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친절한 인용 덩어리

집단 간 혹은 제도나 국가 간 권력관계의 불균형이 존재하는 곳이라면 어디든 그곳에는 지식 생산의 문제가 존재한다. 푸코가 종종 주장하는 것처럼 서구에서는 여성에 관한 정보가 많이 생산되는데, 이는 남성과 여성 간의 제도화된 권력관계의 불균형에 기인하다고 할 수 있다. 도서관에 가면 여성에 관련된 책은 상당수 있는 반면, 남성에 관한 책은 거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비슷한 이유로 노동계급에 관한 책은 많이 출판되지만 중간계급에 관한 정보는 상대적으로 적다. 또한 흑인 문제에 관한 책은 많은 반면 백인에 관한 책은 없고, 이성애에 대한 연구는 거의 이루어지지 않는 반면 동성애에 관한 연구는 활발하다. 요즘에는 상황이 바뀌어 이성애와 백인에 대한 분석도 진행되고 있지만, 통계적으로 보았을 때 인문학 분야에서 학문적 연구는 여전히 주변화된 사람들에게 집중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38쪽, 사라 밀즈, 현재의 역사가 미셸 푸코»


 그들은 인종문제가 될 때 단지 유색여성들에 초점을 맞추는 식의, “낮은 쪽을 연구”하려는 그런 경향들을 피해갈 수 있다(우리 유럽계 페미니스트들도 자주 이런 식으로 연구했다. 비록 우리는 남성들이 “여성들을 연구”함으로써 자기 자신들과 제도들을 연구하라는 페미니스트 통찰을 피해가는 것을, “남성들이 성차별주의와 남성중심주의에 대해 연구하고 싶다면 왜 스스로를 연구하지 않는가?”라고 공개적으로 비판했지만 말이다). 물론, 유럽계 사람들이 제3세계 출신 사람들에 대해, 그들의 삶에서 인종차별주의와 제국주의-의도하건 의도하지 않건, 너무나 자주 우리 자신도 공모자인-의 비용을 좀더 광범위하게 인정할 수 있게 됐다면, 그것은 분명히 전에 비해 개선된 것일 것이다. 그러나 “낮은 쪽을 연구”하는 것이 유럽계 사람들이 이 문제들을 알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분명히 아니다.

 계급적으로나 경험적으로나 인종과 인종차별주의에 대한 더 적당한 개념들이 분석을 위한 자원들을 제공함에 따라 여러 다른 시선의 변화들이 생기게 될 것이다. 예를 들어, 인종문제들을 통합시키려는 시도는 그에 걸맞은 계급분석이 필요함을 부각시켜준다. 근대 과학 기술들의 발달에 관한 이야기는 계급관계들의 역사와 분리될 수 없으며, 기존의 계급 분석들은 인종과 과학 연구들에 중요한 자원들을 제공한다. 또 다른 예를 들자면, 우리는 “불충분하거나” “손해를 보는” 소수의 논리적 짝으로 “이득을 보는” 다수에 대해 말해야 하지 않는가? 유럽계 사람들도 역시 하나의 인종일 뿐임을 볼 수 있게 될 때, 그리고 인종은 구조적으로 유지되는 관계임을 인지하게 될 때, 우리의 개념화 작업에서 그 사라진 “이득”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여전히 볼 수 없게 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인종 차별주의의 종식을 “사회정의”의 문제로 생각하는 것에 대해서도 비슷한 점을 지적할 수 있다. 사회정의의 개념은 어떤 집단들에는 정의가 구현되고 어떤 집단들에는 정의가 구현되지 않음을 함의하고 있다. 그러므로 사회는 어떻게 하면 정의가 구현되지 않은 집단들에 정의가 구현되게 할 수 있을지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그러나 그 같은 접근은 많은 사람들이 희생자를 비난하고 가진 것이 없는 사람들은 무언가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하는, 그런 경향들에 대적할 수 있는 든든한 보호막을 제공해주지 못한다. 그것은 어떻게 어떤 사람들은 아마도 “너무나 넘치는 정의”를 갖게 되는지-즉, 사회 제도들로부터 부정하게 총애를 받는지-에 대한 생각으로 나아갈 수 없게 한다. 사회적 재화들의 혜택들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만 정의가 실현되지 않은 것이 아니라 사회적 재화들의 혜택들을 과도하게 받은 사람들에게도 정의가 실현되지 않은 것으로 봐야 한다. 그러나 어떻게 하면 “사회정의”의 침해들을 수정할 수 있을까를 생각할 때 이 문제를 인식하는 사람들은 흔치 않다.

나는 이 같은 문제들을 우선적으로 페미니스트들에게 제기한다-비록 젠더와 인종문제들을 통합시키지 않는 좌파의 분석들과, 젠더문제들을 (계급문제들은 보통 통합시키고 있지만) 통합시키지 않는 인종분석들도 자신들의 목표에 도달할 수 없는 것은 똑같지는 말이다. 젠더와 인종이 계급을 구성하는데 이용되기 때문에-노동자는 특정 인종과 성별의 활동들, 태도들, 의무들, 책임들을 “할당받아”야 한다-우리는 어떤 역사적 시점에서도 젠더관계들, 서구제국주의, 백인우월주의의 동력에 의한 계급 침투와 겨루지 않으면 계급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이해할 수 없게 된다. 자신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한 가지 주제에만 초점을 맞춰온 각 집단들은 이제 인종, 젠더, 계급분성들의 통합을 요구해야 한다.

«318쪽, 샌드라 하딩, 누구의 과학이며 누구의 지식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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