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의 불빛, 이모, 반장님

“단 하나의 불빛이 된다는 것이 어떤 심정인지 선생님은 모르실 겁니다.” 내가 어리둥절해하며 그 뜻을 묻자 그 어머니는 말했지요. “오늘 밤 집에 가시거든 어두운 방에 앉아 두 눈을 감고 깜깜한 밤하늘을 머릿속에  떠 올리세요. 그리고 당신이 지금껏 살아오는 동안 자발적으로 당신을 도와주었던 사람들을 떠올리며 한 사람에 별 하나를 그려 보세요. 그들이 당신에게 더 중요한 사람일수록 그 별들은 더욱 환하게 빛날 것입니다. 선생님이 마침내 상상을 끝냈을 쯤에 하늘에는 수많은 별들이 환하게 빛나고 있음을 알게 될 것입니다(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도와주었다는 뜻). 근데 저의 경우, 제 아들에게는 제가 유일한 하나의 불빛입니다. 내가 죽으면 그 아이는 어둠 속에서 살아갈 것입니다. 그 생각이 저를 두렵게 만듭니다.” 그 말을 마치고 우리는 함께 울고 말았습니다.

«331쪽, 카린 멜버그 슈비어 • 데이브 힝스버거, 어른이 되게 도와주세요!»

어린 시절, 이모는 방학때마다 잠깐씩 우리집에 와 있었다. 짧은 커트머리에, 주근깨, 갸름한 얼굴, 꺾여있는 손목/척추/목, 퉁퉁한 발, 그리고 침. 이모는 침을 참 많이 흘렸다. 엄마는 침 닦으라며 손수건을 쥐어주고 볼 때마나 “침 스읍”이라며 삼키라고 했지만, 언제나 나오는 양이 삼키거나 닦는 양보다 많았다. 그래서 집을 돌아다니다 미끄덩하고 침을 밟는 경우가 허다했고 그럴때마다 찝찝하고 발에서 냄새는 안 나나 맡아보곤 했다. 이모는 잡지보는 걸 좋아해서 열심히 침을 발라가며 1시간이고 2시간이고 잡지를 보곤 했다. 잡지를 한장한장 넘기는 걸 더 좋아한 것 같다. 이모는 피아노를 치거나 듣는 것도 좋아했다. 외할머니가 피아노 선생님이셔서 어렸을 적이 떠오르나 보다. 장난칠 땐 얼굴에 주름이 다 잡히도록 숨 넘어가게 꺼헉꺼헉 웃으면서 침을 더 많이 흘렸다. 초콜릿을 좋아했고, 고기를 좋아했다. 심통이 나면 옷에다 오줌을 싸버리기도 했다. 엄마가 아무리 혼내도 고집이 얼마나 센지 장난이 아니었다. 오만상을 다 찌푸리며 소리지르고 울고 옷을 다 벗어던지고.(이모는 브라을 안 했다.) 엄마가 매를 가져오면 잘못했다고 빌면서 마무리되곤 했다. 엄마랑 같이 기도할 때는 매우 성실한 자세로 임했고 끝에 아멘~은 같이 했다. 가끔씩 손으로 저 멀리를 가리키고 “엄마”라고 말하곤 했다. 엄마는 “지금은 엄마가 멀리에 있으니까 못 보고 나중에 보자” 며 달랬지만, 이모는 온 몸을 흔들며 싫다고 때를 썼다. 달래느라 애를 쓰는 엄마의 얼굴은 슬퍼보였다. 엄마가 나와 동생에게 잘해주면 이모는 질투해서 화난 얼굴을 하고 우리보고 저리가라고 하기도 했다. 이모는 엄마 손을 잡고 구부러진 다리로 비틀 비틀 걸으며 산책을 하곤 했다.  이모의 ‘집’에 돌아가는 전 날이면 멀미가 심한 이모는 귀미테를 붙힌채로 잠을 잤다. 다음날 가기 싫다고 떼를 쓰는 이모와 화냈다가 달랬다가 울기도 하는 엄마 사이의 실랑이로 한바탕 전쟁을 치루곤 했다. 우리가 커가면서 이모가 집에 오는 일은 뜸해지고 대신 엄마가 이모 ‘집’에 찾아가곤 했다. 쇠고기를 넣고 볶은 고추장과 초콜릿, 과자, 치킨, 과일들을 싸가지고. 처음 엄마를 따라 이모 ‘집’에 갔을 때 나보다 나이가 많은 어른?이 나에게 달라붙어 나는 겁을 먹었다. 사람들이 다 생소하고 무서웠다. 냄새도 싫고. 빨리 집에 가고 싶어서 안달이었다. 그러면서도 왠지모를 죄책감이 들었던 것 같다. 아주 오래전에 외할머니가 이모와 함께 자살하려고 한 적이 있었단다. 농약을 가지고 아무도 없는데에 갔다가 못하고 돌아왔다고  했다. 지금은 미국에 사셔서 자주 못 뵈는 외할머니는 전화로  “천국에서는 아픈 사람도 없고 이모도 말도 잘하고 행복할거라며” 우리에게 하나님을 믿으라고 하시기도 했다.

얼마전 생일인 사람들에게 떡케익이 나왔다. 그런데 떡케익을 장애인이 만들었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농담으로(그래! ‘농담’으로) “케익에 침 들어간 거 아냐?” “으웩~” 뭐 그런 말들과 표정들을 하며 놀았다.(그래. ‘놀았다!’) 그 때 반장님이 “오히려 장애인들이 더 신경써서 깔끔하게 만든다”고 그랬다. 살짝 의외였다. 오늘 반장님네 애가 아프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냥 아픈게 아니라” 선천적으론가? 기관지가 안 좋다고 그랬다. 난 떡케익 때의 반장님이 떠올랐다. 내멋대로 상상력을 발휘해 ‘아하! 이거였구나’ 했다. 왠지 반장님이 조금 친근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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