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1

어렸을 적부터 우리 엄마는 “아비 없는 자식이라며 욕먹지 않게 하려고”라며 종종 나를 과하게 양육하곤 했다. 그 중에는 양육의 범주 안에 들어가는 것도 있겠지만, 글쎄올시다. 엄마는 나를 양육 했다기 보단 복종사육에 시킨 것에 가까웠다(그렇다고 ‘양육’을 하는 것이 옳다는 건 아니다.). 아니,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부모님한테 쓰는 어휘인데 볼드 처리로 강조하면서까지 저렇게 불경스러운 단어를 선택할 수 있느냐고?


그래서 내가 쓰려고 하는 글은 도대체 왜 불경스러우면 안 되는지(그리고 왜 여기에 불경不敬이라는 단어가 들어가야 하는지도) 궁금해 죽을 것 같은 내 생각을 고스란히 담아낸 글이다. 고스란히, 에 밑줄 쫙. 필터링 따위는 제쳐 놓고 쓰는 글이기 때문에 가족 예찬론자라면 사뿐 하게 즈려밟고 넘어가 주시기를, 잇힝.


(사실 나 지금도 많이 순화한 거야.)


나는 일반론을 싫어한다. 그 시작은 가족에 대한 사회적인 일반론을 부정하면서 시작됐다. 그리고 지금은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는 일반론 전반’에 대해서 의심을 한다. 정말 그게 모두에게 통용되는 것인지, 그것 때문에 불편해 하는 사람은 없는지, 나도 모르게 무의식적으로 그런 일반론을 남에게 강요하지는 않았는지 말이다.

가부장 사회에서 20년 넘게 살아왔기에 계속 일반론을 부정했지만 내 삶에서 일반론을 벗어나기는 어려웠다. 엄마는 항상 나에게 “부모는 절대로 공경해야 마땅하며, 부모가 자식에게 어떤 일을 해도 자식은 ‘부모니까’라며 이해해야 하고, 자식은 키워준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 부모를 봉양하고 공경해야 한다.”라고 가르쳐 왔다. 매체에서도 엄마, 아빠, 자식이 모여 앉아 저녁 식사를 하는 모습만을 보여주면서 가족에 대한 일반론을 공고히 해왔으니 내가 아무리 일반론을 벗어나려고 해도 벗어날 수 없었다. 거기에 의문을 제기했을 때 나에게는 이상한 시선들만 돌아올 뿐이다. 이런 상황에서 혼자 일반론을 부정해봤자 내 혼란만 가중될 뿐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진심으로 엄마를 싫어하게 됐을 때는 나도 가치관의 혼란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내가 정말 엄마를 싫어하는 걸까? 정말 엄마 말대로 나는 패륜아일까? 아무리 그래도 키워주신 부모님인데 이건 좀 아니지 않나? 나 정말 이래도 되는 거야?


그런 고민을 1년가량 부둥켜안고 1년을 지낸 결과, 요즘은 그냥 살고 있다. 엄마는 싫어하면서. 아니, 정확하게는 ‘가족’이란 개념에 대한 회의와 그것을 지지하는 엄마를 싫어하면서.


엄마의 말대로 ‘부모를 절대로 공경하며, 부모가 어떤 일을 해도 부모니까 이해하고, 자식은 키워준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 부모를 봉양하고 공경하는 것’만이 양육에 대한 고마움을 표현하는 일일까? 엄마는 항상 나에게 무조건적인 사랑을 주었다고 이야기 한다. 하지만 현실은? 장래에 대한 고민을 털어놓으면 안정적이지 못 하니 관두라 하고, 성적이 안 나오면 격려받기보단 비교 받기 일쑤다. 그 기대에 부응하지 못 하면 경제적으로 불안정해지고 내 삶의 기반이 흔들리기까지 한다. 언제든 나를 인정할 것이라고 믿었는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그래서 다시 인정을 받기 위해 나에게 주어진 기대치를 만족시키려고 한다.


