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우자는 마음이면 돼


엄마를 때렸다.


엄마는 세상이 자기중심에서 아빠로, 그러다가 자식들로, 다시 또 나에게로 넘어온 사람이다. 유능하고 독선적이며 막나가지만 그래도 소위 ‘모성’상을 가지고 있는 사람. 엄마는 항상 감정의 기복이 심했다. 그리고 자제를 할 수 없을 때에는 나에게 그 화를 풀곤 했다. 내가 미련한 애라서 매를 벌었다고 이야기하지만. 엄마는 자신이 그 시대에 여성이어서 얻지 못한 것, 자신이 이루지 못한 것을 나에게 투영했다. 자신이 이루지 못한 꿈을 나에게 이루기 위하여 열심히 노력했다. 나도 그 꿈을 위해 열심히 노력했다. 엄마를 기쁘게 해주기 위하여. 다만, 어느 순간 알게 되었다. 내가 그 꿈을 이뤄줄 수 없었던 것이다. 그 사람이 원하는 삶은 내가 원하는 것이 아니었고, 그것을 이뤄주기에는 내가 너무 힘에 부쳤다. 다만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 사람을 기쁘게 해주고 싶은 마음과, 그 사람에 대한 두려움이 막아섰다. 그렇게 우리 관계는 멈춰 있었다.


그런 엄마를 때렸다. 전혀 계획했던 것도 아니었고, 술이 잔뜩 취한 상태였긴 하지만. 엄마는 내가 하라는 공부는 하지 않고, 살이나 찌게 술을 먹고 왔으며 여자애가 술을 취하게 마셨다는 것에 화를 내고 있었다. 엄마의 화는 폭력을 동반한다. 아직까지 왜 내가 그 때 그런 선택을 했는지는 알 수 없다. 어차피 술에 취해있었으니까 기억하기도 힘들겠지만. (지금와서 정당화를 한다면 나의 풀지 못한 화가 그렇게 표출되었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정말 왜 그랬는지 기억하지 못한다. 그냥 시끄러운 엄마가 짜증이 났을수도 있고, 날 때리고 있는게 싫어서 그랬을 수도 있었겠지.) 나는 왼손을 들어 엄마의 오른쪽 따귀를 한 번 때렸다. 짝. 내 손의 얼얼함과 엄마의 충격받은 얼굴, 그리고 곧이어 온 아빠의 구타. 엉망이다. 어떻게 잠이 들었는지는 기억하지 못한다. 다만 아침에 아빠는 나를 깨워 기억이 안난다며 잘못했다고 싹싹 빌라고 하였고(그래, 항상 너는 그렇게 해왔던거야. 무책임한 것) 나는 집에서 나갈 때를 대비하여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 고민만 잔뜩하고 있었다.


생각보다 일은 잘 풀렸다. 이런 일을 해놓고 좋은 결과가 나온 것이 신기할 따름이다. 엄마는 내가 자신이 지고 갈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나는 엄마를 위해 살 수 없다는 것을 내 의지로 표현할 수 있게 되었다. 아직 엄마는 내가 갈 길은 정해져있지만 내가 그 선택을 할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라고 이야기하고, 여성주의 나부랭이 따라다니지 말고 니 인생을 고민하라고 한다. 분명히 아직까지 시간이 필요하다. 그래도 나의 인생은 엄마의 인생에서 분리되었다. ‘때림’은 내가 엄마를 설득하기 위해서 한 말들과 쓴 논리들, 흘렸던 눈물과 부렸던 짜증들보다 더 효과적인 수단이 되어있었다.


나에게 폭력이란 항상 남을 상처 입히는 것이었다. 나에게 온 폭력을 폭력으로 되돌려 주고 싶지 않았다. 폭력은 나에게, 남에게 상처를 입히는 것일 뿐, 그 어떤 도움도 되지 않는 것이었다. 사실, 무서웠다고 이야기하는 것이 더 정확할 지도 모르겠다. 내가 반격을 하면 그 순간 무서운 보복이 돌아오고, 때리면 더 맞고, 그러니까 내가 참으면 일이 좋게 좋게 더 큰 피해를 다른 사람들에게 입히지 않은 채 끝낼 수 있다고 생각했다. 내가 그 자리에서 소리를 지르지 않는 것이, 울지 않고 때리지 않는 것이 이 시간을 제일 빠르게 넘길 수 있는 길이라 믿었다.(그것을 엄마는 매를 부른 것이라고 표현했다. 미련하다고.) 폭력을 쓰는 내 자신을 상상하는 것도 무서웠다. 폭력을 쓰는 나는 아빠와 같은 사람일 것이라 생각했다. 자신의 기분을 위하여 있지도 않은 일까지 만들어가며 사람을 때리는 명분으로 삼고, 그것으로 분을 삭히던 그런 인간이 될 것 같았다. 모든 것을 폭력으로 해결하고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서 이를 효과적으로, 충동적으로 사용하고 또 그것이 당연하다고 믿는 그런 인간이 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더욱 엄마를 때린 순간에 충격을 받았다. 나에게 나 자신은 사람을 때리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사람을 때렸다는 것에 쇼크였고 그것이 엄마라는 사실에 또 한번 놀랬다. (사실,  왜 아빠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내가 누군가를 때렸다는 사실이 나를 ‘사람을 때리는 사람’으로 만들었다. 죄책감에 시달렸다. 나와 내가 그렇게 증오하던 아빠는 같은 사람이 되어 있는 것 같았다. 손을 더럽힌 기분.


하지만 생각을 하다 보니 꼭 그렇지는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때림’과 아빠의 ‘때림’은 결코 같지 않다. 자신의 권력을 휘두르고 자신에게 거역하는 사람을 폭력으로 제압하면 자신의 가부장적 권력을 과시하는 당신과 지금까지 내가 당해온 것들을 이야기하며 더 이상 당하고만 살지는 않겠다는 의지를 표현하는 나는 같은 사람이 될 수 없는 것이다. 그것을 깨닫는데 시간이 걸렸다. 나 자신에게서 죄책감을 덜어내기 시작했다. 그러자 그 ‘때림’은 더 이상 폭력이 아닌 자기방어가 되었다. 나는 너를 상처낼 수 있어. 넌 그래도 돼. 더 이상 나를 건드리지마. 내 나름의 표현방법이었다. 그것도 매우 효과적인. 나는 사람을 때리는 사람이 아니다. 사람을 때릴 수도 있는, 내가 당할 때는 가만히 있는 것이 아니라 방어할 수도 있는 그런 사람이다.


그럼에도 아마 나는 때리는 것을 선택하지는 않을 것이다. 사람을 때리는 것이 나에게는 그렇게 유쾌한 선택지는 아니니까. 하지만 그것또한 나의 선택지 안에 있으며 나는 언제든지 방어할 수 있고 공격할 수 있고 그러한 방식으로도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이 힘이 된다. 싸우자.


덧. 이 사건이 조금만 더 일찍 일어났더라면 웹진에 같이 넣을 수 있었을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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