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미쳤다.

내가 먼저 말려 버렸다.

며칠 뒤,

조용해지고 차분해지고 필요한 만큼만 친절해진 나는 그가 더 미워졌다. 그가 자기 물건은 애지중지하면서 후임들 건 그러지 않는 거나, 예전에는 욕설을 싫어한다더니 이젠 막 하는 거나, 어떤 선임이 자기를 육체적으로 건드리는 것에 극도의 혐오/두려움을 가진다고 얘기했으면서 자기는 후임 침대에 가서 껴안는거(이건 내가 못하는 걸 걔가 해서 싫은 것도 있다). 너무나 거슬린다. 다른 후임이 팬티 입은 채 까불거리는 걸 보고서는 그가 또 뭐라고 할까봐 내가 깜짝 놀라 위축되는 걸 느낀다. 자려고 누워 있는데 속이 엉망진창인게 느껴진다. 아무 말도 안하고 아무런 관계도 맺지 않고 사는 건 너무 외롭다.

<남자보다 여자가 좋아 사건> 직후 그날 저녁에 내 상태가 좋지 않자, 그는 눈치채고 “자기한테 할 말이 없냐고, 자기가 잘 못한거 없냐?”고 했다. 없다고 했다. 니가 잘못했으면 다 잘못하는 거지,라고 했다. 그는 “그거 봐” 이러면서 주저리 주저리 “그럴 것 같았다”는 둥, “말하고 나서 실수한 것 같았다”는 둥, 자기는 “여성의 몸이 아름답다는 얘기를 하려는 것이었다”는 둥, 그런 이야기들을 했지만, 나는 알아,알아!라고 말을 다 끊어 먹었다. 그리고 더 말하지 못하게 필요한 만큼만 친절하게 웃었다. (애정을 너무 줬다.  선후임이라는 권력관계 속에 자신을 숨긴 그를 너무 믿었다. 하지만 애정을 줄 사람이 필요하기도 했다. 그만큼 배신감이 느껴진다. 배신감이란 참 어처구니 없다.) 내 편지까지 받은 적이 있는 그는 내가 대충 어떤 거에 민감한지 안다. 왜 그런지는 모르고. 말해봤자 못 알아들을 거다. 그치만 말이라도 해야겠다. 내가 너무 힘들어진다. 혼자 끙끙 싸매지 않고 막 싸우고 화해하고 그랬으면 좋겠다. (막 싸우지도 못하게 하는 이 쓰레기 같은 계급관계.)

말해야 겠다. 왜 내가 그 말에 그리 기분나빠졌는지. (사실 말이라기 보단 표정과 어투인거 같지만.) 참다참다 폭파되기 전에, 해결이 더 이상 불가능한 상태가 되기 전에 말해야 겠다.

어젯밤 엉망진창인 속을 부둥켜 안고 ‘우리 생활관 모두에게 내가 게이라고 말할까?’했다. 너무 답답했다. 외로웠다. 나는 왜 마음을 여는데 필요한 걸까? 이상했다. 내가 풀어내고 싶고 관심이 가는 이야기는 다 타자/소수자 이야기여서 일까? 커밍아웃을 해도 변하는 건 별로 없다. 공통의 관심사와 비슷한 감수성이 필요하다. 아마 내가 원하는 관계는 만들어지기 힘들거다. 그래도 해야 겠다. 게이에 대한 편견을 지우기 위한 사명감, 이런 거 아니다. 날 가두는게 너무 힘들어서다. 열고 봐야겠다. 하나씩, 하나씩. 너희들이 이 공간에 너희를 드러내듯이 나도 날 드러내야 겠다. 그리고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나에겐 커밍아웃이 그 시작이다. 어젯밤에는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사람도 너무 많았고. 그래서 오늘 밤 선택된 둘에게만 해야겠다. 오해와 편견이 가득 차있는, 어쩌면 나와는 별로 관계가 없을지도 모르는 그 단어로 나 드러내기를 시작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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