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련소에서

오늘 첫 이론시험을 봤어. 조금 여유가 생겼어. 그래서 잊기 전에 이 곳의 끔찍함을 쓰고 싶어. 나에게 익숙해지기 전에.
조교들이 하는 말 중에, 아니 욕 중에 ‘병신’이란 말이 있어. 다리를 다쳐 기합받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다리병신들, 빠져!”라고 하지. 오늘은 이런 말도 들었어. “여기 공군에 뽑힌 사람들은 다 정상이니까 너희가 정신만 차리면 다 할 수 있다고.” 여기에 들어온 친구들 중에 어리버리한 친구들이 있어. 눈치가 느린거지. 차렷하고 있어야 하는데 자꾸 움직여서 기합받고 조교한테 겁먹어서 더 실수하고. 어느 한 사람이 잘못해도 다 같이 기합받긴 해. 그렇다고 서로 도우며 사는 방식을 배우는 것 같진 않아. (조교와) 똑같이 병신이라 욕하고 경계를 그어버리지. 군대는 명확히 비장애인/이성애자/남성만을 원해. 대놓고 그러지. 교육시간에 4급을 받은 남자가 수술을 해서 공군에 자원 입대한 이야기가 나왔어. 그 사람이 군대에 오고 싶게 한 것은 무엇일까? 어떤 이유였을까? “대한민국 남성은 군대에 다녀와야 정상”이란 공식이 아니었을까 조심스럽게 생각해봤어.
군대에서 살아가는 방식은 획일적이고 일방적이야. 여기서 사회를 배우는 거라면 사회에서 여성, 장애인, 성소수자와 살아갈 방법을 고민하지 않는 것도 당연한 거겠지.
군대에서 배우는 인간분류체계는 이런 거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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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이 사회를 제대로 굴리는 사람들은 비장애인/이성애자/남성으로 상정되지.
역사시간에 6.25 이후 대한민국을 이렇게 성장시킨 할아버지, 아버지들에게 박수를 치자며 다같이 박수를 쳤어. 웃기지.
여기온 친구들 대부분은 엄마가 너무 보고싶데. 아빠는 별로 보고싶지 않나봐. 어쩌다 아빠들은 아들과 그런 관계밖에 되지 못했을까? 나도 그런가?
여성들을 보는 방식도 매우 단순해. “따먹느니” “걸레”라느니, 물건처럼 이야기하지. 연예인처럼 이쁘면 되는거야. 사람으로 볼 생각이 없지. 뭐 여기선 그냥 농담따먹기의 소재가 될 뿐이야. 자신의 성매매 경험을 맘껏 이야기하지만 그녀들의 삶을 상상해보진 않지. 자신을 괴롭히는 교관은 더 힘들거라고 걱정을 해주기도 하면서 말이야.
여기 들어와서 하루인가 이틀 째인가, 소대장이 들어와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한 후에 “아 그리고 여기 혹시 동성애자 있나? 그래. 있어도 대답안하겠지. 밖에서는 동성연애가 불법이 아니지만 여기서는 불법이야”라고 하더라. 시험보는 문제지에도 병사간의 동성연애는 불법이다라고 나오고 심리검사에는 동성애가 도착증이라고 나와. ‘남성의 항문을 보면 흥분되는지’ 뭐 이런 항목도 있어. 성희롱 교육 비디오에는 남성간 성폭력 가해자가 자신을 성적소수자라고 이야기하는 장면이 나온다.
군대에서 동성애자는 비정상일 뿐이다. 존재는 하지만 비정상. 농담처럼 이야기되곤 한다. 한번은 소대장이 동성애자들에게 군대는 꽃밭이라고 하자 다들 웃더라. 꽃밭일까? ‘건강’하고 ‘젊은’ 남성의 벗은 몸을 실컷 볼 수 있긴 하다. 나쁘지는 않다. 하지만 그게 내 동성애 정체성의 전부는 아니다.
그들에게 동성에자는 크게 두가지로 이미지화되어 있는 것 같다. ‘여성스러운’ 남성(남성이 여성스러우면 나약하고 징그럽다 여기며 혐오의 대상이 된다)과 성폭력 가해자(자신보다 강한 힘을 지닌 두려움의 대상으로 자신에게 동성간 성폭력을 저지를 수 있는 초변태, 도착증 환자).