왜 이런 것이 사회에서 자연스럽게 여겨지는 것일까? 내가 내 삶을 책임질 수 없을 때 계속 나를 보살펴 왔고 거기에 엄마가 희생한 부분이 있다는 것도 안다. 하지만 그것을 이유로 ‘효도해라.’라는 이름을 붙여 내 인생을 통제할 수는 없는 것이다. 나를 키워준 것에 대해서는 고맙게 생각하고 있다. 엄마와의 관계가 악화되기 이전의 그 시절에는 자식으로서 엄마의 기대를 항상 충족시켜 주고 있었으니 부모 자식의 관계가 자연스러웠다. 그러나 이제는 그 불편한 ‘자연스러움’을 견딜 수 없게 되었다. 무엇을 감사해야 하는지도, 감사하는 방법은 효도뿐인지도, 그렇다면 효도는 대체 무엇인지도, 의문투성이다.


-


내가 경험한 사회 속에서 가족에 대한 일반론은 상당히 견고하다. 그래서 난 가족 제도의 모순이나 소위 정상 가족에 대한 문제점이 있다는 걸 충분히 인지하고 있지만, 이혼 가정에서 자란 나의 특수성은 ‘정상’에 대한 열망 혹은 나의 결여, 결핍을 항상 생각나도록 했다.

당연히, 내가 그 일반론의 수혜자가 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죄를 지어서 벌을 받는 거라면 모를까 내가 잘못을 저지른 것도 아닌데, 이혼 가정의 아이라는 낙인은 ‘부모님이 이혼을 해서….’라는 소리를 듣지 않게 하려고 내 사춘기를 살얼음판 위에서 보내도록 만들었다. 이혼한 집 자식이래도 보통 가정의 아이보다 뛰어나다는 걸 보여주려고 부단히도 애썼던 시절을 생각하면 지금도 끔찍하기 그지없다. 오라질! 상큼할 수 있었던 내 사춘기를 돌려줘!!

(그랬더라면 친구들이 부모님에 대해 물어볼 때 얼버무릴 필요도 없었겠지. 친구들이 오락실 갈 때도 혼자 집구석에 처박혀 공부하지 않아도 됐을 테고. 내가 잘못하면 엄마가 집에 불 지르고 자살할까 봐 겁낼 이유도 없었을 거고. 아, 진짜 억울해.)


아, 흥분해버렸다. 아무튼, 온갖 사회적인 시선 때문에 난 일반론을 싫어하게 됐다. 이혼한 집 애는 어쩌고, 보통의 가정은 저쩌고, 남자는 이래야지 어쩌고저쩌고 등등등. 어느 누가 자기 존재가 부정 당하는 것을 좋아하겠는가. ‘이혼한 가정’에 대한 일반론은 내 자존감을 와르르 무너트렸고 3-4년간 상당한 우울증에 시달렸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인간은 성장하기에, 차츰차츰 시간이 지나면서 그 일반론 자체를 부정하기 시작했다. 세상 어디에나 예외는 있으며, 일반적으로 적용할 수 있다는 사실은 평균적으로 어떠한 가족이 다수라는 것을 증명할 뿐 그것이 정상/비정상을 표현해주지는 못 한다는 걸. 그래서 나는 정말 일반론을 싫어하게 됐다. 누군가 ‘그건 좀 그렇지 않아?’라고 의문을 가질 정도로 세세한 것까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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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개의 댓글

  1. 2009/10/26 3:45 am | 고유주소

    비밀댓글 입니다.

  2. 2009/10/26 3:47 am | 고유주소

    트랙백 URL을 눌렀는데 트랙백이 안 써져요.

    • sysadmin
      2009/10/26 5:58 am | 고유주소

      안녕하세요. 트랙백URL은 단지 주소일 뿐이랍니다. 정확하게는 트랙백을 “보낼” 주소지요(포스트주소/trackback 요렇게 생겼어요.) 가령, “가족1″이라는 글에 트랙백을 달려면 “1.트랙백URL 위에 마우스 오른쪽 버튼 → 2.링크 주소 복사→ 3.아니마님의 블로그(네이버)에서 포스트를 작성할 때 에디터의 엮인글(트랙백)항목에 복사한 주소를 붙여넣기”하시면 됩니다. 그러면 아니마님의 블로그에서 쓴 글의 제목과 요약본이 완변 블로그에 트랙백으로 달리게 됩니다. 반대도 마찬가지 입니다. 아니마님의 블로그에서 “엮인글 쓰기”를 눌러 주소를 복사하고 완변에서 글을 작성할 때 그 복사한 주소를 붙여넣기 하면 됩니다. 그러면 아니마님의 블로그에 트랙백을 “보낸” 것이 되고, 아니마님의 블로그에 완전변태의 트랙백이 남게 됩니다. 물론 같은 블로그안에서도 가능하구요.

