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이 편견에 휩싸여 있을 때, 편견이 없는 행위는 있을 수 있나?

1.

“줄리, 나는 거의 색맹이에요. 비너스의 피부 색깔을 의식해본 적이 있는지조차 모르겠군요.”

“하지만 그건 색맹이 아니예요, 토리. 그건 그냥 눈이 먼 거예요. 우리는 백인인 앵글로색슨 족의 시각에서 생각하는 데 너무 익숙해져 있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는 우리가 편견을 갖고 있다는 것을 모르는 거죠. 선생님은 이 아이에게 이런 종류의 역할 모델을 주는 것이 알맞은 것인지 의심해보지도 않잖아요. 의심해보지도 않고 우리 문화가 옳은 것이라고 여기기 때문이에요. 하지만 만일 선생님이 정말로 색맹이라면 모든 피부색의 여주인공들과 역할 모델들을 받아들일 거예요. 동등하게 말이죠.”

“그건 정말 말도 안 돼요.” 내가 말했다. “인종을 의식하지 않기 위해서 다른 사람의 인종을 의식해야만 한다는 생각 말이에요. 비너스의 피부색은 중요하지 않아요. 비너스의 머리 길이나 셔츠의 재질처럼 말이죠.(……)

그 대화는 나를 불편하게 만들었다. 학교가 끝나고 줄리와 헤어진 뒤에도 나는 오랫동안 그 문제에 대해 생각했다. 비너스에게 백인 초인을 보여준 것으로 내가 인종주의자가 되는 것일까? 같은 피부색을 가진 실제 역할 모델을 부인하는 것이 비너스의 시민권을 빼앗고 있는 것일까? 인간들이 분홍색 고양이로 모습을 바꾸는 에테리아 행성 쉬라의 세계에서는 피부색이 문제가 될까? 진짜 인종주의자는 “너에게 알맞은 역할 모델은 너처럼 생긴 사람들이야. 상상 속에서조차 말이야”라고 말함으로써 비너스가 즐길 수 있는 대상에 제한을 두는 줄리라고 생각되었다. 하지만 진실은 무엇일까? 이 문제에 대한 답은 알 수 없었다. 285쪽


“인종 문제는 아무 관계가 없어요. 지금도 그렇고, 전에도 그랬어요. 미끼일 뿐이에요. 정말이에요. 비너스가 쉬라 만화책에 관심을 보였고, 난 거기에 따랐어요. 거기까지예요. 그 이상 더 깊게 들어가지도 않았어요. 처음 몇 달 동안 아이에게서 어떤 반응도 끌어내지 못한 채 아이는 여기 있었어요. 난 그 아이가 관심을 갖는 게 있을 거라 생각했죠. 거기에 의지해보자, 긍정적인 인물을 이용해보자, 그리고 스스로 그것들을 볼 수 있도록 도와주자고 말예요. 그 아이의 피부색이 쉬라와 다르다는 그런 생각은 떠올려본 적도 없어요. 내가 인종주의자일지도 모르죠. 그래도 난 아직도 이해가 안 가요. 난 아이와 일하고 있지 그 아이의 피부와 일하는 게 아니라 말예요.”

“그래요, 알아. 그리고 당신이 그런 의도가 없었다는 것도 알아요. 하지만 이것은 복잡한 문제고 우리는 이러한 것들이 외부에 어떻게 비칠지 모를 때가 있어요. 그리고 아까 말한 것처럼 여기엔 분명한 차이가 있어요.” «322쪽,토리 헤이든, 예쁜 아이»

토리는 흑인인 비너스와 소통하는 것이 문제였고, 피부색은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우연히 비너스가 반응을 보인 만화책 주인공인 쉬라가 백인이라는 건 별 문제가 아니었다. 하지만 옆에서 지켜보던 줄리는 생각이 달랐다. 줄리는 쉬라라는 만화 캐릭터로부터 인종주의를 읽었다. 역사적으로 사회문화적으로 이어져 온 인종주의는 존재하고 쉬라라는 만화캐릭터 또한 그러한 영향에서 벗어나긴 힘들 것이다.(단적인 예로 라이온 킹에서도 하이에나들은 히스패닉으로 이미지화된다. 요즘은 많이 바뀌기도 했지만.) 줄리의 비판은 정당하다. 토리는 백인이었기에 피부색을 의식하지 않을 수 있었다. 피부색으로 차별과 억압을 경험하지 않은 자들만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렇지만 토리는 조금 버거웠을 거다. 비너스와의 소통에 집중하고 있는 상태에서 인종주의를 성찰하고 이것도 함께 싸워나갈 방법들을 내가 찾아야 하는 건가하고 말이다. 그건 다른 많은 에너지를 필요로 하는 일인데 말이다. 비너스가 흑인이라는 이유로 인종주의의 문제를 항상 고려하면서 일을 진행시켜야 하는지 말이다. 뭔가 인종주의에 먹혀버리는 느낌말이다.

2.

이 세상이 편견에 휩싸여 있을 때, 편견이 없는 행위는 있을 수 있나?

내가 커밍아웃한 친구가 자신의 “좋은” 친구들을 소개시켜준다고 같이 술자리를 한 적이 있었다. 그 “좋은” 친구들과의 대화 속에서 어쩌다보니 당연하게 연애얘기가 나왔던 것 같고, 나를 이성애자로 가정한 질문이 있었던 것 같다. 그 때 정말 편견이 눈꼽만큼도 없던 나의 친구는 내가 게이인 걸 내 나이를 이야기하듯 해버렸다. 상큼한 아웃팅~이었다. 다음부터는 나에게 물어보지 않은 상태에서는 그러면 안 된다고 이야기 했다.

인종을 의식하지 않기 위해서 다른 사람의 인종을 의식해야만 할까?

친구가 어디까지 나를 이해해주길 바래야 할까? 내가 동성애자인 게 상관없는 정도가 아니라 이 세상이 보이지 않게 억압하는 그것까지도 볼 수 있기를 바래야 할까?

3. 

“전에 말이야, 제시 네가 어떤 앤지 알기 전에는 친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어. 왜냐하면 흑인이었거든. 그런데 지금은 널 볼 때 흑인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아. 투렛증후군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야. 너를 몰랐을 때는 네가 경련을 일으키고 그러는 게 다 이상하다고 생각했어. 하지만 지금은 그런 게 보이지 않아. 만일 어떤 사람을 잘 알게 되면, 그 사람이 어떻게 다른지는 보이지 않아. 그냥 어떻게 같은지만 보이는 거야. 맞죠, 선생님?”«266, 토리 헤이든, 예쁜 아이»

그냥 어떻게 같은지만 보이면 되는 걸까? 백인은 흑인을 다르지 않고 같게 볼 수 있지만, 과연 흑인은 백인을 같게 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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