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고 있(-는-) 남자 아이

인터뷰어: 그날 아침의 사건을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토모야시: 저는 제 딸이 마사코와 함께 집을 나섰습니다. 딸애는 일하러 나가는 길이었죠. 전 친구를 만날 예정이었고요. 그 때 공습경보가 울렸습니다. 전 마사코에게 집으로 가겠다고 했어요. 그 애가 말했죠. ” 전 사무실에 가봐야겠어요.” 전 자질구레한 집안일을 하면서 경보가 해제되기를 기다렸죠.

침구를 갰습니다. 벽장도 정리하고요. 물걸레로 창문을 닦았지요. 그때 번쩍하는 섬광이 일었어요. 처음에는 카메라 플래시이겠거니 생각했죠. 지금 생각하면 어처구니없는 소리지요. 섬광이 눈을 찔렀어요. 머릿속이 하얘졌습니다. 주변 창문들의 유리가 죄다 산산이 부서지고 있었어요. 어머니가 저한테 조용히 하라고 쉿 하실 때와 같은 소리가 났습니다. 다시 정신을 차려보니, 전 서 있지 않았어요. 다른 방으로 날아가 있었답니다. 제 손에는 아직 걸레가 쥐어져 있었지만, 이젠 바싹 말라 있었어요. 그때 머릿속에는 온통 딸을 찾아야겠다는 생각뿐이었습니다. 창밖을 내다보니 이웃 사람 한 명이 거의 벌거벗다시피 한 꼴로 서 있더군요. 피부가 몸 전체에서 벗겨져 내리고 있었지 뭡니까. 피부가 손가락 끝에 매달려 있었다니까요. 저는 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거냐고 물었지요. 그는 너무나 기진맥진한 나머지 대답도 못 했습니다. 그는 이리저리 사방을 두리번거렸어요. 가족을 찾는구나 싶었어요. 저는 생각했지요. 가야 해. 가서 마사코를 찾아야 해.

저는 신발을 꿰어 신고 공습 대비용 두건을 챙겼습니다. 기차역으로 향했지요. 사람들이 구름처럼 몰려나와 저와 반대방향으로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그들에게서 구운 오징어 비슷한 냄새가 났어요. 저도 혼비백산해서 제정신이 아니었던가 봅니다. 사람들이 바닷가로 쓸려 올라온 오징어처럼 보였으니 말입니다.

한 어린 소녀가 저를 향해 오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 애의 피부가 녹아 흘러내리고 있었어요. 마치 밀랍 같았습니다. 그 애는 나지막이 중얼거리고 있었어요. 마치 밀랍 같았습니다. 그 애는 나지막이 중얼거리고 있었어요. “엄마. 물. 엄마. 물.” 전 그 애가 마사코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아니었어요. 저는 그 애에게 물을 주지 못했습니다. 지금도 그때 일이 마음에 걸립니다. 하지만 마사코를 찾아야 했어요.

저는 히로시마 역까지 내내 달려갔습니다.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지요. 어떤 이들은 이미 죽어 있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땅바닥에 누워 있었어요. 그들은 어머니를 찾으며 물을 달라고 애원했습니다. 저는 토키와 다리로 갔습니다. 딸의 사무실로 가려면 다리를 건너야 했거든요.

인터뷰어: 버섯구름을 보셨습니까?

토마야시: 아뇨, 구름은 보지 못했습니다.

인터뷰어: 버섯구름을 못 보셨다고요?

토마야시: 버섯구름은 보지 못했습니다. 마사코를 찾느라 정신이 없었어요.

인터뷰어: 하지만 구름이 도시 전체를 뒤덮었는데요?

토마야시: 딸애를 찾느라 정신이 없었다니까요. 사람들이 저에게 다리를 넘어갈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전 딸이 집으로 돌아와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발길을 돌렸습니다. 니기쓰 신사까지 왔을 때 하늘에서 검은 비가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이게 뭔가 싶었죠.

인터뷰어: 검은 비를 좀 설명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토모야시: 전 집에서 딸을 기다렸습니다. 유리는 다 깨지고 없었지만, 창문을 열어두었죠. 밤새 뜬눈으로 딸애를 기다렸어요. 하지만 그 애는 돌아오지 않았지요. 다음 날 새벽6시 30분쯤 이시도 씨가 찾아왔습니다. 그이의 딸도 우리 애와 같은 사무실에서 일하고 있었거든요. 그는 마사코의 집이 어디냐고 큰소리로 외치고 있었습니다. 전 밖으로 달려 나갔지요. “여깁니다, 여기예요!” 이시도 씨는 내게 다가와 이렇게 말했지요. “빨리요! 옷가지를 좀 챙겨서 따님한테 갑시다. 지금 오타 강 강둑에 있어요.”

