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말했다. 나 게이라고.

그래서 뭐. 뭘 말한 걸까? 

“난 동성애자/게이야”라는 말은 나에 대해 무엇을 설명해줄까? (생각해보니 보통 좀 더 성실히 이야기하고 싶을 때 동성애자라고 말하고 커밍아웃을 던져버리듯이 하고 싶을 때 게이라고 하는 편인 거 같다. 아무래도 게이에 더 많은 이미지가 덕지덕지 붙어있는 느낌이라 그런가? 뭐 어차피 그들에게는 그게그거일테지만.) 내가 ‘남성’을 사랑하는 대상으로 여긴다는 거? 그건 당신이 이성애자라는 단어를 들을 때 상상할 수 있는 만큼,아무것도 나에 대해 설명할 수 없을 거다. 어쩌면 원하지 않는 다른 이미지만 전해줄 수 있겠지. 비정상, 변태, 더러워, 불쌍해, 신기해 등등. 그리고 사실 정확히 어떻게 말해야 할 지 나도 잘 모르겠다. 정확히 ‘남성’이 뭔지도 잘 모르겠고 정확히 ‘사랑’이 뭔지도 잘 모르겠다. 당신은 아는가? 그저 내가 좋아하는/성적으로 끌리는/사랑하는 사람들의 공통점을 모아 놓고 그게 뭔지 종합할 뿐인데, 난 계속 좋아하는/성적으로 끌리는/사랑하는 새로운 사람이 생기니까 그것도 조금씩 변한다.

한 4년간의 나의 삶은 커밍아웃의 연속이었다. 지금도 계속 진행 중~. 누구 말 마따나 불쌍하기 그지 없다. 섹스도 한번 안 해본 애(그 당시로 치자면 말이다. ‘처녀’라고 하면 게이들이 떨 호들갑이 들리는구나.)가 커밍아웃만 하고 다니니. 그들에겐 게이=섹스니까 말이다. 어쨌든 그 많은 커밍아웃은 무엇을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 무엇을 기대했던(혹은 기대하지 않았던) 것일까?

-처음. 가족에게 커밍아웃 했을 때에는 그건 나에게 하는 말이기도 했다. 철저히 금지되었던 욕망, 경험을 드러내고 내 스스로를 받아들이겠다는 말. 흥분, 혼란, 공포, 통쾌함 들이 뒤섞인 시간은 길게 늘어지고 몸에서는 열이나고 덜덜덜 떨렸다. 더 이상 나를 버리지 않겠다. 선언이었다. 그들이 날 버리지 않기를 꿈꿨지만 기대하진 않으려 했다. 기대가 많아질 수록 나를 버려야 했을 테니까.

-다행히 나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로부터 버림받지 않았다. 그 때 쯤 친구들에게 했던 커밍아웃은 그들이 나에게 많은 것들을 물어봐주길 기대한 말이었다. “그래. 넌 게이야~ 난 상관없어”하고 하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내 첫사랑은 어땠는지, 친구들 중에 누가 제일 맘에 드느지, 어떨 지점에서 힘들었던 건지. 그냥 뭐든 좋았다. 내가 동성애자로서의 내가 존재하는 이야기면. 그랬기에 그때의 난 “넌 남자역할이야? 여자역할이야?” 같은 질문들도 그저 반가웠다.

-한 번은 동아리 커뮤니티 게시판에다가 공개적으로 커밍아웃을 하기도 했다. 이 모임에 있을지도 모르는 동성애자, 또 다른 나에게 힘을 주고 싶었다. 동성애자/게이/호모에 씌워진 그 부정적인 이미지를 바꾸고도 싶었다.

-동성애자로서 나를 온전히 드러낼 수 있는 공간이 생기자, 더 이상 그들이 날 버려도 그리 크게 두렵지 않았다. 나에게는 날 있는 그대로 사랑해줄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그래서 동성애혐오 발언을 거침없이 던지는 사람들에게 커밍아웃을 하기도 했다. 말 함부로 하지 말라고. 그들을 당황시키고 입막음 시켰음 했다. 불친절하기 그지 없었다. 그들이 혼란스럽던 말던 내 알바 아니었다. 나는 침착하게 말 한마디로 그들을 테러했다. 동성애자 여기 있으니까 생각 좀 해라. 생각하기 싫으면 입닥쳐라. 동성애가 나름 인권의 담론에 속한 만큼 노골적인 동성애혐오 발언을 계속 내뱉을 만큼 용기 있는 사람은 없었다.

-이젠 그냥 거짓말 하기 싫어서 커밍아웃을 하곤 한다. 여자친구 있냐고? 졸업하고 뭐할거냐고? 이런 질문들에 거짓말로 대답하기 귀찮다. 그런데다 에너지 쏟고 싶지 않다. 더이상 (진심으로든 전략적으로든) 불쌍한 척, 저자세로 인권의 방패막을 앞에 깔고 커밍아웃하지 않는다. 그냥 말한다. 나 게이라고. 그들의 반응이 그리 크게 기대되지도 걱정되지도 않는다. 놀라는 표정도 익숙하다. 가끔씩 재밌는 놀이이기도 하다.

아마 앞으로도 한동안은 “나 동성애자/게이야”라고 이 빈약한 한 문장을 말하고 다닐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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