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별을 물어봐2: 미궁속의 커밍아웃

“난 남성의 몸을 갖고 태어났어요. 한 번도 스스로를 남성이라고 적극적으로 생각해 본 적은 없지만 그렇다고 여자라고 생각해 본 적도 없이 20년 조금 넘게 살았어요. 그러다가 비수술 트랜스젠더라는 말을 처음으로 알게 되었을 때, 난 너무도 반가웠어요.
하지만 당장 그 말을 나의 것으로 받아들이지는 않았어요. 여성으로 태어나 고통받으며 살아가는 수많은 여성들 앞에서, 당당하게,‘나도 여성이에요’ 하고 말할 수 없었거든요. 결국은 남자라는 소리가 듣기 싫어서, 홧김에야, 그 말을 나의 것으로 받아들이게 되었어요.
나는 여성이에요, 라는 말은 아직도 서툴러요. 그러니 이렇게 말할게요. 여성으로서 살고 싶어요. 다른 여성들이 나를 여성으로서 대해주면 좋겠어요.(마초님들은 사실, 나를 안 대해 주는 게 제일 좋아요.) 다른 여성들이 나를 여성으로 대할 수 있도록, 정말로 여성에 가까운 여성이 되고 싶어요.
지금 당장은, 남자라고도 여자라고도 하기 애매한 그 사이 어디쯤엔가 있지만, 언젠가는 당당하게 ‘여자’라고 선택할 수 있게 되면 좋겠어요. 그게 언제가 될지 모르니까, 종종 물어 봐줘요, 나의 성별을.”

글 검토 회의를 하면서 너무 많이 생략됐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 내용만으로도 글 한편이 나오겠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어디 한편만 나오랴. 속에다 썩혀 둔 이야기를 꺼내자면 끝이 없는 것을. 그런데, 어쩐지, 저 이상은 쓸 수 없을 것 같았다. 묻어 둔 지 너무 오래 됐기도 하고, 자기 검열이 너무 많은 탓이기도 하다. 그 검열을 걷을 생각은 딱히 없다. 나의 정치적 신념에 따른 검열이었으니까.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나의 트라우마에 따른 검열이었으니까.
어릴 때부터 여자같다는 말이 참 좋았다. 어느 친구가 머리띠를 한 나를 보며 여자 같이 생겼다고 말했을 때도 좋았고, 또 다른 친구나 너는 여자 같아서 왠지 화장실도 같이 갈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을 때도 참 좋았다. ‘남자들’이라는 집단의 하나로 묶이는 것에는 언제나거부감이 들었다. 나는 그 그룹의 누구에게도 동질감을 느끼지 못했다. 그런데 거기까지였다.
나는 그렇게 배웠다. 세상에는 남자와 여자가 있다고. 그들 중에는 이성애자와 동성애자, 그리고 양성애자가 있고 또 성정체성 장애를 갖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고. 성정체성 장애를 갖고 있는 이들은 과학의 발전 덕에 성전환 수술이란 걸 할 수 있게 되었다고. 거기까지였다.
그래서 나는 나도 그냥 남자인줄 알았다. 내 몸이 혐오스러웠고 남성이라는 명명이 끔찍했지만 수술을 할 마음 같은 건 생기지 않았다. 그냥 독특한 남자려니 했다. 남자들이랑은 말이 통하지 않고, 여자친구들만 그득하고, 가만히 둬도 끔찍한 몸을 굳이 운동으로 다지고 싶지 않은, 뭐 그런 독특한 남잔줄로만 알았다.
이성애자가 아닐 거라는 생각은 어렴풋이 했다. 여성에 대한 나의 성애는 동질감에 기반해 있었다. 몇 안 되는 여성을 사랑하면서, 그들을 ‘이성’으로 생각한 적은 없었다. 하지만 그것도 거기까지였다. 내가 사랑하는 것이 이성이 아니라고 해 봐야, 그것은 동성도 아니었고 양성도 아니었다. 결국 그것은 이성애였다.
그러다가 알게 된 말이 비수술 트랜스젠더였다. 스스로의 신체가 갖고 있는 것과는 다른 성을 자신의 성별 정체성으로 삼으면서 성전환 수술은 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는 걸 알게 된 것은 대학을 이미 반나마 다닌 후의 일이었다. 주사바늘이 싫은 사람도, 매스가 싫은 사람도, 그리고 자신의 성별을 몸으로 증명하고 싶지 않은 사람도 비수술 트랜스젠더로 살고 있다고 했다.
그러고 나서도 꽤나 오랜 시간을 고민했다. 내가 스스로를 그렇게 불러도 좋을까, 스스로를 여성이라고, 그리고 레즈비언이라고 말해도 좋을까. 한참을 고민했지만 선뜻 그렇게 선언하지는 못했다. 내가 정체성을 선택하도록, 그리고 선언하도록 만든 것은 애인의 입에서 나온 남자의 조건―내가 갖추어야 할 그 조건들을 들은 때였다.