숨이 턱에 닿도록 뛰었지요. 젖 먹던 힘까지 다 내서 뛰었습니다. 토키와 다리에 닿자, 땅바닥에 군인들이 누워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히로시마 역 주변에서는 더 많은 시체를 보았습니다. 7일 아침에는 6일보다 더 많았지요. 강기슭에 갔더니, 누가 누군지 구분할 수 없을 정도였어요. 나는 계속 마사코를 찾아다녔습니다. 누군가의 외마디 소리가 들렸습니다. “어머니!” 귀에 익은 목소리였어요. 나는 차마 눈 뜨고는 못 볼 몰골을 한 딸애를 찾아냈습니다. 그 애는 요즘도 그런 모습으로 내 꿈속에 나타난답니다. 그 애가 말했어요. “왜 이렇게 오래 걸렸어요.”

나는 딸애에게 미안하다고 했지요. “최대한 빨리 온 거란다.” 거기에는 우리 둘 뿐이었어요. 어떻하면 좋을지 몰랐습니다. 전 간호사가 아니었으니까요. 딸애의 상처에는 구더기가 들끊고 끈적끈적한 누런 액체가 고여 있었습니다. 저는 딸애를 닦아주려고 했지만 피부가 벗겨지고 있었어요. 구더기들 천지였는데도 그것들을 닦아낼 수가 없었습니다. 그랬다가는 피부와 근육까지 다 벗겨져 나갈 터였으니까요. 손으로 일일이 구더기를 집어내는 수밖에 없었지요. 딸애가 무얼 하고 있느냐고 묻더군요. 저는 이렇게 대답했지요. “오, 마사코, 아무것도 아니다.” 그 애는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아홉 시간 후, 딸애는 숨을 거두었습니다.

인터뷰어: 그동안 내내 딸님을 팔에 안고 계셨습니까?

토마야시: 네. 제 품에 안고 있었습니다. 딸애가 말했어요. “죽고 싶지 않아요.” 그래서 제가 그랬습니다. “넌 죽지 않을 거다.” 그랬더니 딸애가, “집에 가기 전에는 죽지 않겠다고 약속할게요.” 그렇지만 그 애는 고통스러워하며 계속 울부짖었습니다. “어머니.”

인터뷰어: 이런 얘기를 하신다는 것이 참으로 힘드실 겁니다.

토모야시: 여러분의 단체가 증언을 기록하고 있다는 말을 듣고, 꼭 가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딸애는 제 품 안에서 눈을 감으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죽고 싶지 않아요.” 죽음이란 그런 것입니다. 군인들이 어떤 제복을 입었는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얼마나 좋은 무기를 가졌는가도 상관없습니다. 제가 봤던 것을 모두가 볼 수만 있다면, 다시는 전쟁 따위는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인터뷰가 끝나자 나는 카세트 플레이어의 정지 버튼을 눌렀다. 여자 아이들은 울고 있었고, 남자 아이들은 토하는 소리를 내며 장난을 치고 있었다.«조너선 사프란 포어,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 258쪽»

할머니 병문안을 갔었다. 텔레비젼에서는 천안함 희생자들의 장례식이 나왔다. 할머니는 금방 눈시울이 붉어지시더니, 불쌍해서 어떡하냐고, 요즘 텔레비젼에 천안함 이야기만 나오면 눈물이 난다고 하셨다.

나에게도 너무 충격적인 일이었다. 희생된 이들이 남같지 않았고, 가까운 사람들의 고통이 아픔으로 느껴졌다. 그치만 계속 공감하기는 힘들었다. 오래 지켜보지 못하고 텔레비젼 화면을 돌려버리곤 했다. 그렇게 나는 피할 수 있었다. 하지만 채널을 돌려도 고통에서 벗어날 수 없는 이들이 있다. 뭐라 할 수…

이번 일이 저번 서해교전에 대한 보복이었다는 소문을 들었다. 순간 나 자신에게 놀랐다. 나는 북한군에서 사상자가 생겼다고 했을 때, 슬프기는 커녕 아무런 감정도 없었다. 남한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랬을 것이다. 반대로 북한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번 우리처럼 공감하고 슬퍼하고 위로해했겠지. 그 간극이 너무 무서웠다. 천안함 희생자들이 그렇듯이 나라를 지키기 위해 군대에 끌려가 죽은 사람들. 무엇을 지키기 위해서 계속 사람들이 그렇게 죽어야 하지? 서로를 적으로 만들어 가는 과정이 두렵다.  

One thought on “울고 있(-는-) 남자 아이

  1. 서로 죽고 죽이다보면 더이상 아무것도 상관없게 되버리는 건지도 모르겠어. 전에 수업에서 한국전쟁을 설명하다가 ‘증오’라는 단어가 나온 적이 있었거든, 일본인의 입에서 한국전쟁에 대한 설명을 들으면서 남한과 북한사이에 있었던 그 전쟁에는 분명 서로간에 대한 ‘증오’가 존재했다는 거였는데, 순간 굉장한 반발심이 들었어. 그래서 놀랐어. 왜 나는 이 증오라는 단어를 그렇게 거부하고 싶을까. 왜 선생님의 국적이 일본이라는 게 그렇게 중요해졌을까. 이해할 수가 없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참 무서워. 많이 무서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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