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퀴어플라이에서 8호 기획을 “씨발년”이라 잡은 것에 대해 비판글을 써 볼 생각이 없냐는 말에 “나는” 왜 거절했는지,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퀴어플라이 8호 글들을 읽어보았다. 그냥 쓰레기의 의미로 씨발년이란 단어를 고른 것 같았다. 내가 읽기에 전반적인 내용에서 여성비하적인 것은 없었다. 이성애주의에 욕을 하고 싶은 데 그 단어가 선택된 것일 뿐. 편집자의 “전복적인 의도”에 대한 설명이 짧막하게 나마 있지만 글에 그 의미가 담겨있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글에 여성비하적인 맥락이 없지만 사회적으로 그 단어는 여성비하적인 맥락안에 놓여있다. 씨발놈보다 더 강력한 욕으로 사용되니까. 아닌가?

씨발이어서 문제인 걸까? 씨발”년”이어서 문제인 걸까? 씨발은 점점 너무 쉽게 쓰는 욕이 되어간다. 말 추임새처럼. 아무도 신경쓰지 않는 어원을 가지고 설득하는 건 무리다.

전복적인 의미라. 퀴어는 괴상한이란 뜻이다. 처음엔 욕으로 사용되었지만 스스로를 그렇게 지칭하면서 전복적으로 의미를 바꾼 단어로 알고 있다. 어떤 성소수자들은 퀴어란 단어가 욕으로 쓰였기 때문에 싫어한다고 한다.

퀴어플라이 글쓴이들을 상상한다. 씨발년이란 단어가 어떤 의미였을까? 자신의 동성애 정체성/경험/감정이 그 단어로 욕보여졌었나? 그래서 그 단어로 이성애주의를 욕보이고 싶었던 걸까? 아니면 그저 이성애중심주의를 끌어내리는 가장 먹히는 단어를 옆동네에서 끌어다 쓴 걸까? 옆동네 사람들은 미처 신경쓰지 못한 채 말이다. 병신이어도 개새끼여도 상관없었을까?

퀴어플라이 8호로 인해 “캠퍼스 내에서 여성비하적 인식구조는 재생산되고 더욱 공고해졌다”는 지적. 과연 그럴까? 지나가다 슬쩍 잡지 표지만 본 이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그 잡지를 집어서 읽어본 이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QIS 사람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내가 비판하는 글을 못쓰겠다고 한 건 여성 비하적인 내용을 가지고 있는 게 아닌 상태에서 그 단어를 사용했다는 이유만으로, “씨발년의 어원은 어떻고 사회적으로 어떻게 사용되기에 당신들은 남성중심적인 이 사회에 대한 성찰이 부족했다.”는 내용의 글을 형식적으로 쓰고 싶지는 않아서였다. 좀 더 설득적인 방식은 떠오르지 않았다. 퀴어플라이의 글을 좋아하는 나로써 이성애주의를 까대고 싶어 글을 썼는데 단어하나로 의기소침해질 글쓴이들에게 더 감정이입을 한 것이리라. 게다가 요즘의 나는 말, 단어 그 자체에 날을 세우지는 않는다. (그러기에는 그럴일이 너무 많고, 내가 있는 곳에서 난 무기력하고 고립되어 있다. 좀 쿨해지고 싶다. 그래서 되도록이면 상황과 맥락을 읽으려 한다. 아니 어쩌면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나의 위치에 따라 나의 정치가 바뀐다.)

하지만 그런 생각을 해본다. 노동자들이 회사 간부들을 “비열한 겁쟁이”라는 의미로 “호모새끼들”이라고 불렀다면 어떨까?(호모는 보통 동성애의 의미보다는 여성으러운 남성을 욕하는데 자주 쓰이는 것 같다.) 난 못 견딜거다. 미친듯이 이야기하겠지. 내가 그 노동자들의 투쟁을 지지하더라도 말이다. 결국 나 그 단어에 대한 트라우마가 없을 수 있는 위치에 있었고, 트라우마가 없다. 억압에 비껴서 있다. 그래서 였을 거다. 글을 쓰지 않은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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