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살의 나, 12살의 나, 18살의 나

 그는 발전론적 의미에서의 저자 개념에 비판적인 입장을 취한다. 다시 말해서 저자가 초기의 미숙함에서 점점 후기의 완숙함으로 발전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 우리가 셰익스피어의 ‘초기’작품을 분석한다고 가정해 보자. 이 경우 우리는 먼저 ‘초기’라는 메타포를 반드시 사용할 필요가 있는지 의심해야 한다. ‘초기’라는 용어는 해당 작품이 그 이후에 나온 작품들에 비해 성숙하지 못한 작품임을 암시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사라 밀즈, 현재의 역사가 미셸 푸코, 120쪽»

우리 나라 사람들은 싸움이 붙으면 제일 처음 물어보는게, “너 몇살이야?”란다.

청소년기에 아빠랑 대화를 많이 했었는데, 서로의 주장들로 가열차게 싸우다가도 꼭 아빠의 “니가 어려서 뭘 잘 몰라서 그래.”, “경험은 무시할 수 없는 거야”, “나도 어렸을 때는 그랬어.”로 마무리 되버리곤 했다. 아빠는 몸이 성장하듯이 생각도 성숙해진다고 생각했고 자신의 인생의 일직선상에서 내가 저 뒤 어디쯤에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우리는 경험도 가치관도 다른데 어떻게 나를 거기에 위치시킬 수 있는지. 내가 미래에 어떤 후회를 할지 다 알고 있다고 믿다니. 놀랍다.

나는 내 자신조차도 그런 일직선상으로 ‘발전’해왔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5살의 나, 12살의 나, 18살의 나는 각기 다른 환경과 경험을 가지고 있다. 우리가 만난게 된다면 다들 고집이 상당해 꽤나 부딪힐 일이 많을 거다. 그렇지만 27살의 내가 그나마 ‘완성작’에 가장 근접한 건 아니다. 일기를 읽으면 느끼지게 되곤 한다. 심지어 고등학교 때의 나조차도 지금의 나와는 생각이 너무 다르고, 기억의 파편만 있을 뿐 한 사람으로서 어떻게 느끼고 생각했는지에 대한 기억은 없다. 우리는 아마 서로에 대해서 조금씩 배우고 이해하는 과정을 통해서 같이 할 수 있는 것들을 만들어 나갈 거다. 그래도 만나면 우선은 꼬옥 안아줄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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