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움의 기억

싸움의 기억

세상의 모든 ‘폭력’이 종식되는 날이 과연 올 것인가. 나는 언제부터 이렇게 ‘폭력’에 치를 떨기 시작했는가. 체계를 유지시키는 강제력, 누군가를 억누르고 마음대로 하기 위해서 사용되는 힘, 나는 그것을 ‘폭력’이라고 불렀을 것이다. 어느날, 나의 자기방어훈련 경험에 대해서 이야기하면서, 두 사람이 서로 치고 방어하는 훈련을 표현할 말이 생각하지 않았다. 뭐라고 해야 할까. “음음, 우선 폭력이라고 표현할게요.”라고 잠시 양해구하고 그 상황을 간편하게 지칭했었는데, 굳어져버렸다. 전혀 ‘폭력’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는데, 혼란스러워졌다. ‘폭력’이라는 단어가 가져오는 거대함의 문제였을까, 아니면 힘을 사용하는 상황은 ‘폭력’일 수 밖에 없는 것일까. 권위와 권력의 차이처럼, 그런 말장난 같은 차이가 힘과 폭력 사이에도 존재한다고 할 수 있을까.

싸움에 대한 기억이 두 번 있다. 초등학교 3학년, 그리고 초등학교 5학년 그렇게 두 번. 결과는 두 번 모두 참패. 그러니까 이 싸움에 대한 기억은 승리에 대한 기억과는 거리가 멀다. 내몸이다 프로젝트 전까지는 그냥 쪽팔린 기억 정도로 남아 있었다.

첫번째 싸움. 초등학교 3학년 순간의 나는 보호하는 사람임을 과시하고 싶어하는 사람이었다. 좋아하는 여자애 앞에서 자존심 지키려고 버티다가 싸움이 붙었다. 별로 싸우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초등학교 3학년 순간의 나는 물러서면 안된다고 생각했다. 결과는 말했다시피 참패. 결국 ‘기지배’라고 놀리기에, ‘기지배’답게 ‘오빠’를 불러서 해결했다.

첫번째 싸움에서 나는 ‘남성’이었다. 요청하지도 않은 보호를 위해서 싸우고, 그럴 수 있다는 힘을 과시하기 위해서 싸우고, 그러기 위해서는 이겨야 하니까 싸우고. 그렇게 차근차근 쌓아놓은 체계에 맨 꼭대기로 올라가려고 아둥바둥. 그래, 이거, 이게 폭력이다. 난 내가 좋아하는 여자애를 매개로 그 싸움을 했고, ‘오빠’는 나를 매개로 싸움을 했다. 그래, 이건 폭력이다.

두번째 싸움. 운동장 한 가운데서 벌어졌었다. 그곳은 외국이었고, 초등학교 5학년 순간의 나는 그 나라 말도 잘 못하는 동양 아이였다. 초등학교 5학년의 내가 화를 표출할 방법은 몸 밖에 없었다. 그래서 눈물 콧물 다흘리면서 볼쌍사나운 싸움을 벌였다. 운동장 한가운데서 싸우다가 넘어지고, 엎치락 뒤치락, 그렇게 싸웠다.

초등학교 5학년의 나에게 그 싸움은 힘의 과시가 아니었다. 해결하지 못할 화가 커지고 있을 때, 그것을 풀어낼 수 있는 방법을 사용한 것 뿐이다. 힘의 과시가 아니었다고 할 수 있는 건, 상대가 나보다 힘이 쎘었고 내가 이기지 못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상대가 이걸 트라우마로 가지고 있을리 없다는 확신도 있고. “첫번째 싸움은 정당하지 못했지만, 두번째 싸움은 정당했어.”라고 말 못 한다. 하지만 다르다고 말해보고 싶다.

나는 그 때 내 움직임이 폭력이 아니라, 내가 내 몸을 주체적으로 움직였던 경험이라고 말하고 싶다. 상대는 내 몸이 힘을 사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상대는 나를 놀림으로써 자신의 우월성을 드러낸 것이라고 지금은 쓸 수도 있겠다. 그런 부당한 상황에서 제대로 대응하지 않았다면 홧병이 낫을지도 모른다. 트라우마로 남았을지도 모르지. 또 저기에 불쌍한 나 하나가 늘어났을지도 모른다. 비록 참패했을지 몰라도, 난 힘을 씀으로써 위협에 대한 두려움을 남겨두지 않았다. 이 기억을 폭력으로 규정하고 싶지는 않다.

이 기억을 명명하는 것은 생각보다 복잡했다. 그것은 내가 이 경험을 자랑거리로 삼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주위에서 이 싸움을 보던 다른 사람들은 어떤 식으로 해석했는지 알 길이 없기 때문이다. 보기에 따라서는 원래부터 ‘강함’에 대한 욕구가 있는 아이의 폭력 상황이라고 바라보았을지도 모른다. 별로 내 경험이라고 해서 꼭 붙들고 고정시켜버리고 싶지 않다.

그러니까 이 경험을 통해서 어떠한 폭력과 힘 사용하기의 구분점을 제시하지는 않을 것이다. 사실 나와 다른 경험들에 대해서 듣고 고민하고 있는 시점에서는 그 구분점이 명확해지는 것이 가능한지조차 의문이다. 무엇을 폭력으로 바라보고, 힘쓰기의 경험으로 정의하는 지는 각자의 맥락을 가지고 있을 뿐이다. 난 내 경험을 정의할 뿐이고, 다른 사람들도 자신의 경험을 되짚어보면서 이 두 구분점을 고민해보기를 바랄 뿐이다. (중요한 추신: 여기에서 자신의 위치는 고려하지 않은 채 자신에게 가해지는 모든 것을 폭력으로 규정하려드는 혹은 상대성의 개념을 들이대며 무조건 자신의 행위를 폭력이 아니라고만 우기는 개념없는 행위는 가차 없이 버리는 것이 당연하다.)


웹진2 내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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