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례집-의문들

사례1) 거울로 비친 내 몸을 보고 있자면, (그래그래 알았어) “가끔씩 예전에 비해” 멋진 근육이 보일 때가 있다. 왠지 모르게 살짝 뿌듯하다. 계속 보고 있으면 좋다. 어떻게 좋냐면 그냥 ‘흠~ 멋진데’ 정도로. “흠~”이 중요하다. 차분한 의성어. 거기서 끝. 이 감정은 내 앞에서 윗도리를 훌러덩 벗어던지고 멋진 가슴을 드러낸 채 팔굽혀 펴기를 하는 후임을 볼 때와도 비슷하다. 보기 좋은 거. 예전에 심해에 사는 빛나는 해파리가 나온 다큐멘터리를 보고 있는 것과 같은 느낌인가? 어쩌면 그런 거 같기도 하다. 이미지로 만족하기. 눈으로 먹기.

사례2) 다리를 쩍벌리고 앉아 있다. 볼록 튀어나온 그곳과 튼실한 허벅지, 딱 달라붙은 바지. 이건 보는 걸로 안 멈춘다. 뇌의 판타지 회로가 작동. 혈관을 흐르는 피가 찐득찐득 꿀럭꿀럭해진다. 무슨 행동을 하고 싶어진다. 그 상황과 나의 상상은 합쳐져 영화의 한 장면을 구성한다. 섹시하고 아름답고 더러운. 몸이 반응을 한다. 그렇기에 곧 의식이 통제를 시작하고 얼마후 진정된다.

사례3) 잠을 자고 희미하게 깨어난 아침에 주로. 몸이 날 지배한다. 아무런 외부적인 자극이 없는 상태에서 성욕만 왕성하다. 만지고 껴안고 빨고 비벼대고 싶다. 몸의 욕구에 판타지는 가끔씩 꿈으로 뒤따라올 뿐이다. ‘생물학’의 말을 빌리자면, 테스테스테론이란 호르몬 때문이란다. 이럴 땐 쫌, 나의 욕구가 진화의 산물 같기도 하다. 

사례4) 거울로 비친 내 몸을 보고 있자면, 목과 어깨를 주변에서 주로 가녀리고 하얗고 우아한 아름다운 골격이 보이곤 한다. 왠지 모르게 살짝 뿌듯하다. 계속 보고 있으면 좋다. 어떻게 좋냐면 ‘아름답구나.~’ 근데 끝에 가볍게 그라데이션으로 싸늘해지는 게 있다. 이젠 거의 무의식에 가까운 영역에서 ‘여성’스러운 나에게 자기혐오를 가르치려 해서. 하지만 이젠 그 힘이 워낙 미약해서 시도되기도 전에 내 몸에 대한 감상은 끝나버리고 만다.  

사례5) 여기저기서 가끔씩 보게 되는 이쁜 얼굴, 가슴과 S라인의 몸매, 곧게 뻣은 매끈한 다리. 그저 ‘이쁘다. 풍만하다. S라인이다. 매끈하다’ 정도의 감탄은 한다. “(그들이 보기에, 보통 사람들이 말하듯이) 이쁘다. 섹시하다.”라고 말하긴 한다. 이 시대의 ‘여성’의 아름다움의 기준이 뭔지쯤은 알고 최고를 봤을 때의 감탄을 하긴 한다. 그치만 계속 보고 싶거나 상상을 자극하진 않는다. 생활의 달인을 볼 때처럼 그저 감탄을 할 때가 있다. 아님 ‘객관적으로’ 평가를 하든가. “남자들이 좋아하겠네”처럼.

사례6) 거울 따위 치우고, 머릿속에 떠오르는 사람들에게 비친 내 모습들 던져버리고 말하고 움직이고 생각할  때가 있다. 보통 지쳐서 생각따윈 안하고 막말하고 막행동할때 주로 그런다. 그러다가 문뜩 나의 모습을 바라보고선 깨닫는다. 내가 어땠는지. 끼부리고 귀여운 척하고 웃고 떠들고 약올리고 좀 미친거 같다. 이게 내 본 모습인가?


-목욕탕의 벗은 남정네들: 이 사회에서 나는 ‘남성’의 벗은 몸을 실컷 볼 수 있다. 이렇게만 말하면 좀 부럽기도 하겠다. 벗은 몸을 보는 것만으로는 사실 성적으로 흥분되지는 않는다. 어쩔 때는 그저 벗은 몸이 많은 배경일 뿐이고, 멋진 몸을 사례1처럼 눈으로만 먹기도 한다. 물론 멋진 몸을 볼 때면 사례2처럼 상상과 함께 몸이 반응하기도 한다. 멋진 몸이 아니더라도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면 또다른 느낌의 상상과 함께 몸이 반응하기도 하고. 사례3처럼 욕구가 왕성할 때는 사례1과 사례2의 경계가 모호하기도 하지만 욕구가 별로 없을 때는 경계가 분명하기도 하고. 

-털: 내 다리털이 징그러웠다. 없다가 생겨서 그런 것도 있겠지. 매끈한 다리가 더 이뻤다. 그게 내 다리이고 싶었다. 하지만 털이 있는 남자다리는 또 섹시하다고 느꼈다. 가슴에 털난 것도 그렇고. 다른 사람들보다 털 많은 거에 관대하고 섹시하다고 느끼는 건 내가 털이 많아서 일까? 자신의 몸을 사랑하는 것이 섹시하다고 느끼는 대상에도 영향을 끼치는 걸까?

-멋진 근육을 가꾸는 이성애자 남성과 게이 남성: 섹스어필을 하고 싶은 것도 있겠지만 자기만족이 크겠지? 자신의 멋진 근육을 바라보며 어떠한 감상에 젖어들까? 내가 되고 싶은 모습(워너비)이 되어서 뿌듯한 걸까? 섹시하다고 느끼는 몸이 내 몸이어서 뿌듯한 걸까?(물론 어떤 게이들만이 근육질의 몸이 섹시하다고 느낀다) 내가 되고 싶은 모습과 내가 섹시하다고 느끼는 모습이 같으면 내 몸을 보고 무슨 느낌이 들까? 내가 되고 싶은 몸과 내가 섹시하다고 느끼는 몸 사이에 과연 경계가 명확한 걸까? 

-우아해: 우아해지고 싶었던 것 같다. 정적이고 느리고 부드럽고 차갑고 아름다운. 나 자신을 최고로 의식할 때 우아한 나를 머릿속에 상상하며 움직이고 말했던 것 같다. 그러다 편하게 막 살면 터프해지기도 하고 산만하고 끼떤다. 어떨 땐 되고 싶은 내가 되는 것이 나에게 만족을 주지만 어떨 때는 그게 힘들고 귀찮기도 하다. 나를 계속 보는 건 피곤한 일이다.

-남성/여성으로의 나?: 사례1과 사례4는 무엇이 얼마나 다르고 얼마나 같을까? 나는 ‘남성적’으로 아름답다고 여겨지는 어떤 요소들과 ‘여성적’으로 아름답다고 여겨지는 어떤 요소들에 동시에 만족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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