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세하게 풀어야 할 필요성에서

 우리는 복도에 양쪽으로 정렬해서 점호를 받는다. 당직부사관은 “밤에 다른 침대에 가서 껴안고 불알만지고 그러지 마라”고 한다. 장난스런 말투다. 다들 웃는다. “아까 만지는 걸 봤다”면서 “만지는 사람은 쾌감을 느낄지 모르지만 당하는 사람을 수치심을 느낀다”고 말한다. 다들 더 웃는다. 누구인지 궁금해들 한다. “웃고 있지만 얼굴이 가장 빨개진 사람이 범인이야”라고 한다. 병사들끼리 누군가를 지목하곤 재밌다고 웃고 그는 난 아니라고 항변한다.

나는 이 5분 정도의 시간 속에서 그 날 하루 느낀 감정과 생각보다 더 많은 감정과 생각들에 부딪힌다.

일단 내가 한 것도 아닌데, 왠지 위축되고 당황한다. 남들처럼 웃지 못하는 것 같아, 내 표정이 의식된다. 어쩌면아마도 그 행위가 불러일으키는 성적인 판타지/흥분과 가해자의 위치에 서는 듯한 데서 느끼는 도덕적 죄책감이 충돌해서 이상한 상태에 내가 놓인다.(여성주의를 접하는 이성애자 남성들도 가끔씩 이런 상태에 놓이곤 할 것 같다) 나 외 모든이들이 무언가를 공유하고 있는 듯이 느껴진다. 유체이탈. 몸과 내가 분리된다. 생각을 다잡는다. ‘이건 호모포비아도 아니고, 뭐 필요한 말이잖아. 이정도면 양호해. 정신병이라고 한 것도 아니고. 쾌감을 느낄수 있다고 한 게 어디야.’ 좀 덜 의식적인 영역에선 남성간의 신체접촉(성기접촉을 포함해서)을 “곧바로” 성추행의 영역으로 끌어들이는 것에 대한 불만이 고개를 든다. ‘수치심을 느끼지 않을 수도 있잖아.‘(내 중고등학교 경험상 이는 가능하다) 그랬다가 왠지 좀 구차해지고. 갑자기 생각과 감정이 파도처럼 밀려드는 이 익숙한 상황이 지겨워진다. “또 이러는 구나. 됐어. 이제 그만 잊자. 자자.”

글을 쓰고 읽는 것은 순차적일 수 밖에 없어서 그렇지 언어화되지 않는 덜 의식적인 지점, 감정, 생각들이 모두 얽히고설키고  겹쳐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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