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이 없어졌다 자료집에서> 여성됨의 서사: 나의 스토리텔링

 출처: 연세대학교 제 22대 총여학생회 <speak-out>이 주최한
            2010 제 12회 여성제 <몸이 없어졌다> 자료집에서

[ Scene #0: intro.

고등학교 시절에는 2층에 교실이 있는 학생이 꽃 배달을 받았다는 소식이 꼭대기 층인 4층에 있던 내 귀에까지 들려온다거나 하는 일이 가끔 있곤 했다. 나는 학년도 다르고 이름도 모르고 얼굴도 모르는 학생들의 이야기를 친구의 소곤소곤한 투로 진행되는 이야기를 통해 듣고는 했다. 우리가 소곤소곤 말해야 하는 이유는 그것이 드러내서는 안 되었기 때문이었다. 왜냐면 미성년 고등학생이었던 우리는 성적 욕망이 없는 존재로 간주되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성적인 욕망’을 드러내서는 안 되었다. 학생이면 연애를 하면 안 되고 학생이면 단정해야 하고 학생은 세수만 해도 예쁠 나이이고 학생이면 굽이 높은 구두를 신으면 안 되고 ‘학생이면, 학생이면, 학생이면…’으로 시작되는 규율들. 때문에 우리는 ‘성적인 욕망’의 단서를 드러낼 수 있는 행동들을 숨겨야 했고 그것들은 언제나 은밀하게, 선생님들이 포착할 수 없는 범위망 내에서 이루어지곤 했다. 하지만 ‘학생이면 단정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아무리 집요하게 주입되더라도 학생들은 ‘단정하지 못한’ 이야기들에 손쉽게 들썩이곤 했다.

대학교에 오고 성인이 되었다고 해도 달라진 것은 없었다. ‘여대생’인 나의 성적 욕망은 여전히 꾸준히 삭제당하고 있었다. 나에게는 단지 다른 이들이 갖고 있는 성적 욕망의 대상이라는 역할만이 주어질 뿐이었다. 이상했다. ‘성인 여성’이 되었다기보다는 여성으로 ‘다루어진다’는 느낌이 더 강했다. 나는 갈등했고 고민했고 나는 우울했다. ]

여성에 대한 성애화는 생각보다 이른 시기부터 시작하여 지속적이고 꾸준하게 이루어진다. 이러한 성애화는 대개 ‘2차 성징’의 특징을 보여줄 때부터 시작되는데, 이 시기의 성애화는 주로 ‘수치심’과 ‘폭력에 대한 두려움’을 키워드로 읽어낼 수 있다. 여성은 대개 ‘2차 성징’이 시작되면서부터 자신이 성애화 된다고 느낄 때에 수치심을 느끼도록, 그로 인해 폭력을 당할 수도 있다는 두려움을 갖고 스스로를 검열하도록 끊임없이 훈육 받는다. 예를 들어 6세쯤의 아동이 다리를 벌리고 앉아 있을 때에는 별다른 이야기를 듣지 않지만 중학생쯤의 여학생이 다리를 벌리고 앉으면 정숙하지 못하다고 바로 훈육되는 것이라든가, 어린 아이가 옷을 벗고 집안을 돌아다녀도 무어라 하지 않지만 중학생에 접어든 여자아이가 옷을 벗고 돌아다녔을 경우에 그러면 안 된다고 혼나는 것을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2차 성징’의 징후를 보이는 것은 임신과 출산을 할 수 있는 몸의 시작을 알리는 지표로 간주되므로 그 때부터 여성은 ‘아기를 낳을 소중한 몸이니 불행한 사건이 일어나지 않기 위해 조심해야 한다.’1)고 훈육된다. ‘2차 성징’시기를 겪고 있는 이들에게 시행되어 온 그간의 성교육(‘나는 아기를 가질 몸이야!’라고 말하라고 교육 받는 것)들이 이를 더욱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 Scene #1: 초등학교 5학년 때 보건선생님이 여자아이들만 모아놓고 만약 누군가가 원하지 않는 신체 접촉을 시도할 경우에는 ‘싫어요. 안 돼요 만지지 마세요.’라고 말하라고 가르쳤다. 교육이 끝난 후 애들이 계속 장난으로 그 말을 반복하며 놀았던 기억이 있는데, 어깨만 살짝 스치는 상황에서도 아이들은 우스꽝스럽게 그 말을 반복했고 나는 그렇게 연출되는 상황들이 매우 우스웠다고 기억하고 있다. 넓지 않은 복도에서 두 어깨를 감싸 쥐고 ‘싫어요. 안 돼요. 만지지 마세요!’라고 외치는 ‘초딩’들의 모습을 상상해 보라. ]

