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라지 않고 있다고 느꼈던 욕망을 다시 끄집어 낼 때의 거북함

잠 잘 때 왜 그렇게 이빨을 갈아대는지 알 것 같다. 침대에 누우면 온갖 걱정들과 망상이 머리 속을 떠나지 않는다. 아무리 피곤해도 30분 이내로 잠드는 일이 없다. 눈을 감고 생각의 꼬리를 따라간다. 나락으로 추락하는 느낌. 꼬리에 꼬리를 문 생각들이 날 괴롭힌다.

“누난 너만 보면 좋아. 그러니까 누나 기대 실망시키지 말고 잘 좀 해봐. 뭐든지 최고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해보란 말야.”

정말? 정말? 내가 무얼하든, 무슨 얘길하든? 들리지도 않을 물음만 마음 속에 무겁게 가라 앉는다. 내 고민을 털어놓았을 때의 사람들의 반응을 시뮬레이트 하면서 거기에 대한 변명을 떠올리는 내 머리 속을 보고 있으면, 나도 내가 뭘 원하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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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커밍아웃을 준비할 때와 비슷한 초조한 마음. 받아 들여졌으면 좋겠다는 소망과 안 받아 들여지면 어쩌나 하는 고민 속에서 마음은 항상 전자로 기운다. 대부분의 커밍아웃은, 그렇듯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나로서 인정 받고 싶다는 강렬한 애정의 요구로 시작된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멀리 하게 됐다. 진심을 다했을 때도 안 먹힐 때의 상처를 감당하기 어려워 홀로 고독을 선택한다. 벽장으로의 귀환. 벽장 한구석에 쌓여가는 이야기들이 날 압박해오지만 꺼내어 보여줄 수가 없다. 두려워서다.

가족에게 버림받을 걸 각오하고 내 자신을 사랑하는지도 의심스럽다. 수많은 조언을 듣고도 가족을 버리지 못하는 내가 싫다. 버릴려고 노력할 때마다 내 발목을 붙잡는 것이 있다. 돈. 결국, 그런 얄랼한 것이었나. 애정하고 애정받는 사이도 아닌데 돈만 바라는 내가 싫다는 죄책감일 뿐인가. 애정이 끊어지는 것보다 돈이 끊어지는게 더 무서운 것 아닌가.

난, 왜 소위 말하는 보통 가정의 애정 어린 관계를 이토록 부러워 하면서 그 욕망조차 그릇된 이데올로기로 형성된 개념일 뿐이라고 치부하려 드는가. 이토록 외롭고, 이토록 힘겨워 하면서.

요리 잘 해주는 엄마가 있었으면 좋겠다. 돈 잘 버는 아빠가 있었으면 좋겠다. 결혼 잘 해서 행복하게 잘 사는 누나가 있었으면 좋겠다.

처음이다. 이걸 이렇게 구체적으로 바라고 있다고 느낀 것이. 열등감이나 비정상에 속한다는 위화감 따위는 다 벗어던지고, 순수하게 내 욕망 그대로를 인정한 건. 생각보다 아프지 않다. 포기하고 있어서일까. 무뎌져서일까.

바라지 않고 있다고 느꼈던 욕망을 다시 끄집어 낼 때의 거북함. 바라는 것 자체가 죄스럽다고 느껴질 정도의 이 느낌은, 결국 내가 만들어낸 것일텐데. 그걸 벗기가 이토록 힘겹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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