 그랬고 스스로 허락했던 문장들이 그랬다. 하나. 둘. 더해서 부피를 키우고 무게를 늘렸다. 또한 자기자신을 명료하게 하고자 말을 벗기도 한다. 셋. 넷. 덜어내고  밀치고 버리며 앙상한 나만의 핵심을 남기려 했다. 그래서 난 무엇이 되었을까? 덧셈과 뺄셈은 날 어떻게 만들었을까? 스스로 부를 수 없는 덩어리가 되거나 숫자 영으로 사라져버렸다.  
아니. 소리를 내기가 참 힘이 든다. 공동생활 속에서 내가 아주 간단한 절차를 거쳐 ‘여성’으로 판명날 때. 그것은 ‘편의’라는 옷을 입었고 이성간에는 같은 방을 쓰기 곤란하다고 발언한다. 그것은 그저 배워서 익힌 습관이다. 하지만 이제 ‘누구하고라도 비슷하게 곤란한 일’이라 말하기는 그만뒀다. 나는 지금 ‘여자방’을 쓰고, 앞으로도 쓰기를 원한다. 또는 내가 쓰는 방을 ‘여자방’이라고 부르고, 앞으로도 부를 것이다. 두 문장의 순서조차 정할 수 없고 그 ‘여자방’이 동거인들 사이에서 나를 ‘여성’으로 인식시키는 요인인지도 명확치 않다. 다만 ‘여성’과 ‘이성애자 여성’은 아주 많이 닮은 말임을 안다. 둘 다 이성애중심주의와 긴밀한 연관 속에 만들어졌다는 점을 상기한다면. 같다고 해야 할 것이다.
입을 다문다. 만약 누군가 “(너는 이성애자 여성이다, 그러니 당연히) 남자친구를” 만나지 않느냐 물어온다면, 그 질문 안에 나는 없다. 아마 티끌만큼도 들지 않았다. 내가 여기서 지워지고 있어 여기 있으면서도 없어지고 있어 아무리 소리친대도 그것이 중차대한 절박한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 때때로 마음을 어지럽혔다. 나만이 절박한 것이 문제도 아니요 내가 얼마나 떠든들 해결이 되는 것도 아니요 심지어 두 문장 사이에 인과관계가 있는 것 같지도 않았다. 고립과 해결불가능은 그저 동시적인 별개의 상황이다. ‘그렇다면 너에게 독방을 줄게’ 라고 누군가가 제안한다. 난 되묻는다. 그러면 ‘여성’이 아닐 수 있는 거야? ‘개인’이 되는 거야?
상황은 갈수록 복잡해졌다. 난 어쩌면 어디서도 별로 튀지 않고 잘 섞여들어 살 수 있을지 모른다. ‘남성’을 ‘남성’으로 지칭하면서 그런 대로 연애를 하고 함께 살 궁리를 하게 된 지금,  내가 누구며 어떻게 살아야 할지는 안개 속이다. 고민들은 전혀 뭉개지지 않았고 사실인즉 많은 것들 훨씬 선명해졌지만 ‘여성’ 또는 여성 아닌 것으로 자신을 표현하는 일은 절로 줄어들어간다. 피할 수 없었던 질문조차 이제 다가오지 않는다. 항상 ‘여자방’이 있었다는 걸 깨닫는다. 그것은 ‘남자친구’와 섹스할 수 없는 방이기도 하고 ‘여자’기 때문에 레즈비언섹슈얼리티가 삭제될 수도 있는 공간이다. 또한 ‘여자방’이 아닌 공간에서 위축될 가능성도 심어진 장소다. 늘, 늘 그런 작은 방이 있었다. 어느 날 집에 돌아오던 길 ‘노출증’이, 혐오범죄를 행사하던 내 뚜렷한 대립항이 나타나기 전에도 그랬다. 기꺼이 들어가야 하는 방, 조금은 어울리고 조금은 불편한 그 방은 ‘나만의 방’ 이전부터 버티고 있었다. 콜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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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쩔까 하다가 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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