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체이탈 없는 대화를 위해

 애인을 여자/ 남자친구라 칭하고 모든 이를 이성애자로 간주한 이야기를 들으면, 순간 그 공간에서 튕겨나가고 벽장 안에 슬금슬금 기어들어 가버린다. 더이상 대화에 집중하지 못한다.  같이 즐겁게 대화를 하고 있다가도 순간 내 주위에 벽이 생기고, 이 벽을 어떻게 해야하나 고민하게 된다. 말 속에 너무나 아무렇지 않게 스며들어있는 이성애중심주의는 그 거대함을 다시금 나에게 각인시키고 나는 막연해진다. 유체이탈 상태가 된다. 그저 다른 이들이 웃기에 같이 웃고 있는 내가 보인다. 재밌니?

글을 쓰면서 나의 생각들을 충분히 전하기 위해 사용하는 언어들을 보면 비장애인중심적이다.(시각장애인과 청각장애인의 경험을 장애인으로 그냥 묶어버릴 수 없듯이 비장애인중심적인 언어들에서 불편함을 느끼는 지점들은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보면”에서부터 이미 탁탁 막힌다. “보다”란 단어는 해석하다, 읽다, 이해하다와 같이 다른 의미들을 전달하고 있는데, 눈으로 무엇을 보는 행위가 그런 의미들과 연결되는 것은 시각장애인의 경험은 배제되었기 때문에 가능하다.

표현하기 위해선 이런 언어들이 적절해라고 자위하려 하지만 그 순간 다시 깨닫는다. 결국 내가 누구에게 이 내용을 전하고 있는지. 비장애인들이 먼저인거다.  비장애중심적인 언어들은 분명(이성애중심적인 언어들이 나에게 그랬듯이) 우리의 소통을 어렵게 할 것이다. 그대가 원래 조용한 사람인 줄 착각하게 할 거다. 그렇다고 비장애인중심적이지 않은 완벽한 언어를 사용하는 게 아니라면, 아무 말도 하지 말라는 것은 아니다. 언어가 가진 비장애중심성도 무척이 뿌리가 깊기 때문에 아마도 모든 것을 갑자기 다 바꾸거나 하지는 못할거다. 언어만 바꾼다고 될 문제도 아니고. 하지만 한번 자위로 정당화하다보면 영원히 자위만 하고 말거다. 그러진 말아야지.

사실 완전변태 홈페이지도 시각장애인이나 저시력장애인이 접근하기 편한 방식으로 만들어져냐 하는데……뭐 아무것도 모른채 그냥 있다.


 이렇게만 써 놓으니까 뭔가 찜찜해서. 얼마전에 인간극장에서 시각장애인인 형제가 있는데 이들은 아무렇지 않게 텔레비젼을 본다고 표현하고 라디오를 듣는다고 표현했다. 그들의 부모는 본다는 의미를 다르게 해석했다. 손으로 만지고, 귀로 듣고, 가슴으로 느끼는 것도 보는 거라고. 우리는 쓰레기 같은 언어 바다 속을 나비처럼 헤엄쳐 다닐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사실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살아간다. 언어는 우리의 행동과 실천들 사이에서 그 의미가 바뀌곤 한다. 그냥 언어에 너무 함몰되어 버리는 느낌이 들어서.(내가 이글을 쓸 때 좀 함몰되어 있었어)

2 thoughts on “유체이탈 없는 대화를 위해

  1. 에…. 최대한 모든 이미지와 메뉴, 글에 시각장애인용 프로그램이 읽힐 수 있도록 해놓긴 하였어.
    일단 우리가 할 수 있는, 적어도 ‘개발된’ 도구들은 다 이용해서 접근성을 높이려고 노력했고, 완벽하다고 호언장담할 수는 있지만 그래도 꾸준히 노력중이고, 항상 염두에 두고있긴해.

    응답

    1. 그렇구나. 내가 모르고 있었구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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