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오 늠름한 예비군이여.

front

 

오오 늠름한 예비군이여.


사람들 사이에 환호를 받으며 씩씩하게 걸어가는 예비군,

같이 보고 웃어줄 수도 있으련만 굳은 얼굴을 유지하며 줄맞추어 걸어가는 예비군,

그냥 군복을 입고 나온 것 같지만 나름대로 오래 묵은 군복에 피죤도 뿌리고, 각도 잡고.

멋 제대로 부리고 나온 예비군,

걸음걸이도 남자답게! 목소리도 남자답게! 눈빛도 남자답게! 뒷골목에서 담배도 하나 멋지게 피워주는 예비군,


내가 예비군을 보면서 느낀 것은 “남자답게 멋 부리기”였다. 섹스어필이 중요한 게이들 사이에서 어떤 식으로 남성성을 드러내는가는 매우 섬세한 작업이다. 매트로 섹슈얼, 운동선수, 평범한 일반 등 다양한 컨셉이 있지만 그 중에서도 군인 컨셉이 좀 먹어준다. 단단한 몸으로 나를 이리저리 휘둘러줄 것 같은 이미지, 쓰러질 것 같은 나를 꽉 붙들어줄 것 같은 이미지를 많은 게이들이 원하는 것이다. 동시에 군인 컨셉을 하는 자신도 그 역할을 즐긴다. 상대방이 자신의 남자다움에 좋아 쓰러지는 걸 보는 즐거움, 자신에 대한 만족감.

예비군도 조금 그런 것 같다. 그 사람들이 다 동성애자라는 것이 아니라(몇 있을 수는 있겠지만), 시민들 환호 속을 굳이 굳은 얼굴로 걸어가는 예비군을 보면, 왠지 모르게 속으로 자신의 역할(시민들을 지켜주는)을 즐기겠구나 싶다. 지켜줄 수 있다는 위치(신체검사 1등급의 남성=진짜 시민)에 자신이 있다는 것, 그 ‘뿌듯함’이 옷장에 처박아 놓았던 군복을 꺼내게 만든 것이다. 그리고 그만큼 지켜주는 입장에서 “멋진 남성성”을 보여주는 게 중요하겠구나 싶다. 그냥 내 생각이다.

그렇게 멋 부리는 걸로 뭐라고 하는 것은 아니다. 멋 부리기는 생명과 맞바꿀 수 있을 만큼 중요한 것이기도 하니까. 다만 촛불 집회라는 공간에서 예비군이라는 집단이 가지는 의미에 대해서 멋 보다는 많은 것을 생각해야 된다고 본다. 

예비군이 짜잔하고 등장하면 구도는 너무 확연하게 나뉘어버린다. 군대가 그렇듯, 싸울 수 있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이 획일적으로 구분된다. 한명 한명 모두 목소리를 내고 싶어서 나온 촛불집회에도 결국 성별이나 장애여부, 나이, 국적에 따라 나의 위치는 정해지는 것이다. 대한민국의 건장한 20대 남성인 예비군의 존재가 부각될수록 “(청소년에게) 밤늦게 뭐하고 있어? 이제 집에 들어가” “(장애인에게)(여성에게) 다치니까 뒤로 빠져 있어요.”하는 발언들은 ‘정당성’을 얻게 된다. 촛불집회를 같이 하던 사람들에게 있어서 이런 발언은 순간 ‘난 뭐지? 그동안 내가 같이 목소리를 내는 것이 아니었구나. 난 필요 없는 건가?’란 생각을 불러일으킨다. (외국인들에게는) 애국가를 부르는 집회가 ‘이곳이 나도 같이 고시철회를 외칠 수 있는 공간이 맞는 걸까?’란 생각이 들게 한다.

어떤 이들은 약한 사람들을 센 사람들이 조금 지켜주겠다는데 뭐가 그리 불만이냐고 할 수 있다.(솔직히 세지도 않았다. 이제껏 촛불집회에서 예비군이 한 거라곤 전경과 마주보다가 시민들이 앞으로 나아가려고 하면 빠지는 게 다였다.) 그리고 무엇이 강한 것인가는 만들어지는 것이다. 장애인 이동권 투쟁에서 휠체어이용장애인들은 휠체어를 쇠사슬로 엮어 지하철을 멈추기도 하였다. 사실 웬만한 예비군보다 집회 판을 많이 경험한 언니들이 훨씬 더 ‘잘’ 싸울 것이다.(어떻게 싸울지 알 거다.) 촛불 집회마다 맨 앞에 서서 싸우는 초등학생이 뒤로 물러나 있어야 할 이유가 어디 있나. 우리는 같이 싸우는 방식들을 개발해야 한다. 그럴 때야만 더 많은 사람들이 모여 더 큰 목소리를 낼 수 있을 것이다.


예비군이 무슨 죄냐. 이제 우리가 지켜주자!!

Leave a comment

댓글 남기기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입력창은 * 로 표시되어 있습니다

This site uses Akismet to reduce spam. Learn how your comment data is process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