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안해

<등장인물: 1,2,3>

힘들어하는 3이 있다. 2는 3에게 무엇이 힘드냐고 물어본다. 평소처럼 상냥하게 “해결해 주려는 거니까 맘 놓고 말해”로 시작했지만, 3이 “자기도 요즘 정신병이 있는 건지 모르겠다며” 약한 모습을 보이자, 태도를 바꿔서 정신차리라며 다그친다. 3이 계속 궁지에 몰리는 게 보여 나(1)는 2에게 화가 난다. 3이 자기 잠자리로 간 후, 2가 “저런 애는 한번 맞아야 정신차리는데”라고 말하는 데서 뻥 터져버린 나는 “말도 안 되는 소리하지마. 화나려고 하네”라고 매몰차게 내뱉고는 밖에 나가버렸다. 그러고는 다시 돌아와 직설적으로 물어본다. “너 아까 했던 말 진짜로 그렇게 생각하는 거야?” 아마 내 표정에서 거기서 그렇다고 하면 앞으로 자신을 쓰레기로 취급할 내가(의도하진 않았지만 나의 협박이) 보였을 것이다. 난 정말 분노에 차 있었다. 2는 나의 행동에 놀라고 서운했나보다. 자신도 3을 도와주려고 했던 건데, 1인 나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서로를 신뢰하는 관계라고 생각했는데, 자신을 그렇게 나쁜사람 취급했다는 거에 서운했다고 길게 풀어놓았다.

나에게 미안하다는 소리를 듣고 싶어 했다. 나는 그 당시 매우 감정적었고, 적대적으로 너에게 쏘아붙인 건 맞다고, 너를 배려했다면 좀 더 돌려서 물어볼 수도 있었다고 말했다. 그리고 “미안해, 미안“이라고 했다. 진심을 담으려 했지만 잘 담기지 않았다. 2는 느꼈을 거다. 뭔가 해결된 느낌이 아니란 걸. 우리는 더 많은 이야기들을 오랫동안 나눴다. 그가 3을 위한다고 취한 방식에 대해 내가 올바르지 못하다고 느끼는 점, 거기에 대한 2의 생각, 자신을 나한테 완벽히 드러내지 않았는데 내가 너무 쉽게 판단한 것 같다는 점, 우리 관계에서 나에게 기대하고 있던 것에 대한 실망, 등. 서로 어느 지점에서는 인정하고 자신의 주장을 폈다. 훌륭한 대화였다.

2가 “3이 너무 안타깝고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이 없고, 어떻게 1이 주장하는 방식으로 도움을 줄 수 있는지. 그럴 자신도 없어서 몰아세워서라도 해결해보려 했다”고 말했을 때,(그 말은 분명 나 들으라고 하는 말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 하는 말이었다.) 난 그에게 정말 미안해졌다. 마음이 따뜻해졌다. 2에게 다가가 꽈악 껴안아주고 “미안해 미안” 라고 가슴에서 나오는 진심으로 말했다. 그는 나에게 “미안해라는 말이 듣고 싶었던 거”라고 말했다. (이제야 들었다는 뜻이겠지.) 우리는 거기서 길고 긴 대화를 끝맺고 잠자리에 들었다. 

적에게는 미안하다고 하지 않는다.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내가 잘못한 것이 아닌 것 같을 때에도 미안하다고 한다.

명확한 이유가 있어서, 이성적으로 생각해보면 내가 잘못한 것이 맞아서 하는 사과는 무미건조하다. 상대방에 대한 애정이 있을 때 그 상처가 나에게도 와 닿을 때, 마음에서 우러나는 사과를 할 수 있고 우리가 원하는 사고는 대부분 이거다. 그만큼 사과는 어렵다. 자기 자존심 때문에 무미건조한 사과조차도 못하는 사람이 수두룩한데 뭐.

내 사과는 (결국에는) 진심이었고 받아들여졌지만 만약 2가 강하게 만들기 위해 마구 몰아세우는 그 방식에 대한 성찰이 없었다면 난 진심이 우러나지 않았을 거다. 어쩌면 그가 나에게 사과를 한 걸지도 모른다. 나의 “미안해”는 조건부 사과였을까? 왠지 그에게 미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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