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미정

지금 와서 돌이켜 보건데, 나는 어렸을 적에 스스로를 ‘여자’에 가깝다고 여겼다. 인형을 갖고 놀 때나 어떤 행동에 대해서 ‘남자답지 못하다’는 소리를 들을 때마다 내가 남자로 태어난 것이 싫었다. ‘나는 왜 남자답지 못 하지?’라는 의문이 들면서도 ‘남성성’을 획득하기 위한 노력은 하지 않았다. 내가 여자가 아니라서 문제가 된다고 생각했을 뿐, 그 외의 다른 건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초등학교 시절을 보내고 중학교에 들어오면서 내 정체성을 확립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굳이 계기를 찾으라면 남자를 성애의 대상으로 보기 시작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고 나니 정체성에 대한 고민이 커질 수밖에 없었다. 남자가 남자를 좋아하면 안 되나? 난 정말 여자가 되고 싶은 걸까? 그럼 성전환 수술을 해야 할까? 여기에 이르자, 이런 생각을 하게 됐다. “난 남자로서 남자를 좋아하는 거지, 여자가 되고 싶은 건 아니야.” 아마 두 가지 이유 때문이었던 것 같다. 하나는 ‘트랜스젠더는 수술을 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이었고, 하나는 수술에 대한 공포였다. 당시에는 트랜스젠더를 하나의 정체성으로 받아들이지 못 하고 수술을 꼭 해야 하는, 어떤 결점을 갖고 있는 것으로 여겼다. 수술에 대한 공포는 말 그대로 ‘몸에 칼이 닿는 것’에 대한 공포였다. 페니스를 떼어내면 아프지는 않을까 하는 원초적인 공포들 말이다.

그런 이유로 나는 여자가 되는 것을 선택하지 않았다. 그리고 한 번도 스스로가 남자에 가깝다고 느껴본 적 없던 내가 남자가 되는 것을 선택했다(이런 표현이 마음에 들진 않지만.). 어쩌면 편하게 가고자 하는 얄랼한 생각에서였을지도 모른다. 그 당시에 트랜스젠더와 게이의 개념에 대해서 정확하게 자각하고 있진 않았겠지만, 트랜스젠더를 하나의 정체성이 아닌 고쳐야 할 결점이 있는 무언가로 생각했기 때문에 나를 ‘생물학적으로 나를 바꾸려는 시도’보다 ‘게이로서의 정체화’가 더 쉽게 느껴졌던 것 같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러한 이성애 중심적인 압박이 왜 생겨났는지 알게 되었고, 그러한 것에 개의치 않아도 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성별과 정체성에 나를 속하게 할 필요도 없고, 속하게 하는 틀도 결국 편견이란 걸 알게 됐다. 그러자 나의 정체화 방식이 이성애 중심주의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성별에 근거해 스스로를 게이로 정체화 했지만, 성별에 근거했다는 것 자체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다른 방식으로 정체화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것도 의문이 들었다. 꼭 그렇게까지 해야 할까?

내가 게이로서 살아온 경험도 분명히 있고 앞으로도 마찬가지다. 그런 내 경험들을, 성별에 입각해 정체화를 하면서 억눌러야 했던 내 욕망들처럼 또 무시하고 싶지는 않다. 다른 방식으로의 정체화가 내 필요가 아닌 외부의 요구에 의해서 행해지는 것 같은 느낌이 자꾸 든다. ‘정체성’이라는 정의 자체에 대한 의문도 계속 일어나지만, 또 한 편으로는 정체성으로 나를 설명하는 것에 기대고 싶기도 하고, 때로는 다 집어치우고 ‘나는 나에요.’라고 소리치고 싶기도 하다. 나를 설명할 수 있는 범주가 없다면 그냥 ‘나’이고 싶다. 게이인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면 그것도 그것대로 내버려 두면 안 될까. 그랬으면 좋겠는데. 힝.

웹진2 내몸이다

One thought on “제목 미정

댓글 남기기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입력창은 * 로 표시되어 있습니다

This site uses Akismet to reduce spam. Learn how your comment data is process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