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소리

목소리.

재작년인가, 친구네 집에 놀러갔었다. 바비큐파티를 해준다기에 놀러 갔었는데 그 곳에서 친구네 아버지와 만났다. 나는 ‘정중하게’ 한 손을 다른 손으로 받치며 악수를 하고 “안녕하세요.”라고 말했다. 함께 놀러온 다른 이들은 순간 나를 보며 놀라워했다. 그리고 나 또한 내 목소리에 놀랐다. 이런 중저음의 목소리를 내가 내다니. 낼 수 있다니?

평상시에 난 좀 높은 편의 목소리로 이야기한다. 약간은 느끼한 것 같기도 하고 말이다. 소위 ‘여성’적 목소리, ‘남성’답지 않은 목소리로 이야기하는 것이다. 그런데 어느 순간 싹 그 목소리를 지워버리고 다른 목소리로 이야기를 할 때가 있었다. 그 순간들을 생각해보니 ‘남성’ 사회의 인물과 만날 때였던 것 같다. 어느 정도 권력을 쥐고 있는 ‘남성’-내 정체성을 숨겨야 해요..라고 120% 온 몸으로 느끼게 하는 사람-을 만났을 때 나는 평상시의 내 목소리가 아닌 ‘남성’ 사회의 일원으로서 가져야 할 목소리를 지니게 되는 것 같다.

이게 바로 가면이구나 싶다. 내 목소리는 ‘남성’으로서 지니면 안 되는 목소리였기에 ‘남성’들로부터 뭔가 의심을 받거나 미움 받아서는 안 되는 자리라고 느끼면 나는 변장하는 것이다. 나 자신도 모르게 말이다. 친구네 아버지를 만났을 때 낸 목소리를 내보려고 몇 번 시도해 봤지만 나오지 않았다. 내가 내 목소리를 조절할 수 없다니.. 상황이 내 목소리를 통제하는구나. 좌절이다.

나는 큰 목소리를 내본 적이 별로 없다. 어릴 때부터 남들보다 높은 편이었던 내 목소리를 부끄러워했기 때문이다. 예전에 지리산을 올라갔을 때 다들 메아리를 들으려고 “야~호~”라고 길게 크게 자신의 목소리를 내뿜을 때 나는 그러지 못했다. 내 메아리가 두려웠으니까. ‘남성’답지 않다고 여겨지는 나의 목소리가 부끄러웠으니까.

크게 마음껏 그것이 비명이든, 고함이든, 자지러짐이든 외치고 싶을 때가 순간순간 있어왔다. 너무너무 외치고 싶어서 입을 크게 벌리고 온 인상을 찌푸리며 외치고자 했던 때들이 있었다. 하지만 소리는 나오지 않았다. 감히 외칠 수 없었다. 갑자기 누가 아무런 일도 없는데 비명을 지르면 윗집, 아랫집, 옆집에 민폐겠다 싶기도 했지만.. 내 목소리에 대한 불안감 혹은 자신감 없음과 이로 인해서 그렇게 큰 소리를 내 본 경험이 없다보니 할 줄을 모르는 것이 아닐까 싶기도 했다. 비명 지르고 싶은데 못 지른다니.. 슬픈걸.

역시 등산을 두 번 다시 하지 않겠다고 생각했었지만(힘들어서) 만에 하나 기회가 있다면 이번엔 좀 뭐라도 외쳐봐야겠다. 돌아오는 메아리를 똑바로 들으면서 말이다. 내 평상시 목소리가 산 너머 너머로 울리는 것도 나름 … 재밌을 듯. 오 – 완변 사람들이 등산할 일 없을 것 같긴 하지만.. 다 같이 한 번 해보면 재밌겠다. 냠냠.

웹진2 내몸이다

3 thoughts on “목소리

  1. 저는 낮은 제 목소리가 싫다는..
    불이익이 많더라도 여자같은 목소리였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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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목소리에 맺힌 건 저도 많은 듯하네요. 저는 목소리가 여자같거나 한건 아닌데 예전에 그랬거든요. 그래서 일부로 굵게 내려고 노력하고.. 그래서 더 힘들고. 사람은 자기자신으로서 살아야하는 거잖아요. 꾸며냄은 … 지치죠. 지쳤었는데 언제부턴가 저는 그냥 저대로 살아보려고 마음 먹었더니 그래도 조금 편하네요. ^^ ㅋ 고함 마구 지르고 싶네요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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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와아아~ 다같이 오이,토마토,참외 같은거 싸들고 등산소풍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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