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이 없어졌다 자료집에서> 몸이 없어졌다

 출처: 연세대학교 제 22대 총여학생회 <speak-out>이 주최한
            2010 제 12회 여성제 <몸이 없어졌다> 자료집에서

몸을 직시한다는 것은 당혹스러운 일이었습니다. 몸이 구석구석 제 모습을 드러낼 거라는 예상과는 달리, 온데간데 없어진 몸의 자취와 맞닥뜨리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해서 누구도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했는지, 들으려 하지 않았는지 의아할 지경이었습니다. 언제부터 몸이 없어진 채로 나는 살아왔을까? 아니 어떻게 이걸 몰랐지? 몰랐던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일상에서 느닷없이 몸서리치게 하는 낯섬, 역겨움, 혐오, 우울, 고통과 같은 몸의 느낌들을 외면해버렸을 따름입니다. 너무나도 확고하게 몸이 있다고만 굳건히 믿어오고 들어오는 동안 나의 몸 너의 몸이 없어지는 줄도 몰랐지만, 기실 나의 몸 너의 몸은 곱게 없어지지만은 않았습니다. 낮게 구토하고 비명 지르는 몸의 언어가 내 몸 속 어디에선가 울려오고 있었으니까요. 몸이 없어졌음을 깨달은 것은 바로 그 때였습니다.

몸은 태어나자마자 생물학적/의학적으로 외부성기의 모양에 따라 두 개의 성별로 구획 되어야 한다, 여기에 한 치의 의심은 없다, 예외인 몸은 수술로 교정하라! 구획된 몸은 죽기 전까지 한 치의 어긋남 없이 이성애자 ‘여성’/‘남성’ 임을 연기하라! 이러한 명령에서 항시 이탈 중인 몸들을 몸의 지배 서사에 부합하게 되돌리려는 끊임없는 교정이 행해지고 있습니다. 그러더니 이제 와서 “몸은 본질적으로 그렇다”는 둥 몸에 질문을 못 던지게 합니다. 우리가 지금껏 익숙해져야 했고 있다고 여겨야 했던 몸은, 몸의 지배 서사에 맞춰져 볼 수 있고 읽어낼 수 있었던 몸에 불과합니다. 그 외의 몸들은 불가능하다고 주장되었기에, 우리는 서로의 몸을 독해해 낼 수 없었고 오독을 반복해야 했습니다.

날 것의 생명력을 가진 몸의 총체로부터 ‘여성’/‘남성’ 두 개의 몸만을 뽑아내고 나머지 몸을 박탈하는 것. 이렇게 몸은 살해당했습니다. 지금까지의 몸에 문제제기 하지 않은 채로 “각자의 몸은 모두 다르고 다양한 거 아니야? (근데 성별은 빼고)” 라고 쿨하게 말하는 건 아무것도 말하지 않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각자의 다름과 다양성 역시 정해져 있는 규범과 정상성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점을 성찰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근사하고 흠잡을 곳 없어 보이는 아름다운 여성을 바라보면서, 그녀가 제모한 털들, 일상적으로 느끼는 음식에 대한 죄책감, 마르고 근육 없는 몸으로는 위험한 상황에서도 스스로를 방어할 수 없다는 공포, 성애화 되는 것에 대한 거부감 등등 다 언급할 수도 없는 부대낌을 삭제해 버린 채로 아름답고 섹시함만을 보는 게 뭐가 그리 다르고 다양한 몸이 될 수 있습니까? 게다가 젊고 아름답고 건강한 이성애 여성으로 여겨지지 않는 몸은 즉각적으로 배제해버리는 마당인데요. 지배규범이 세밀하게 구획해 놓은 몸에 문제제기 하지 않은 채로 다르고 다양한 몸이 가능하기는 한건가요? 이러한 은폐 속에서 몸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몸은 원래 그렇다” 라는 말과 “몸은 다르고 다양하다” 라는 말은 얼핏 반대되는 말을 하는 것 같지만, 지배 담론 내에서 하나의 맥락으로 겹쳐지게 됩니다. 일단 ‘몸과 성의 정상성’이라는 기저에 깔린 관념은 도전받지 않은 채로 그대로 유지됩니다. 이와 동시에 몸의 ‘생물학적이고 본질적인 부분’을 ‘제외하면’ 모두 다르고 다양할 수 있다고 쿨하게 인정됩니다. 지배담론은 이러한 아이러니로서 몸을 포획했습니다. 서로 충돌하는 듯이 보이는 두 개의 관점은 기실 상호보완적으로 작용하면서 몸을 직시하지 못하게 합니다. 이는 근대의 몸에 관한 인식론과 의료 기획, 신자유주의 시대의 기획 가능한 몸, 가부장제 이성애중심주의 사회의 성/별이분법 매트릭스의 교묘한 합작이라 하겠습니다.

