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팽이의 별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 사람. 그가 느끼는 세상.

나무를 가만히 안고서, 손으로 부드럽게 쓰다듬으면서 이야기를 나눈다.

베란다에서 손을 뻗어 비를 느끼고 난간에 맺힌 물방울을 살짝 손가락을 갔다 대서 떨어뜨린다.


EBS에서 <달팽이의 별>이라는 다큐멘터리를 봤다.

눈이 보이지 않으면 세상을 더 잘 이해하지 못할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눈이 보이는 내가 인식하는 세상은 그보다 더 ‘정확’하진 않은 것 같다.

나무. 형태, 색깔, 냄새, 느낌, 상징들이 내 머릿속에 들어있지만, 그마저도 개별 나무들을 사진처럼 기억한다기보단 추상화되고 일반화된 하나의 이미지 정도다. 잎사귀에 어떤 무늬가 있는지, 나무 껍질에서 어떤 냄새가 나는지, 무슨 벌레들이 나무에 사는지, 무슨 소리를 내는지, 보고 들을 수 있지만 잘 모른다.

어차피 우리의 감각은 한정되었고, 이를 통해 인식하는 세상은 불완전할 수 밖에 없다. 뇌에 들어오는 모든 감각은 인간이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처리되고 다른 모든 기억과 혼합된다. 우리는 세상을 상상할 뿐이다.

인간은 냄새를 몇 배나 더 잘 맡는 동물들에 비하면, 가시광선 외의 빛을 볼 수 있는 동물들에 비하면 후각?/시각 장애인이다. (그러고 보니 후각 장애인은 없다. 우리 사회는 후각이 없어도 그리 힘들지 않게 살 수 있도록 만들어져 있다.)

내가 보고 듣는 사물이, 사람이, 세상만이 진실이라는 생각, 비장애인중심적이다. 편협하다. 다른 방식으로 보고, 듣고, 느낄 수 있다. 그건 사물이, 사람이, 세상이 가진 다른 진실을 알 수 있게 해준다. 진실은 우리가 상상하는 세상을 소통할 때 알 수 있지 않을까?


이건 달팽이의 별에서 나레이션으로 나온 조영찬씨가 쓴 글의 일부다.

태초에 어둠과 적막이 있었다
그 어둠과 적막은 신과 함께 있었고
‘나’가 나타나자 ‘나’에게로 왔다.

어둠이 깊어야 별이 빛나고
밤이 깊어야 먼 동이 튼다

태어나서 한 번도 별을 본 적은 없지만
별이 있다는 것을 의심해보지 않았다
밤이 되어도 태양은 우리의 발 아래에서
불타오르고 있다는 것을

사람의 시력이나 청력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우주의 어딘가를 떠돌고 있을 뿐이다
때가 되면 그것은 주인에게로 돌아온다

나는 가장 값진 것을 보기 위해 잠시 동안 눈을 감고 있다
나는 가장 참된 소리를 듣기 위해 잠시 동안 귀를 닫고 있다
나는 가장 진실된 말을 하기 위해 침묵 속에서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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