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성폭력상담소에서 퍼옴]낙태를 경험한 한 여성이 상담소에 보낸 메일입니다

 며칠 전, 상담소에 익명의 발신자로부터 메일 한 통이 도착했습니다. 상담소의 활동에 대한 지지를 보내며 본인의 낙태 경험을 나누고 싶다는 내용이었습니다. 

 프로라이프 의사회의 고발조치 이후 계속되는 논쟁 속에서 정작 수술을 경험한 여성의 목소리는 거의 드러나고 있지 않은 가운데 조심스럽게 보내주신 글이었습니다. 담담하게 써주신 이야기에 가슴이 아프기도, 우리 상담소에 대한 지지의 메시지에 감사한 마음이 들기도 했습니다. 메일을 주신 분께, 이렇게 어려운 이야기를 나누어주신 점에 감사드린다는 말씀을 전합니다. 또한 아무쪼록 더 많은 여성들이 본인의 경험을 나누며 서로에게 힘이 되는 날이 오기를 바랍니다. 상담소도 여성의 삶과 몸에 대한 결정권을 지켜내기 위해 열심히 뛰겠습니다.

 보내주신 메일은 본인 동의 하에 여러분과 나누고자 합니다. 전문을 아래에 첨부합니다.


 한국성폭력상담소에 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이름을 밝힐 수 없는, 낙태를 경험한 누군가입니다.

 한국성폭력상담소에서 최근 낙태와 관련된 입장을 밝히고 열심히 활동하시는 모습에 지지를 보내며 메일 드립니다.

 제 경험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상담을 요청하는 것은 아니고, 그저 이렇게 느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전하고 싶어서요. 물론 저의 경험이 낙태를 경험한 모든 이의 이야기와 일치할 수는 없겠죠. 그래도, 이렇게 이야기하는 것이 활동하시는 데 조금 더 도움이 될 수 있다면 좋겠다는 마음에 메일 써요. 도움이 된다면 익명처리가 된다는 전제 하에 아래의 이야기는 다른 분들과 함께 보신다거나 마음대로 편집/수정하여 유용히 쓰셔도 좋아요. 하지만 쓰실 경우에 편집을 거치시게 되면, 제가 의도한 바와는 달리 편집되는 것은 원하지 않으니 메일을 주시면 좋겠습니다.

 어디서부터 시작하면 좋을까요. 저는 20대 중반의 여성이구요. 제가 수술을 받은 것은 몇 년 전, 그러니까 제가 20대 초반일 때네요.

 그 전까지 저는 굉장히 ‘크고 아름다운’ 이야기들에 빠져있었던 것 같아요. 국제적인 정의니, 인간이 가져야 하는 기본권으로써의 인권이니 하는 것들이요. 당위는 너무 많은데 세상은 왜 이렇게 아름답지 못할까 많이 생각했던 것 같아요. 그렇다고 실천을 열심히 한 것도 아니지만요. 낙태는 특히 저의 종교와 관련해서 많이 관심을 가졌던 부분입니다. 낙태라니, 세상에 그런 일을 어떻게 할 수 있는 거지, 생명을 어떻게 죽일 수 있어, 라는 마음으로 낙태 문제를 늘 바라보았던 것 같습니다. 인류 모두를 위해, 그 안에 속한 모든 개개인을 위해서 그런 일은 있을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저는 임신하게 되었습니다. 믿을 수 없었죠. 처음에는 생리불순일 것이라고 여기다가, 몸이 너무 이상해서 조금씩 의심을 하다가, 결국에는 테스트기를 사서 보니 임신이 맞다고 하더라구요. 참..테스트기를 사서 화장실에 들어가는데 왜 그렇게 떨리던지요. 테스트기를 사는 것도 너무 부끄러워서 애인에게 사달라고 해서 전달 받았었거든요. 그런데 그걸 직접 받아들고 화장실에 가는데 제일 먼저 드는 생각이, 누구 아는 사람이 이 주변에 있지는 않을까…였습니다. 까만 봉지에 테스트기를 겨우 숨겨 화장실에 들어가서는, 검사를 하는데 마음이 이상했습니다. 임신일까봐 두려운 마음도 정말 많았지만 왜 이렇게 눈치가 보이는 건지 싶었어요. 보는 사람도 없는 것 같은데. 아는 사람도 없는데. 애인은 나만큼 마음 졸이고 있을까. 나만 이런 건가.

 하여간 그래서 검사를 해보니 양성이 나왔어요. 테스트기를 사기 전에도 많이 생각했었는데, 결과가 나오고 나서도 결론은 하나 뿐이더라구요. 애인은 아무리 ‘책임을 지겠다’고 얘기한들, 아직 학생인 제가 어떻게 살지도 모르는데 결혼은 뭐고, 또 양육은 어떻게 할 수 있을까요. 당장 부모님한테 말씀드리는 것만으로도 집에서 쫓겨날까 치가 떨리던걸요. 출산을 한다면 제 미래는 어디로 어떻게 달아나버리는 걸까요.