몸을 분석하고 관찰하고 진찰하는 사이, 몸을 자원화하고 기획하는 사이, 몸은 철저하게 타자화 되고 대상화 되어 갔습니다. 그러한 오랜 맹목 속에서 우리는 자발적으로 나의 몸과 너의 몸을 유기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러므로 어제까지는 있었던 몸이 오늘 아침에는 갑자기 없어진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미 그리고 언제나 각자가 살아가는 의미망 속에서 몸은 폭력적으로 없어지기도 하고, 몸의 경험의 재구성과 의미화를 통해서 드러나기도 한다는 말이 보다 정확할 것입니다.

몸은 여러 가지 좌표 속에서 실시간으로 위치지어지고 경합합니다. ‘여성’/‘남성’ 이라는 이분법적 범주에 기반하고 있는 성/별정체성과, 나이, 계급, 민족, 인종, 역사 등 가능한 좌표들의 경우의 수는 무수합니다. 이 좌표들을 경계 짓는 지배적인 담론에 의하여 내 몸은 어떤 방식으로건 배치되거나 배치되지 않거나 해왔습니다. ‘여성’/‘남성’, 이성애자/비이성애자, 장애인/비장애인 등으로 경계 지어지는 순간, 몸의 어떤 부분만을 볼 수 있게 되고 어떤 부분은 보이지 않게 됩니다. 이처럼 몸은 가차 없이 쪼개어지고 사정없이 찢겨져 나갑니다. 지배규범에 부합하는 몸은 살아남지만 거기에서 밀려난 역겹고 낯선 몸은 살해당합니다. 정상적인 아름답고 건강한 이성애자 ‘여성’/‘남성’이 되기 위해서는 이렇게 꿈틀거리고 분열증식 하는 몸을 흔적 없이 빠르게 잊어야 합니다. 그게 아니라면 ‘사회적 소수자’, ‘비정상적인 변태’로 살아가게 되겠죠. 아무리 평범해 보이는 그 누구의 몸일지라도 이러한 과정을 수월하게 통과하지는 못합니다. 그리고 몸은 그 기억을 고스란히 담고 있습니다.

몸을 어느 한 가지의 이야기로 설명해내려고 해도 몸의 일시적인 단면만을 담아내게 될 것입니다. 몸은 딱 떨어지게 경계 지어지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경계들이 충돌하고 모순을 일으키고 있는 접경지대이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내 몸은 지금 어떤가요? 몸을 붙박아 놓는 단조로운 지배규범으로부터 눈을 돌릴 때 비로소 몸들의 가변적이고 임시적인 측면들이 모습을 드러냅니다. 각자가 맺고 있는 관계와 맥락 속에서 몸들이 유동하고 파열하는 모습이 눈을 채우고도 남아 흘러넘쳤습니다. 이렇게 생동하는 몸을 살해해온 역사가 참으로 길었더랬으나, 한 번 그 장면들을 목도하고 나니 눈을 뗄 수가 없었어요. 잊고 있었던 기억이 떠오르기도 하고, 지금은 아무렇지 않은 일들이 처음에는 얼마나 끔찍했던가를 알게 되기도 했습니다. 이제는 내 몸을 가지고 어떻게 이리저리 노는지를 하나하나 짚어보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몸은 하나가 아니라 정체화 하는 과정 속에서, 어떤 다른 몸과 만나는지에 따라서 여러 가지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이렇듯 몸의 경험을 재구성하고 의미화 하는 과정에서 급변하는 몸의 장면들을 쫓아서 절실하게 더듬더듬 받아 적어 내려갔습니다.

