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여기에서

 이런 글을 쓰는 나와 지금 여기에서의 내가 분리되어 있다. 내가 꿈꾸는 건 저 멀리 있고 그것을 최소한 진지하게 생각해보려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난 실망한다. 그들이 원치도 않을 높은 기대치가 당연히 무너지는 걸 보고 실망한다. 내가 할 수 있는 게 정말 미약하다는 걸 계속 느낀다. 권력관계는 너무 체계적이고 사람들의 관계맺음속에, 일상생활에 녹아 들어가 버린다. 그렇다고 내가 여기있는 사람들을 한 명씩 만나 이야기를 나누어 볼 수도, 그럴 에너지도 없다.

그래, 분명 할 수 있는게 있겠지라고 하며 계획을 세워보기도 하지만 나의 목표는 언제나 너무 높은 것 같다. 성취감이 없다. 때를 잡아 물어봤다. (“그런 욕들을 원래 사회에서도 잘 썼습니까? 아니면 여기와서 배운 겁니까?”라고) 별 효과가 없다. 요즘은 그런 욕하는 걸 옆에서 뭐라고 해주는 다른 선임이 영웅이 되어가고 있다.

편지를 썼다.(내가 왜 우울한지 구구절절이 적어서) 읽은지 안 읽은지 모르겠다. 내가 정성껏 진심을 담아 보낸 선물을 쓰레기통에 쳐박아 버린 것 같은 느낌이다. 전혀 달라지지 않은 모습을 보고 있으면 편지를 돌려달라고 하고 싶다. 그에게 어울리는(필요한) 게 아닌 거다. 그는 아마 분명히 자신의 남성 이성애자 기득권을 놓치지 않겠다고 표명한거다. 웃으며 잘 지낸다. 더 이상 기대하지 않는다. 실망했다.

뭘 기대했는지도 모르겠다. 내 눈치보기? 진실한 고민과 답장? 내가 원하는 대로 되도 문제다. 그런 노력과 고민이 쉽지 않다는 걸 알기에 그것이 나로 인해 시작되었다면 이 사람은 나에게 남다른 감정을 가질 거라고 착각하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착한(남에게 신경쓰는) 친구들에게 빠지는지도.

어쨌던 내가 끊임없이 실망하고 안으로 파고들지 않기 위해서 지금 이곳에서는 기대치를 낮출 필요가 있다. 내가 모든 고민을 풀어놓고 소통할 사람이 있을 거라는 미련은 버린다.(그건 밖에서 찾자. 나도 어느정도는 효율성을 따져야 하지 않겠는가.) 어차피 난 수십명중 한명일 뿐이고 내가 그들에게 무언가를 강요할 수 있지도 바라지도 않는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불쌍해지고 힘들어하면서 내 고통을 카드로 들고 설득하기, 논리 지식으로 설득하기, 웃으면서 까기 정도 인거 같다. 그들 안에서 고민을 일으키고 삶을 이성애자 남성으로 재구성하는 작업은, 감수성을 높이는 작업은 불가능하다. 위에서 말한 방식으로는 그들을 거기까지 몰아가지 못한다. 기득권은 불편하지 않다.

일단 나부터 살고 보자. 웃으면서 까기에 집중하련다. 농담이 거의 대부분의 의사소통인 이곳에서.

내가 옳다는 생각은 버려야 한다. 내 목소리가 들리도록 해야 한다. 물론 최대한 설득력 있게. 변화는 그들의 몫이다. 나는 그들의 변화가 절박하지만 나름 쿨해지는 것도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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