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간 술에 취해 지하철을 탔다

 약간 술에 취해 지하철을 탔다. 자리가 있어서 앉으려 했는데, 그 순간 열차가 출발해 옆에 앉아있던 ‘여성’을 툭 쳤다. “죄송합니다.”라고 말하면서 앉았다. 그 ‘여성’은 많이 놀랐다. 옆에 앉아 있던 다른 ‘여성’은 내가 매너도 없다느니, 주먹으로 한 대 쳐버릴까라느니 등의 이야기를 영어로 (친구? 애인? 그냥 일행?)인 놀란 ‘여성’에게 했다. 못 알아듣는 척 했다. 기분이 나쁘긴 했지만 무서워서.

‘그녀’들에게 미안해하면서도 내가 이성애자 남성으로 간주되는 것이 짜증났다. 더 정확히 이야기하자면, 내가 원하던 원치않던 내 의도나 욕망과 관계없이, 이성애자 남성들이 이제껏 (그들이 원하는 방식으로만) 여성을 욕망하고 통제하려던 그 더러운 짓거리들에 대한 혐의를 내가 받는게 억울했다. 짜증이 밀려오는 순간은 “이성애자들 문제는 이성애자들끼리 해결해.”라고 말하며 성별권력관계가 비교적 적은 게이들의 관계의 ‘우월성’에 으쓱하고 싶지만, 이건 가해자로 가끔 “의심”받는 게이인 나니까 할 소리다.

여성들은 일상적인 성폭력의 위협에 시달리고 이를 통해 자신을 묶어두려는 온갖 사람들을 다루고, 얼르고, 싸워야 한다. 공포가 몸에 각인되어 순간순간 튀어나온다. 이는 레즈비언들에게도 예외가 될 수 없고 심지어 아웃팅을 협박하여 성폭력이 벌어지는 경우도 있다. 그 앞에서 나의 억울함을 잴 필요가 있다.

내가 좋아하는 ‘착한’ 이성애자 남성들도, 그 여리고 여린 친구들도 남성으로 보인다는 이유로 자신이 누군가에게 위협이 된다는 걸 불편해한다. 비록 원치는 않았지만, 남성으로 길러지고, 남성으로 대접받고, (성별권력관계의 어떤 면에서는 분명)혜택받은 우리는 억울하고 불편할 수 있다. 하지만 거기서 멈추면 안된다. 그건 투정이다. 투정은 기득권을 누리는 자만이 부릴 수 있는 사치다. 고통받는 이들의 목소리를 더 듣고 이 억압에 맞서서 함께 싸워나가야 한다.

앞의 이야기에서 나는 ‘그녀’들에게 뭐라고 해주고 싶었다. 나를 옆에 두고 막말을 해댔으니까. 하지만 막말을 지적하고 말다툼이 붙어 이기려고 했다면 결국 내 논리는 남성중심적인 사회의 법, 윤리에 기댄 투정밖에 되지 않았을 거다. 그래서 그녀의 공포와 분노를 이해해야 한다고 속으로 되뇌였다. 그래도 왠지 억울하고 분했다. 이건 나 자신을 타자로서의 남성(페미니스트 남성)으로 정체화하는데 드는 고통일 게다. 이제와서야 생각해 보건데, 아마 내가 다시 한번 더 사과를 했다면 서로에게 더 좋지 않았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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