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이 뭔지 궁금해서 책 좀 읽었다

 논리, 지식. 내가 가장 크게 기대는 권력이다. 동성애자로서 나를 긍정하기 위해 많은 책과 영화를 읽고 고민했다. 이성애중심주의의 부조리한 지점들을 찾아내서 논리로, 지식으로 꺾어버리려고 노력했다. 자긍심을 가질 수 있었던 건 나의 정체성을 지지받는 공동체와 이성애중심주의에 지지 않는 나의 논리, 지식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권력/지식>에서, 푸코는 지식을 권력관계와 정보에 대한 욕망이 결합되는 지점이라 규정하고, 지식이 언제나 권력관계를 동반한다는 의미에서 지식을 ‘권력/지식’이라고 정의한다. 그의 논문 <감옥 이야기>에 따르면, “지식 없이 권력이 행사되는 것은 불가능하다. 또한 지식이 권력을 생성하지 않는 것 역시 불가능하다.” 지식과 권력의 관계에 대한 이런 통찰은 지식이 정치적 고려가 배제된 순수한 것이 아닌 권력투쟁의 핵심적 요소임을 강조하고, 또한 지식을 생산하는 행위 자체가 권력을 추구하는 방식이 될 수 있음을 지적한다는 점에서 의미있는 진보라고 할 수 있다. 푸코의 입장에서 보면 지식과 권력의 상호 의존성을 강조하기 위해서는 단순하게 “지식”이라는 용어을 쓰는 것보다 “권력/지식”이라는 복합어를 쓰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이 된다.

«138쪽, 사라 밀스, 현재의 역사가 미셸 푸코»

(서로 소통하려는 의지가 있고, 그것이 가능한 관계에서) 나의 주장들이 논리, 지식이라는 권력을 등에 업고 있다는 느낌을 받곤 한다. 그 지식/권력이 내가 동성애자임에도 얼굴을 들이대고 맞서 싸울 수 있게 해 준 힘이기도 하지만. 설득하려는 과정에서 이기려고만 달려들어 상대방과 나 사이에 존재하는 권력관계를 간과하게 될까봐 걱정이 되기도 한다. 특히나 이런 식의 ‘이름 있는’ 철학자나 과학 전문가 집단에 의해 생산된 정보들이 막강한 지식/권력으로 많은 사람들의 진실을 짓밟아 버릴 수 있는 사회에서, 인용이나 나의 논리들이 그런 위치에 있기를 바라지 않는다. (음. 솔직히 순간 살짝 바라기도 한다.)

전문가로 분류될 수 있는 권위자만이 진리를 말할 수 있는 자격을 갖게 된다. 권력을 갖지 못한 사람들은 진리를 말한다고 여겨지지 않는다. 따라서 푸코는 진리를 결코 자명한 것으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그에 따르면, 진리는 광범위한 관행과 제도에 의하여 물질적으로 지탱된다. 즉, 대학과 정부의 부처, 출판사와 학문 단체 등과 같은 제도의 관행으로 진리가 유지되는 것이다. 이들 제도권 기관은 나름의 잣대를 통하여 거짓으로 판명된 언술은 배제하는 한편, 진리로 여겨지는 언술은 사회적으로 유포시키고자 애를 쓴다. 푸코의 입장에서 보면, 진리는 그 자체로 진리이기 때문에 진리로 통용되는 것이 아니라, 진리의 위치에 있기 때문에 진리가 된다.<지식의 고고학>에서 푸코는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아무도 없는 공터에서는 누구도 진리를 말할 수 있다. 하지만 누군가 말을 할 때면 언제든 출동하는 담론의 ‘경찰’이 설정한 규칙을 준수할 경우에만 그 사람이 진리의 위치에 설 수 있게 된다.” 우리가 아는 한도 내에서 진리라고 확신할 수 있는 것을 주장한다고 하더라도, 우리의 언술은 사회 내에서 공인된 모든 다른 언술들에 잘 부합되어야만 진리로 평가 받을 수가 있다.

«117쪽, 사라 밀스, 현재의 역사가 미셸 푸코»

‘나의 진리’는 외부에 있지 않다. 경험, 다른이들과의 관계, 고민들 속에서 만들어진다. 글을 읽고 영화를 보고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진리를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만들어가기 위해서이다. 어려워 보이는 철학자 책에서 인용된 내용과 삶에서 경험하는 내용들 사이에 위계서열은 없다.

사실 똑똑해지고(이 사회의 기준에서 인정받고) 싶은 욕망이  꽤 있는 나는 어려운 책도 읽으려 하는 편이다. 재미없고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도 잘 참는다. 이젠 그러지 않으려고 한다. 아무런 공감도 이해도 불러오지 못하는 내용을 있어보이는 지식/권력에 기대 꾸역꾸역 읽느니, 던져버리고 내 삶과 부딪히는, 고민을 던져주는 내용을 찾으려 한다.

내가 푸코에 관심이 생긴 건 그의 권력 개념이 궁금해서였고 그랬기에 어려워도 이해 안 되는 부분은 쿨하게 넘기면서 나와 연결 가능한 지점들을 통해 책과 대화할 수 있었다.

(상대방을 이해하려는 노력과는 별개로) 유명한 철학자나 전문적인 과학 개념을 마구 인용하고 영어나 한자를 지나치게 섞어 쓰고 되물어도 쉽게 알려주지 않는 사람들을 경계해야 한다. 권력/지식으로 상대방을 짓누르려는 사람과의 대화는 힘만 빠질 뿐이다. 쉽게 말해야 하고 쉽게 말하도록 요구해야 한다. 누구와 이야기하느냐에 따라 어떻게 말할지 고민해야 하고 그 누군가에 약자들이 배제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내가 안 그럴까봐 걱정이 되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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