섹슈얼리티가 뭘까란 고민이 들었다. 훈련소에서 우리 호실을 같이 쓰던 동기중 하나는 엄청 잘생긴 조교를 보고 너무 좋다며 눈을 뗄 수가 없다고 그랬다. 나가서 싸이를 찾아보겠다느니, 그 조교 후임으로 들어간다느니. 그 사람말고 이쁘게 생긴 다른 조교는 따먼어야 한다느니. 대놓고 자기는 잘 생긴 남자가 좋다고 이야기했다. 항상 음담패설을 하고 여자를 물건처럼 농담 소재로만 다루는 그는 아이들 사이에서 변태로 통했지만 그가 자신을 게이라 하지도 않았고 다른 사람들도 그를 게이라고 생각하진 않았다. 여자친구도 있고 워낙에 남성중심적인 음담패설을 많이 했으니까. 오히려 이 친구가 나에게 날 처음 봤을 떄 여성스러워서(보통 남자들은 다른 사람이 바닥청소를 해도 다리를 벌리고 그냥 앉아있지 나처럼 다리를 모아서 들어주거나 하지는 않는다며) 게이인줄 알았다고 그랬다. 물론 (되게 미안해하며)”그럴 줄 알았다고” 형이 진짜 그렇다는 건 아니고 라는 뉘앙스를 막 풍기면서 말하기는 했다. 옆에 있던 ‘착한’애는 왜 그러냐며, 내가 정상이라고 ‘대변’해줬다. 그 애는 나한테 “아닌 줄 알아요. 형 건강하죠?”라고 물었고, 난 “응, 건강해”라고 대답했다. 섹슈얼리티를 드러내지 않아도 여성스럽다는 이유로 게이로 의심되다니.
훈련소에서 보면 동성애의 욕망이 있다. 농담처럼 이야기되서 어디까지가 진심인지(내가 써놓고도 이게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모르겠지만 별별 소리를 다한다. 스킨쉽 욕망도 많고(하지만 스킨쉽은 서로 이성애자라는 확신아래에서도 군대내 동성연애 금기로 서로 조심하는 것 같다.)동성간 스킨쉽=동성애자=변태(비정상) 공식이 성립하는 거 같다.
아참, 물론 무성애적인 사람도 있고, 성보수주의적인 사람도 있고, 철저히 여성만을 욕망하는 100%이성애자들도 있다.
어찌보면 어떤 게이들에게는 이곳이 정말 천국일 수 있겠구나 싶다. 몸과 행동이 ‘남성성’으로 무장된 남성들이 깔렸으니. 동성간 스킨쉽이 금기가 아니었던 예전에는 더 좋았겠지. 몸만을 욕망하는 사람들에게는 이보다 더 좋은 기회가 많은 곳도 없지 않을까?  그럼 난?
훈련소에 들어온지 얼마되지 않아서 영상을 보여줬다. 고무신이 보내온 영상. 아이들의 반응와 교관의 멘트들. 이성애자만이 보이는 이곳. 눈물이 났다. 한참 정체성을 만들어가던 그 때, 전국국제영화제에서 한 영화를 보고 나와 콧물까지 줄줄 흘리며 울었던 그 때가 떠올랐다. (영화 내용은 이스라엘에서 유색인종이자 비유태인으로 살아가는 사람의 이야기였다.) 소수자로서의 삶. 너무도 당연해서 꿈꾸지도 않던 ‘정상적인’ 삶. 누구나 그래왔고, 누구나 그렇게 살아갈 기쁨과 슬픔, 고통과 지루함이 반복될 삶. (이성)결혼을 해서 애를 낳고 가정을 꾸리며 사람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하며 살아가는 거. 그걸 놓는다는게 쉽지 않았다. 무서운 일이었다. ‘정상’만을 보도록 ‘정상인’사이에서만 살아왔다도 굳게 믿던 나에게 도대체 넌 누구와 어떻게 살 수 있을까 막막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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