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기지도 않는다

 성희롱/성폭력 설문지를 돌린다. 설문지 앞부분 용어의 정의에는 떡하니,

“성추행(동성애)”라고 적혀 있고 뒤에 뭐라뭐라 설명이 씌여져 있다.

성희롱 경험이 있냐, 신체의 일부를 고의적으로 접촉하거나 부딪치는 행위를 받은 적이 있냐, 음란물을 본 적이 있냐는 질문들에 적절히 답을 하고 있는데,

다 쓴 설문지를 받아서 유심히 보던 간부는 모두가 듣게 큰소리로, ”ㅈㅅㅎ! 야동 안 본다고? 솔직하게 써야지. 언제 하는지도. 집에서 휴지 옆에다 놓고 하잖아” 실실 웃는다.

다들 (거짓말 하지 말라고) 야유하듯 웃음을 던진다.

“아 저는 혹시 또 문제가 될까봐……”

그랬더니 왈, “상부에서 조사오는 설문에는 정답을 써야 하지만 내가 하는 건 솔직하게 쓰라”한다.

설문이 끝나고 나는 아무렇지 않았다. 아무렇지 않으려 했다.

않을리가 있나. 외로웠다.

내가 커밍아웃한 사람들은 몇 있지만 그들은 아무렇지 않아 보였다. 나도 아무렇지 않을 거라 생각하는 걸까? 아님 아무 생각이 없는 걸까?

기대하는 건 무리라는 “진실”을 깨달았음에도 외롭다. 난 아직 죽지 않았다. 다행이다. 다행인가?

난 외계인이다. 미지의 정글 속에 들어간 탐험가. 원주민들의 문화에 적응해야 하나? 싫어도 헛구역질이 나와도 벌레도 먹고, 달팽이도 먹고, … 개도 먹고.

푸핫. 성폭력 설문지란다. 성폭력. 그래 성폭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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