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구리

 그건 교묘한 작전이었어. 그런 한편으론 또 너구리를 보호한 것이 놈들이니까. 멸종 위기의 동물로 말이야.

그건 왜지?

사람들에게 너구리는 원래 희귀한 것이라는 인식을 주기 위해서지. 동물원에 가야 겨우 볼 수 있는, 또 야생의 너구리는 원래 희귀한 것이라는 인식을 말이야. 또 혹시나 너구릴 만났다 하더라도 절대 만져서는 안 되는 것으로 각인시킨 거지.

사회란 무서운 것이구나.

«박민규, 카스테라, 54쪽»


20~30 퍼센트 정도의 동성애적 경향을 지닌 이들이 80~90퍼센트의 경향을 지닌 이들의 경우보다도 훨씬 쉽게 정상적인 이성관계로 “전향”될 수 있음이 나타나고 있다. 어떤 사람의 성적인 기질을 결정하는 요인들은 대개가 마음 깊이 자리잡고 있으며 복잡하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이성간의 관계를 기독교인의 규범적 삶으로 고백하고자 하면서도 동시에 이성애를 지향하기가 오히려 낯설고 힘이 드는 사람들과 함께하여 공감하고자 하기도 하는 것이다.

같은 성별의 사람에게 단순한 성적 매력을 느끼는 것은 동성애와는 전혀 다른 차원이다. 이러한 매력은 피차 간의 인정이나 애정, 관심 등과 같은 여러가지 요소들로 인해 생길 수도 있는 것이다. 이것은 진정한 의미의 동성애와는 확실히 다르다.

당신이 알다시피 어떤 여인이 그저 단순히 다른 여자에게 성적인 매력을 느꼈다고 해서 그녀가 레즈비언은 아니지 않은가. 역시 어떤 남자가 다른 남자들을 보고 흥분한 것만으로 그를 동성연애자라고 할 수는 없다. 친밀함과 애정의 관계에 있는 사람에게 성적 흥분이란 이상한 것이 아니다. 비정상적이거나 특별한 것도 아니다. 게다가 그토록 엄청난 관심이 성에 대하여 쏟아지고 있는 우리들의 세대에서는 정상적인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들도 성에 의해서 아주 사로잡혀 있다시피 되어 버렸기에 정상적인 형태로든, 동성애적인 형태로든 성표현을 하고자 하는 것이 일반적인 경우라고 볼 수 있는 가능성이 아주 높아졌다. 하지만 역시 이러한 경향은 적극적인 통제와 방향수정을 강하게 요구하고 있다.

동성간의 성적 흥분을 경험했던 사람이라고 해서, 자신의 삶이 동성애적인 경향으로 기울어져 간다고 걱정하지 않아도 좋다. 그러한 경험은 매우 일상적인 경험이며 다만 그에 대해서 확고하고도 적절하게 대처해야 할 필요가 있을 뿐이다. 성적 충동이 자연스럽게 표출될 수 있도록 돕기 위하여 신학적이고 사회학적인 그리고 심리학적인 지침이 필요하다. 이러한 지침이 있으면 마치 기혼자가 혼외정사에 대하여 단호하게 아니라고 할 수 있는 기준이 되듯이 동성연애 행위에 대하여서도 단호히 물리칠 수 있는 그런 지침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성은 마치 원래의 수로를 따라 흐르는 한은 넓고 깊으면서도 유익한, 커다란 강과도 같은 것이다. 그러나 강물이 일단 둑을 넘게 되면 파괴적으로 되듯이, 성생활도 하나님이 주신 한계를 지나쳐 버리게 되면 역시 파괴적이 된다. 따라서 가능한한 우리들의 성생활에 주어진 한계를 명확히 규정해 주며, 넓고도 깊은 성의 흐름대로 자연스럽게 생활하도록 방향지워주는 능력의 한도 내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우리들의 과제인 것이다.

지금까지 나는 동성간에 피차 정상적인 반응(responsiveness)하는 사람들에 대해서 말해온 것이지 동성을 선호(preference)하는 양태로 굳어진 사람들에 대해서 말해온 것은 아니다. 이러한 후자의 사람들을 일컬어 체질적 동성연애자들이라고 부른다. 그들은 아무리 노력해도 단순히 이성간에는 성적 충동을 느낄 수 없으며, 역시 아무리 그러지 않으려고 해도 겉으로나마 조차, 동성간의 성충동을 피할 수가 없다. 사회학자들에 의하면 모든 남성의 악 5퍼센트 정도와 여성의 경우엔 그것의 절반 정도가 자신과 같은 성별의 사람에게 고질적인 성충동을 느낀다고 한다. 이러한 사람들, 우리가 가장 적절한 이름을 붙여준대로, 고질적인 체질적 동성연애자들에게 우리는 과연 무슨 말을 해주어야 할 것인가?

«리처드 포스터, 돈 섹스 권력, 124쪽»

네네. 저는 적절히 이름 붙여주신대로, “고질적인 체질적 동성연애자”인 것 같네요. 보면 항상 열심히 구분을 지으시려는 것 같아요. 당신께 매우 중요할 것 같긴 해요. “없어져야 할” 동성애에 너무 많은 사람들이 포함되지 않도록 말이예요. 충분히 치료되고, 정상적으로 돌아올 수 있는, 잠시동안의 실수로 잊을 수 있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너무 많을 테니까 말이예요. 

저는 당신의 구분에 따른 “고질적인 체질적 동성연애자”가 3~5퍼센트라는 비율을 보고 퍼뜩 이런 생각이 떠올랐어요? 고질적인 체직적 이성연애자는 몇 퍼센트일까? 아무리 노력해도 단순히 동성간에는 성적 충동을 느낄 수 없으며, 역시 아무리 그러지 않으려고 해도 겉으로나마 조차, 이성간의 성충동을 피할 수가 없는 사람들 말이예요. 아마 비슷하게 3~5퍼센트이지 않을까요? 물론 동성애자를 대상으로 한 연구와 비교 가능하도록 모든 조건들을 맞추려면, 꽤나 힘들겠지만요. 실험대상자들을 아주 철저하게 동성애가 자연의 섭리/정상이고 모든 사회 문화, 법, 종교, 경제, 인간 관계가 동성애중심적이어야 할 테니까요. 영화 트루먼 쇼같은 실험세트가 필요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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