  3. 2009/12/28 12:33 am | 고유주소

    제가 하고싶었던 말을 다 써주셨네요! 특히,
    이혼 가정의 아이라는 낙인은 ‘부모님이 이혼을 해서….’라는 소리를 듣지 않게 하려고 내 사춘기를 살얼음판 위에서 보내도록 만들었다. 이혼한 집 자식이래도 보통 가정의 아이보다 뛰어나다는 걸 보여주려고 부단히도 애썼던 시절을 생각하면 지금도 끔찍하기 그지없다. 오라질! 상큼할 수 있었던 내 사춘기를 돌려줘!!

    에서 대 공감. 저는 말잘듣고 공부잘하는 예쁜딸이었죠. 답답하단 생각은 가끔 했지만,
    어찌하다보니 그게 또 맞았나봐요. 저같은 경우 제가 여자를 좋아한다는 걸 깨닫게 된 때부터 모든게
    조금씩 뒤틀리기 시작했어요. 그건 “예쁜딸”의 범주엔 안 들어가는 거니까요. 결혼에 대해 부정적으로
    말할라치면 마치 자신이 행복한 가정을 꾸려나가지 못해서 결혼의 나쁜 예시를 제 머릿속에 고정시킨
    것 같았는지 미안한 눈초리/ 대부분의 정상 가정들은 그렇지 않다! 라는 것을 제게 심어주기위해 저희
    엄마는 부단히도 노력을 하셨지요. 그래서일까요, 우리엄마는 더욱 “정상” 적인걸 강조했던 것 같아요.
    정상적인 가정, 정상적인 자식, 정상적인 섹슈얼리티, 같은 것이요. 자신이
    “비정상”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였을까요?

    아무튼. 각설하고, 엄마를 좋아하진 않아요. 사랑하긴 해요. 좋아하는 것과 사랑하는것의
    차이점은 “어쩔 수 없음” 에 있는 것 같아요. 엄마를 사랑하는건, 어쩔수 없기 때문이에요.
    내게 무조건적인 사랑을 준 것 같긴 하지만, ANIMA님 말처럼, 지금생각해보면 그것엔
    조건이 많이 붙더라구요! 공부 열심히 해야한다는 조건, 기대에 부응해야 한다는 조건,
    그런것들. 사실은 그런 사랑이, 혹은 희생이 이제는 부담스럽게 느껴지기도 해요.
    갚아야 할 것들 이라는 생각이 어깨를 짓눌러서요.

    댓글이 길었군요.
    아무튼. 일반론에 순응하며 사는건 참 어려워요?!

    • 2009/12/28 6:41 am | 고유주소

      꺄. 오랜만에 외부인의 덧글이군요. :)

      그래서 순응하지 않기로 했는데, 순응 안 하는 것도 어렵고, 참 그렇네요.

      그나저나 제가 아는 젼님이 맞나요?

    • 2009/12/28 10:19 am | 고유주소

      네 아마 맞을겁니다 ㅋㅋ

    • 2009/12/28 11:17 pm | 고유주소

      반반반반반가워용~! >_<

  4. 조제
    2010/04/25 8:29 pm | 고유주소

    anima님 젼님 두분다 정말 좋네요^ ^ 일반론.. 에 대한 아주 깊은 성찰에 대해서 잘 너무너무 완전 대박 잘 들었습니다. 다양성을 인정해야한다며, 소수를 존중해야한다며 말을 그렇게 하면서 정작 일반론은 들이미는 것들에 진절머리났습니다. 저는 제 목소리가 마이너리티의 목소리라 할지라도 제 목소리대로 살아야 제가 행복하단 걸 생각하게하네요. 소수는 어디에나 있고 소수는 존중받아야하는거니까ㅋㅋ 그런거니까

1개의 트랙백

  1. By Anima on 2009/11/16 at 11:50 pm

    세 번째 커밍아웃…

    첫 번째 커밍아웃

    소울메이트라고 여기는 친구 B가 있다(B는 생물학적으로 여성이다.). 때는 고3이 되는 겨울. 수학은 너무 못하고 영어는 다소 부족해서 미국에서 유학을 끝내고 돌아온 B에게 과외를 해줄 수 없겠냐고 물었다. B는 승낙했고 곧 우리 집으로 누나들과 엄마를 만나러 왔다.

    하지만 세 사람은 나와 생각이 달랐다. B가 천안에 산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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