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국심

나에게는 애국심이 없다.

사람을 계속 사랑하고 싶다.

나라를 사랑한다면, 사람을 사랑하고 싶다.

«신숙옥의 귀곡추추 후기에서, 경계에서 말하다에서 재인용»

월드컵이라고 TV방송에서 그럴싸한 음악과 태극기, 눈물을 흘리고 얼싸안는 사람들이 나오면 닭살이 돋는다. 이젠, 단체로 월드컵을 봤던 초등학교 때처럼 나도 그들과 하나가 되어 감동의 폭풍속에 함께 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아직도 왠지 모를 전율이 온몸을 흐른다.

월드컵의 열광을 애국심으로만 읽는 건 무리지 않을까? 아니면, 내가 생각하는 애국심과 그들이 생각하는 애국심이 다른 건지도 모르겠다. 나에게 애국심을 배타성을 떠올린다. 편가르기. 우리가 아니면 적. 우리는 같아야만 해…

하지만 또 누군가에게 애국심은 자랑스러움, 소속감, 안정감, 자신을 이루는 중요한 정체성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영화 <화려한 휴가>에서 군대에게 진압 당하기 전에 시민군이 애국가를 불렀다는 사실은 내개 매우 아이러니했지만, 당연한 이야기일 수도 있겠다. TV를 거의 안 보시는 우리 할머니는 왜 혼자 집에서 월드컵을 보시는 걸까?

그들이 금메달을 따고 떠오른 태극기에 경례를 하며 느끼는 감정이랑, 내가 학교 학생회관에 걸렸던 무지개 깃발을 보면서 느낀 감정이랑 뭐가 다를까?

문득 생각해보니, 애국 게이의 이미지는 너무 낯설다. 국가는 동성애를 자원으로 여긴 적인 없는 것 같다.


연결된 인용 조각들,


오랜 활동 속에서 민족주의는 그 시대의 중요한 운동 대부분을 통합했으며, 사람들이 중요하게 여기는 것들을 흡수하여 변하지 않는 신화와 상징에 대한 존경심으로 전환시켰다. 민족주의는 자유주의나 보수주의, 혹은 사회주의에까지 침투했다. 민족주의는 관용과 억압, 평화와 전쟁 등 자기 목적에 합당한 것이라면 무엇이든 옹호했다. 민족주의는 불변성을 옹호하면서 자신이 손대는 모든 것에 ‘영원성의 편린’을 부여하였다.«23쪽, 조지 모스, 내셔널리즘과 섹슈얼리티»


내셔널리즘이라는 근대적 상상력은 ‘국민’을 하나의 유기적인 신체로 상상한다. 프로이센의 농민 아무개, 작센의 장인 아무개, 바이에른의 공증인 아무개를 이괄해 ‘독일인’으로 상상한다. 그러기에 라인 강변의 누구누구가 ‘프랑스인’에게서 상처를 입으면, 프로이센에서도 작센에서도, ‘우리’가 상처받았다고 분개하는 것이다. 59쪽


‘이제 됐어, 그만 끝을 낼까’ 생각하면서 ‘죽음’을 향해 한 발자국, 몸을 내밀려 할 때 확 뒷머리를 잡아채 이편으로 끌어당기는 힘 중 하나는, 의심할 바 없이 ‘국민’이라는 관념이다. 그 어떤 것도 대신할 수 없는 소중한 고향과 그곳의 자연, 자기를 사랑해주는 가족, 조상이 남겨준 유형무형의 재산, 부모에게서 자식에게로 전해지는 혈통, 과거에서 미래로 계속되는 ‘국민’의 전통, 고유의 역사와 문화, 하나하나 자세히 검토해보면 근거가 희박한 이 관념들이 단단이 모여 있는 것, 그것이 ‘국민’이다.

여기서, 죽으면 가까운 이들에게 죄송하다, 사랑하는 사람이 가엾다는 한 사람 한 사람의 생각이, ‘가족’, ‘고향’, ‘모교’, ‘우리 회사’, ‘우리 마을’ 등을 거쳐, ‘국가’나 ‘국민’에 결합된다. 왜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개인의 생각이 ‘국민’이라는 추상적 관념으로 회수되고 마는가. 그 연속성은 논리성을 결여한다. 그러나 아무리 비논리적이라도 당사자들은 꿈쩍도 안한다. 오히려 비논리적이라는 것이 중요하다. ‘이론이 아닌 것’이다. ‘국민’이라면 누구라도 알 것이며, 그걸 모르는 자는 ‘국민’이 아니다. 무적의 논법이 아닌가. «55쪽, 서경식, 디아스포라 기행»

카테고리 > 레이지톡, 오리 | 댓글 달기 | 트랙백 URL

1개의 댓글

  1. 잇을
    2010/08/09 8:24 pm | 고유주소

    월드컵에 열광하는 사람들을
    애국심 때문이다, 라고 읽거나
    대중은 애국적이다, 라고 읽는다면 그건 잘못된 읽기라는 생각이 항상 있어 (시장과 대중은 다른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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