 결과를 받아들고 애인과 저는 크게 얘기할 수도 없는 노릇이라 주변 피씨방에 들어가서 메신져로 대화하면서 산부인과를 알아봤습니다. 애인도 처음에는 의기양양하게 결혼하자고 하더니, 테스트기를 사오던 시점부터 잠잠하더라구요. 별로 할 수 있는 말이 없었겠죠. 피차 학생이었으니까요. 결혼이 어디 그렇게 쉬운 대안이던가요.

 그 뒤로는, 병원 예약하고 수술받고 정신없이 지나갔습니다. 물론 그 정신없다는 게 당시에는 쏜살같이 지나갔다거나 그런 게 아니었지만요. 밤에 침대에 누우면 ‘아기’한테 미안해져서 울었습니다. 괜히 배를 쓰다듬으면서 미안하다고 얘기를 하고, 몇 년 후에 우리가 만났다면 어땠을까, 그런 얘기들을 혼자 했던 것 같아요.

 그러는 중에 애인과 다툼이 잦아지고 .. 그런 과정들이 있었습니다. 저는 주로 ‘내가 이렇게 힘든데 왜 몰라주냐’라는 이야기를 했고, 애인은 그럴 때면 ‘나도 힘든데 내색 안할 뿐이다’라고 반박하곤 했습니다. 결국 돌고 도는 이야기들을 결국 계속 했던 셈인데, 아직도 제가 괜한 투정을 부렸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왠지 억울한 느낌이 있었고, 헤어지고 나서도 쭉 그런 생각이 들어서..

 그때부터 쭉 이어져오는 억울한 감정은 애인을 향한 것이기도 하고 ‘크고 아름다운 이야기들’로 모든 당위를 실제로 존재하는 사람과는 관계없이 추상적으로 만들어버리는 세상에 대한 것이기도 한 것 같네요.

 애인에 대해서는, ‘결국에 수술을 받은 것은 나이고, 이 기억을 내 몸에 각인시켜 살아가야 하는 것은 너와 나 중에 나 뿐이다’ 하는 억울함이 컸던 것 같아요. 물론 중절수술에 대해서 저만 힘들었다고는 얘기할 수 없겠지만 애인의 경우에는 회피하고 싶으면 상대적으로 쉽게 회피할 수 있는 것은 아닐까 싶어서요. ‘나는 내가 밝히건 숨기건 이 사회의 기준에서 망가진 몸인데, 너는 그렇지 않잖아’ 하는 억울함도 연속선상에 있는 감정인 것 같구요.

 내가 수술에 대해 이야기한다면 앞으로 살아갈 날이 창창한데 제대로 살아갈 순 있을까, 주홍글씨가 내 온몸에 씌여지는 것은 아닐까 무서웠어요. 하지만 그것이 무섭고 실제로도 제가 잘못했다고 자책하는 가운데에서 수술 사실에 대해 숨기는 것은 또 어떤 것일까.. 말하지 않는 것 역시 나 혼자에게만 이 모든 문제의 책임을 지우는 것은 아닌지, 힘들었어요.

 요즘에는 많이 나아졌지만, 길을 조금만 걸어도 볼 수 있는 유모차 속의 아기들을 보면서 내가 그 때 아이를 낳았더라면 저아이보다 컸을까, 작았을까, 저렇게 자랐을까, 그런 생각들 때문에 너무 힘들었던 때도 있구요.

그런 힘든 마음이 들 때 무엇보다 가장 원망스러웠던 건, 제가 이전에 중요하게 생각했던 ‘크고 아름다운 당위들’이 저를 쏙 뺀 크고 아름다운 당위들이었던 것 같아 배신감이 들더라구요. 제가 앞으로 살아갈 날에 대해 걱정하는 것은 이기적이고 반인륜적인 행위이고, 그래서 낙인찍혀야 한다는 사실이 참 견딜 수가 없었어요. 저도 나름대로 열심히 수험생활을 거쳐서 대학에서 공부를 하고 있고, 그렇게 공부하고 졸업해서 남들만큼 잘 살고 싶은데 그게 저한테는 비범한 목표가 되어버리는 느낌이 들었거든요.

 또 당시의 애인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지…이 부분은 제가 감히 상상하고 단언할 수는 없는 부분이지만, ‘내가 실수를 했다. 도대체 어쩌다가 실수한 거야. 정말 지우고 싶은 기억이다’라는 식으로 생각하지는 않을까 싶었어요. 실제로도 그런 식의 얘기를 지나가듯 하기도 했구요. 실수라니..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기는 하지만 이 상황에 와서 하는 고민이 기껏 한 때의 잘못에 대한 후회라니. 이상했어요. 내가 바로 옆에 있는데 내가 어떤 생각이 드는지 어떤 걱정들이 쌓여가는지 어떤 죄책감을 갖는지, 그런 것들은 고민하지 않는 것 같았거든요.