각자가 몸을 직시하는데 있어 단초가 되었던 몸의 반응, 몸의 발화는 달랐으되 우리는 이것을 몸의 “잉여”라고 불러보았습니다. 쿠키반죽을 쿠키틀로 찍어내면 어김없이 가장자리가 남는 것과도 같이, 각자의 몸을 어떤 범주로 명명하고 포섭하고자 해도 결국 남게 되고, 보이지 않게 되는 몸이 있었던 까닭입니다. 내가 이성애 젠더규범에 끼워 맞춰지고 있다는 걸 알려주는 반증으로서 폭식/거식과 같은 몸의 고통이라든지, 섹슈얼리티에 관련하여 서로 다른 해석이 통용되는 공간(예를 들어 이성애 여성으로 간주되는 공간과 레즈비언 커뮤니티의 차이)에서 내 몸의 같은 부분일지라도 다르게 해석되고 다른 정체성의 표징으로 간주되는 것이라든지. 혹은 이성애 ‘여성’/‘남성’의 서사로는 매끈하게 꿰맞춰지지 않는, 어쩐지 여자애 같지 않았고 유별나고 일탈했던 기억으로 남아있는 경험이라든지. 어떤 정체성이나 범주로 명명하고 이에 따라붙는 서사들로 설명해보려 해도 설명되지 않는 목욕탕, 공중화장실과 같이 성별화 된 공간에서 몸의 불편함과 같은 것들…… 하얗고 가느다란 팔에 달린 겨드랑이 털, 가녀린 몸매에 굵고 허스키한 목소리, 굴곡 있는 가슴과 턱수염과 음경이 동시에 있는 몸, 장애가 있는 몸 등 지배적인 몸의 서사에 부합하는 배치에서 벗어난 몸과 맞닥뜨렸을 때의 치미는 감정들까지. 나의 몸의 잉여는 얼마든지 끊이지 않고 계속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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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요, 이제 좀 감이 오시는지? 빈말이 아니라 몸이 정말로 없어졌습니다. 몸이 있는 그대로 존재할 수 있다는 생각은 신화이니까요. 사회에서 몸이 존재 가능하다고 규정해놓은 방식은 철저하게 성별화 되어 있으며 ‘여성’/‘남성’의 몸을 발명하고 조형해냅니다. ‘이상적인 이성애자 여성’의 몸을 규정하고 아름다운 그리고 재생산이 가능한 몸으로 환원하려는 갖가지 시도들이 이루어집니다. 이러한 지배규범은 어떻게 몸을 통해서 재현될까요? 여기에다가 ‘여성’ 으로 불리우거나 ‘여성’ 으로서 정체화 하고 있는 이들, 그럼에도 불구하고/그로 인하여 몸이 없어진 이들의 없어진 몸이 왕왕 제 얘기를 꺼낼 때, 몸을 없애려는 시도는 어떻게 붕괴할까요? 그/녀들의 없어진 몸은 그/녀들의 정체성, 섹슈얼리티, 욕망과 아름다움과 갈등하고 충돌하면서 애초부터 없었던 것이 아니라 “없어졌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이렇게 개개인의 생애사 속에서 매 순간 몸이 재구성되고, 이러한 몸들이 만나서 관계 맺을 때, 어떤 몸이 드러나게 될까요?

몸은 항상 내가 아닌 그 무엇으로 타자화 되었고, 스스로는 말할 수 없다고 여겨져 왔습니다. “내가 몸에 대해 말하는 것이 아니라 몸이 몸에 대해 말한다” 는 건 그래서 그만큼 어려운 거겠죠. 몸에 대해 말할 때 부딪치게 되는 한계들과 그 속에서 여전히 고통스러워하고 있는 몸의 경험을 그대로 드러내기. 여기에서부터 다시 다르게 접근함으로서 지금껏 이야기되지 않았던 것을 이야기해 나가기. 내가 생각하는 대로 몸의 경험을 따로따로 떼어놓고 ‘예시’ 로 들어 무언가를 설명하려고 하면, 그것은 기존의 상징체계, 관념, 재현, 서사 등지에 종속되거나 파편화되어 버렸고 없어진 몸을 파악할 수 없게 되어버렸습니다. 그 실패의 과정을 지나, 몸을 통째로 들이 밀어보고 서로에게 단초가 될 수 있는 몸의 반응들, 발화들을 불러내고자 합니다. 몸의 “잉여”의 연쇄작용이 없어진 몸의 없어짐을 인식하게 하고, 없어진 몸의 생애사를 들을 수 있게 합니다.

자, 그럼 본격 제12회 미스테리호러스릴러 여성제 ☆ <몸이 없어졌다> 로 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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