남들이야 뭐라고 하든 웃어 넘기면 된다지만, 내가 사랑하는, 평생을 함께 할 사람에게만큼은 그렇게 읽히고 싶지 않았다. 나는 그의 입장과 나의 입장이 같다고 생각하는데, 그가 그렇게 여기지 않는 것은 괴로운 일이었다. 그래서 말했다. 나는 비수술 트랜스젠더 여성으로 살고 싶다고, 그렇게 나를 대해 달라고.
그리고나서 몇 번이나 말했을까. 내가 여성이라고, 나는 레즈비언이라고. 아마, 한 번도 당당히 말하지 못했을 것이다. 애인과 싸우면서 몇 번쯤 입에 올렸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맨정신에서 나는 여전히 그렇게 말하지 못한다. 홧김에 내린 결정이라서, 나의 선택에 자신감이 없어서, 정체성에 대한 혼란을 겪고 있어서, 그런 것은 아니다.
내가 접하는 수많은 여성들의 앞에서 나는 차마 내가 여성이라고, 나도 여성이라고 말할 수 없다. 그들이 겪고 있는 공포와 고통의 앞에서 나는 그렇게 말할 수 없다. 남성공화국이라 해도 좋을 이 세상에서 20년 가까이를 남성으로 살며 누릴 것을 누리고 짓밟을 것을 짓밟아 온 내가 당신과 같은 여성이라고 나는 말할 수가 없다.
그냥 자격지심이다. 20년 가까이를 남성으로―아무리 소극적이었다 해도― 살면서 누릴 것을 누리고 짓밟을 것을 짓밟아 온 나니까. 아무리 스스로를 여성으로 정체화한다고 해도, 생리통에서부터 성범죄의 공포까지 수많은 것을 경험하지 못했고 못할 나니까. 두렵다. 나의 친구들에 대한 나의 동질감의 표시가 어쭙잖은 잰체가 될까봐 나는 입을 다문다.
트라우마에 따른 검열이다. 온갖 것을 누리고 살면서 나도 소수자야 라는 되먹지 않은 소리를 입에 달고 살았던 수많은 이들을 보며 내가 느꼈던 불쾌감. 나도 서민입니다,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하는 이명박을 보며 내가 느꼈던 불쾌감. 그런 말도 안 되는 선언 앞에서 오히려 대상화되는 나를 보며 느꼈던 어이 없음. 내 친구들 또한 느꼈을 그 감정들을, 그 트라우마를 나의 선언이 환기시킬까봐 나는 두렵다.
나도 안다. 모든 여성의 경험이 똑같을 필요는 없고 똑같을 수도 없듯이, 나 또한 나만의 특수한 경험을 가진 여성으로 살면 된다는 것을. 다른 여성들 앞에서 나 역시 한 사람의 여성으로서 나의 경험을 이야기하면 된다는 것을. 수많은 오해들이 생길 수 있겠지만, 오해들이야 풀면 그만이라는 것을.
생각해 보면 우습다. 다른 여성들이 나를 여성으로 받아들일 수 있으면 좋겠다고, 그럴 수 있을만큼 여성에 가까운 여성이 되고 싶다고 말하는 건 이상한 일이다. 그때가 되면 더 당당하게 나는 여성이라고 말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도 우습다. 가까워 질만한 여성이 있다는 것도 이상하고, 여성이길 밝히기 이전에 누군가 나를 여성으로 대해주길 바라는 것도 요상한 발상이다.
그런데도 두렵다. 뭐가 두려운지 잘 모르겠는데도 여전히 나는 두렵다. 물론 내가 받은 트라우마 때문이지만, 한편으로는 그냥 아무에게도 상처 주고 싶지 않은 착한 아이 컴플렉스인지도 모르겠다. 세상이 내어 준 것 이외의 선택을 이미 한 마당에서 상처 없이 그것을 인정받을 수 있기는 할까 싶기도 하다. 하지만 여전히 두렵다.
끊임없이 분열한다. 남성의 외양을 한 누군가가 내 앞에 와서 나는 여성이에요, 라고 말한다면 나는 그를 아무 거리낌없이 받아들일 수 있을까. 내가 가진 남성혐오나 남성공포의 적용 대상에서 그를 한번에 제외할 수 있을까. 사실 어쩌면 그것때문인지도 모른다. 내가 못하니까 괜히 스스로 두려운 건지도 모른다.
같은 여자끼리, 라고 말할 수 없는 것이 문제다. 같은 여자, 가 존재할지는 잘 모르겠지만 나는 그렇게 말하고 싶다. 언제쯤 할 수 있을까. 내가 여성이라고 커밍아웃하는 것과, 여성의 문제에 쉽게 공감하고 같은 입장에서 말함으로써 신뢰를 얻는 것, 어느 것이 먼저고 어느 것이 나중일까. 알지만 답을 말할 수는 없다. 실행하지 못할 테니까.
이렇게 패배적으로 쓰면, 사람들이 싫어하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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