 요즘 낙태고발조치 등 일련의 정부 단속들도 누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는 관심이 없는 것 같아요. 그런 배신감을 알까요? 보편적인 인권에 대해 이야기를 듣는데도 막상 나는 저 이야기에서 빠져있다는 느낌. 권리라는 이름 안으로 보호할 필요도 없는 사람 이하의 사람이 바로 나라는 느낌. 나는 이미 망가진 몸이라서 뭘 해도 안 될 거야, 하고 스스로를 낮춰야만 그래도 살 수 있을 것 같은…스스로가 비굴해지는 그런 느낌. 심지어 이런 미묘한 기분들은 애인과도 공유할 수 없는, 나만이 책임져야 할 것이라는 그런 느낌.

 제가 느꼈던 그 억울하고 슬픈 감정들을 단지 미혼모를 지원해주는 정책을 확대하겠다고 해서 해결되지는 않을 것 같아요. 낙태를 경험한 사람이나, 미혼모가 된 사람이나 결국은 비슷한 시선을 받잖아요. 전자는 드러내고 말고를 선택할 수 있고, 후자는 그럴 수 없다는 차이는 있겠네요. 하지만 전자가 그런 선택을 할 수 있다고 그게 선택권이라고 얘기할 수는 없을 것 같아요. 얘기를 하면 사람들의 시선에 노출되지만, 얘기를 하지 않고 있자니 저의 경우에는 제 안에서 저를 모질게도 괴롭히더군요. 타인의 시선이건 자신의 검열이건, 그것들은 결국 원래 자신이 갖고 있던 삶에 대한 목표들을 하나하나 밟아버린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내가 원래 생각했던 평범한 삶이란 내게 너무 큰 꿈이야, 이렇게 자책하도록 말이예요.

 시선. 왜 여성에게는 망가진 몸과 온전한 몸이라는 기준이 쉽게 덧씌워지는 것일까요. 이 질문을 하기까지도 한국사회는 아직 멀디 먼 것 같은데, 낙태고발부터 한다니 참 슬픕니다. 그렇게 사람들이 이중적 잣대로 여성들을 보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도 않을 거면서 ‘더럽혀진 미혼의 몸’을 세상에 한껏 알리라고 말할 수 있는 걸까요.

 그렇기 때문에 한국성폭력상담소에서 더 열심히 맞서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낙태를 경험한 이후에 뼈저리게 느끼는 것은, (물론 성폭력이 발생하는 것은 단순히 하나의 이유 때문은 아니겠지만) 앞서 말한 여성의 몸에 대한 시선 때문에도 성폭력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제가 이렇게 이야기하지 않아도 많이 공부하셔서 잘 아시겠지만요. 여성의 온전함 몸을 침범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이며, 더럽혀진 몸을 보면서 경멸을 표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지…많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지금이라고 해서 제가 수술한 사실에 대해 죄책감을 완전히 덜지는 못했습니다. 아직도 뉴스기사를 보면 제 경험이 떠올라 심장이 떨리고, 어디 가서 낙태에 대한 논쟁을 듣게 되지는 않을까 걱정하며 매일을 보내고 있습니다. 그렇게 해서 듣게 되는 프로라이프의 논지들은 아무리 피해가려 해도 가슴을 쿡쿡 찌르거든요. 괜찮아질 날이 올까요?

부디 한국성폭력상담소의 이야기가 널리널리 퍼지길…기대해봅니다.

아, 내용에서 계속해서 낙태라는 단어를 썼는데 제가 좋아하지는 않는 말입니다. 하지만 이슈가 워낙 ‘낙태고발-반낙태고발’이라고 이름이 지어져서 쓰게 되었네요. 태아를 죽인다는 이야기가 반복되는 것 같아서 마음이 무겁습니다. 이런 것까지도 부탁드릴 수는 없겠죠.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써봅니다.

 쓰고보니 제 얘기만 너무 많아서, 이게 정말 도움이 되기는 할지, 짐만 되는 것은 아닐지 걱정되네요. 생각해보니 이미 많은 상담을 거치셨을 것 같구요. 하지만 활동에 쓰게 되건 아니건 상관없이 제가 지지한다는 마음을 표할 겸, 아직 누구에게도 제대로 이야기해보지 못한 제 이야기를 쏟아낸 겸, 보내요.

 

 늘 힘내세요. 천천히 가더라도 힘은 잃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출처: 한국성폭력상담소 블로그 http://stoprape.or.kr/139

 —————————————————여기서부턴 오리 글

전부터 친하게 지내던 누나가 학교식당에서 나에게 할 말이 있다며 수줍게 내 눈치를 봤었다.

자신의 낙태 이야기를 해 주었다. 아마 내가 커밍아웃하기도 했었고 그만큼 신뢰가 있던 사이였고, 총여학생회에서 활동하는 것도 알았기에 “나”에게 말해주지 않았을까.

그 때 난 별 공감을 해 줄 수 없었다. 내가 피곤한 상태여서 이기도 했지만 내가 상상할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니었다. 미안하다.

미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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