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촌향도 도시빈곤층

동생이 이사를 했다. 아마도 곧 재개발이 될 동네. 낡은 붉은 벽돌 건물이 빼곡한 골목 어느 집의 옥탑방이다. 현관문에는 자물쇠가 있지만, 유리에는 창살이 없다. 창문에도 방범창은 없다. 화장실엔 세면대는 커녕 대야 놓고 머리 감을 공간조차 제대로 없고, 천정에는 쉽게 손이 닿는다. 동생의 키는 겨우 150을 조금 넘는다. 바로 옆 건물도 동생이 사는 건물과 똑같이 생겼다. 같은 층수의 붉은 벽돌 건물, 높이까지 똑같이 심호흡 한 번이면 그 건물의 옥탑에서 이쪽 옥탑으로 넘어올 수 있다.
평범한 사람들, 그러니까 밤에 자고 낮에 일하는 사람들이 사는 동네라 밤거리는 한산하다. 드문 드문 있는 가로등 아래에 가로 누운 취객들이 듬성듬성 보인다. 웃고 떠들며 길을 다니는 사람도 없지 않지만 기껏해야 손에 꼽을 수준이다. 길에 누운 것도, 웃고 떠드는 것도 열에 아홉은 건장한 남자거나 할아버지다. 동생한 ‘평범한 사람들’에서는 한 걸음 물러난 삶을 산다. 낮에 일하지만 밤에도 일하고, 때로는 낮에 쉬고 밤에 일하기도 한다. 드문 드문 사람이 누운 한적한 거리를 걸어 새벽에야 집에 들기도 할 것이다.
따지고 보면 신기한 광경은 아니다. 나 역시 비슷한 수준의 집에 산 적이 있고, 무엇 하나 다를 것 없는 곳에 사는 친구네 집에 놀러 가 본 적도 있다. 나나 내 친구와 동생 사이에 차이가 있다면, 그것은 우리는 서울대 생이고 동생은 아니라는 점 뿐이다. 말하자면, 나나 친구는 좋은 집에 살고 싶으면 과외 하나만 하면 되지만 동생은 아무리 발버둥 쳐도 그럴 수 없다는 것이다.
가난한 사람들이야 하루에도 십수번씩 마주칠 수 있고, 때가 되면 빈민현장활동이다 뭐다 판자촌에도 종종 찾아 갔지만, 실상 가까운 관계를 맺어 온 사람이 빈곤에 처한 모습을 이다지도 여과 없이 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중고등학교 친구들이야 시골에 살았으니 다들 고만고만했고(정확히 말하자면 빈부차가 드러날 계기가 크게 없었고), 대학 친구들이야 돈문제가 생기면 휴학하고 과외를 하면 됐으니 ‘처하는’ 형태라고 말하기엔 뭣했다.
나나 예의 친구처럼 가난하게 살면서도 과외를 하지 않거나 늘리지 않는 경우는 자발적 빈곤이라 할 만한 일이니 역시나 동생의 상황과는 비할 바가 못 된다. 아무튼, 이촌향도와 도시빈곤층으로의 전락이 동시에 일어나는 광경을 최초로 목격한 셈이다. 직장 구해 먹고 살겠다고 서울로 와서는, 버는 돈을 한 푼도 남기지 못하고 월세다 교통비다에 쏟아 붓는 쳇바퀴 신세. 그걸 옆에서 보고 있자니, 그걸 보면서 자발적 빈곤 상태를 유지하고 있자니, 기분이 묘하다.

Leave a comment

댓글 남기기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입력창은 * 로 표시되어 있습니다

This site uses Akismet to reduce spam. Learn how your comment data is process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