이러한 ‘2차 성징’을 막 드러내는 시기를 지나 20대에 진입하기 전까지의 기간은 ‘성애화의 유예 기간’으로 볼 수 있다. ‘조심하라’는 훈육은 계속되지만 ‘학생이면 단정해야 한다.’는 말이 힘을 발휘하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나는 인문계 여자 고등학교를 나왔다. 내가 다니던 고등학교는  비평준화 시절에는 꽤나 높은 점수를 받아야 들어갈 수 있었다. 사립학교인지라 꽤나 오랜 시간동안 재직해온 선생님들이 많았고 그 선생님들은 학생들에게 ‘우리 학교가 얼마나 좋은 학교인지’와 ‘비평준화 시절 당시의 학생들이 얼마나 단정했는지’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고는 했다.

위에서 볼 수 있듯 ‘인문계 고등학교에서 대학 진학을 목적으로 한 학생’으로 간주되는 이들은 ‘학생이면 단정해야 한다.(학생이면 무성적인 존재여야 한다.)’는 명제만 벗어나면 그 어디에서든지(심지어 ‘학생’이라는 정체성으로 생활해야 하는 학교에서도) 성애화될 수 있었다. 그러나 20대에 진입한 여성에게는 성애화의 요구가 노골적으로 드러난다. 명확하게 생각나지 않는다면 ‘너도 이제 여자가 되어야지.’라는 말을 떠올려보자. 성인기에 접어들기 전까지 금지되었던 ‘성애화’적 요소를 제거한 그 모습들을 성인기에도 유지한 사람들 – 자신의 몸의 윤곽을 감출 수 있는 의상을 입고 다니고나 머리카락을 짧게 잘랐거나 자신의 머리카락을 하나로 꽉 묶고 다니는 사람들-이 주로 그런 말을 들을 것이다.

아이러니컬한 것은 ‘학생’일 때는 ‘복장불량’이라며 하지 말아야 할 것들이 20대에 진입한 여성에게는 ‘예의’라는 이름을 달고 ‘해야 할 것’으로 변모하는 것이다. ‘공식적’자리에서는 화장을 해야 한다거나 몸의 굴곡을 드러내는 옷을 입어야 아름답다거나 다리를 모으고 앉아야 한다거나 하는 것들이 그것이다. 연령대의 변화에 따라 여성은 이런 규율을 수행하지 않거나 수행하도록 요구받는다.

[ Scene #2 : 고등학교 때까지만 해도 ‘단정한 것이 최고다.’라는 소리를 들었으나 대학교 오니까 부모님이 ‘치장’(?)을 허락했다. 중학교 입학 이후로 금지되었던 머리 염색과 파마를 할 수 있게 되었고, 렌즈를 끼고 다닐 수 있게 되었고, 짧은 치마를 입어도 ‘망측하다’라는 말 대신 ‘예쁘다’라는 말을 듣게 되었고, 화장을 하고 있어도 욕을 먹지 않게 되었다. (하지만 지금도 내가 파란색 섀도만 칠했다 하면 갖가지 소리들이 날아든다.) ‘돈을 줄 테니 머리 좀 하고 다녀라.’ 라는 소리를 듣게 되었다. 대학교에서 만나는 사람들의 인사말에는 복장에 관한 말이 많이 나오곤 했었는데, 그런 말들에는 대개 이상한 추측들이 담겨 있었다. ‘소개팅이라도 있느냐.’ 혹은 ‘요새 많이 힘드냐.’ 같은 말들로 나뉘고는 했는데 그 추측들은 거의 항상 엇나갔다. ]

