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친구

아는 사람의 애인을 알게 되었다. 말을 하다 보니 그의 컴퓨터 바탕화면의 얼굴이 낯이 익었다. 이제 연애는 나이, 성별과 마찬가지의 개인정보가 되어 누구의 근황을 전할 때도 ‘그 친구 연애하잖아’ 라고 하는 때다. 최근 알게 된 그를 계속 누구 애인으로 기억한다 하더라도 흔한 일이다. 우리는 서로를 그렇게만 부르는 일이 잦다. 며칠 전에도 골뱅이를 먹다가 애인의 지인을 만났는데, ‘연애한다고 들었어’ 하는 말에 (정말 뜻밖에도, 정말 뜻밖에도) 애인은 ‘제 여자친구예요’ 했다. 의아해도 반발하는 마음이 들지는 않았다. ‘누구의 여자친구’ 씩이나 되었지만 그러려니. 반응하지 않을수록 느낌도 줄어든다. 처음에는 생각과 반응이 분리되지만 더 지나면 다시 하나가 된다. ‘여자’를 껄끄럽지 않게 느끼기 시작하면서. ‘누구의 여자친구’인 것에 더 이상 메스꺼움을 느끼지 않으면서.
무엇을 하려고 하는 걸까. 무얼 요구하고 싶은 걸까.
수 년전, ‘이성관계’ 아닌 친구에게 성질을 못 이기고 연락을 끊었다. 꽤 오래 가위눌림이었다. 주소를 적어 들고 다시 만나러 가는 꿈도 꾸었고 (그 친구가 물고기 같은 눈동자와 불행한 낯빛이라 저절로 도망쳤다) 길거리에서 마주치는 꿈도 꿨다.(이때는 유치한 제스처를 했다) 그럼 여태 비슷한 관계를 지속(할 수도 없었겠지만,) 하고 있었다면 달랐을까. 약한 사람들은 관계에 습관 들이기도 쉬울 것이다. 니코틴, 알콜, 카페인이 그런 것처럼 (의존이 아니라고 좋아하기 때문에 지속하는 것이라고 굳게 믿으며). 우리도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증상을 앓던 사람들일 뿐이다. 결론적으로, 수년에 걸친 애도는 어처구니 없는 일이었다. ‘그때와 똑같이’ 사람들을 대하는 게 맞다고 여기던 모든 행동, 사실은 억지를 쓰고 있었다. 그렇지만 그 시간이 전부를 변화시켰다. 그 시절 내 애인이 여성이 아니었던 것이. 그 무엇도 아니었던 것이. 그의 종교가 그를 이성애자로 살아가게끔 한 것이. 대부분 저절로 일어났지만 나머지는 모두 선택이었다. 싫어하는 것, 진짜 싫어하는 것들도 생겨났다.
이성애중심주의가 동성과 키스할 수 없도록 하는 ‘질서’라고 한다면 과대평가다. 그렇지 않다. 동성과 무엇을 하든 그건 무척 쉬운 일이 될 수 있다. 저절로 무마되기 때문이다. 예컨대 무리 안에서 반진심의 키스가 오간다 하더라도, 모든 것을 해프닝으로 만들기 위한, 영으로 소각시키기 위한 행위의 평등이 일어날 뿐이다. 우스꽝스럽게도, 이 사람과는 하고 싶고 저 사람과는 하고 싶지 않은 느낌이 (특별한 애정이거나 거부감이라고도 할 것 없이 누군가의 마음에 자리잡고 있을 개개인의 자연스러운 느낌이), 놀이의 이름으로 무시되고 구성원은 애써 (모든 동성들과) 키스를 나누는 편이 적당하다. 애초부터 싹이 잘린 (그러나 그럼에도 크게 작게 뿌리를 내리고 있던) 흑심이 만약 그때 큰 소리를 내며 “난 이 친구하고만 키스하고 싶다”고 발언한다면 어떻게 될까. 상황을 놀이 아닌 것으로 전환시킬 수 있을까. 흥을 깬 사람은 아이들의 놀이에서 따돌림을 당할 뿐이다. 우리와 키스한 소꿉친구들은 두 번 다시 키스해주지 않는다.
명백한 이성간의 일이 아닌 이상 똑같은 상황과 똑같은 제스처도 결국 달리 해석되고 마는 것. 놀이가 삶이 되지 않는 것.
그것이 이성애중심주의다. 누구와 사귀건 그것이 나를 해석하고, 무엇을 하건 그것이 편리하게 호명한다. 잘못이 있어서는 아니다. (뜻밖에도, 뜻밖에도) ‘이성애자 남성’으로서 속편하게 살아왔을 애인이 나를 ‘불확실’에서 끌어올려 ‘확실’로 옮겨놓은 것도 아닌데. ‘곡선’에서 ‘직선’으로 이동하지도 않았는데. 연애가 곧 잘못이라면 모를까 잘못된 연애란 게 특별히 있을 수도 없다. 내 느낌을 들여다보며 나는 ‘잘못’ 대신 ‘통념’과 ‘범주’를 찾아냈다. 구분 정도는 있어야 옳다고 생각하는 것. ‘불편할 테니까’ 라는 식의 언어. 바꿔 말하면 내가 ‘여자’기 때문에 ‘그 정도는 당연히 괜찮’지 않냐고도 할 수 있는 것. 이렇게 당연하니 근거는 묻지 않는 것. ‘불편’하기보다 ‘불쾌’해진다. ‘내 말은 검은 모래와 흰 모래처럼 섞어놓자는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을 제대로 설득해낼 기운이 없다. 체할 것 같은 기분. 친구의 ‘남동생’이 이사할 때도, ‘여자들은 저쪽 방’에서 자기로 할 때도 한 마디 시비 없이 침묵하다가.
무엇을 하려고 하는 걸까. 무얼 요구하고 싶은 걸까.
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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