하지만 그러한 ‘예의’라고 간주되는 규율들을 내면화 하는 과정은 생각보다 손쉽지 않다. 하지 말라고 하는 것을 갑자기 해야 하니 어리둥절하면서도 불편하고, 깔끔하게 딱딱 떨어지는 안내서가 있는 것도 아니니 더듬더듬 알아가야 해서 더더욱 어렵다. 그리고 규율들은 항상 티가 나지 않거나 날듯 말듯하게 드러나는 정도로까지 개인 안에서 내면화되어야한다. 만약 이렇게 ‘예의’라고 간주되는 규율들을 지키기 않았을 경우에는 여성은 ‘수치심’을 느끼도록 교육받는다. 또한 이런 ‘수치심’의 연장선에는 ‘폭력을 당할지도 모르는 두려움’이 자리 잡고 있다. 이러한 것들을 통해 스스로 규율을 지키도록 만드는 것이다. 다리를 벌리고 앉지 말 것, 섹슈얼한 의미로 뒤덮여 있는 신체 부위를 드러내지 말 것, 노출이 심한 옷을 입지 말 것, 속옷빨래를 공개적인 장소에 드러내지 말 것.

[ Scene #3: ‘화장을 하지 않고 어떻게 바깥을 다녀?’ 라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에는 ‘말도 안 돼!’ 라고 생각했으나 정작 내가 화장을 하지 않고는 집 바깥에 나갈 수 없게 되었던 것. 얼굴 위에 미친 듯이 올라오던 여드름을 바로 가라앉힐 수 없다는 좌절감과 당장 내 얼굴에 무언가 붉고 튀어나오고 건드리면 아픈 것이 올라와 있다는 것에 대한 이물감과 불쾌감이 겹쳐져서 감당할 수 없었던 것, 자꾸 만지면 덧날 것을 알면서도 어떻게 해서든 나갈 때에는 화장을 덧발라 가리던 것, 안경을 쓰고 집 바깥에 나가는 것 또한 나 자신이 견딜 수 없었던 것. ]

여성의 훈육은 ‘2차 성징기’가 시작되었을 때부터 본격화되지만 20대에 진입하여도 여성은 여전히 훈육된다. 둘 다 ‘훈육’이지만 특히 후자에는 성애화적 요소가 추가되어 있다. 20대에 접어든 여성은 ‘학생’ 시절과는 다르게 자기 몸의 섹슈얼한 요소를 드러내기를 요구받음과 동시에, 그러한 의도는 감추어야 하는 모순되는 상황과 맞닥뜨리게 된다. 그러한 의도를 감추지 않고 적극적으로 자신의 성적 욕망을 드러내거나 일련의 ‘성애화’를 거부하는 여성에게는 가차 없는 비난이 쏟아지거나 여러 형태의 폭력이 가해진다. 하지만 그것들은 너무도 손쉽게 정당화된다. 왜냐하면 그녀는 가부장이 지켜줄 수 있는 테두리 바깥의 여성이고 이러한 여성은 가부장이 ‘지켜줄 수 없는’ 여성이기 때문이다. 가부장은 (그들의 언어로 이야기하자면) ‘누군가(흔히 여성과 어린이)를 지켜주면서’ 자기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고 그에 따른 기쁨을 느끼는 존재들이므로 이러한 여성은 가부장에게 위협적이다. 통제의 영역 바깥에 위치한 그녀는 가부장의 영역으로 포섭되어야 할 여성으로 여겨지며 가부장은 그녀를 포섭하기 위한 폭력을 그녀의 온몸에 가한다.

[ Scene #4: 20대 초반이라는 나의 나이는 좋은 자원이 된다. 그런데 내 물리적 나이만 자원일 뿐이다. ‘20대 여성이 가질 수 있는 수많은 몸의 가능성’은 ‘이상적이라고 여겨지는 하나의 몸의 가치’에 살해당한다. 나의 몸이 현재 가지고 있는 윤곽은 자원이 되지 않는다. 사실 나는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화장도 사실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옷을 입는 것도 내가 만들어서 입는 게 아닌 이상 내 마음대로 입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게다가 내가 만약 화장을 꽤나 짙게 하고 다닌다면, 내가 노출이 있는 옷을 입고 밤거리를 거닌다면, 나는 성폭력의 위협을 느낄 것이다. 자원으로 여겨지는 나의 몸이 나 혼자 밤길을 내 맘대로 쏘다닐 수 없게 하는 요인으로도 작용할 수 있는 것이다.2) ]

그리하여 그녀들은 지속적으로 규율 하에서 행동하도록 훈육된다. ‘2차 성징’을 보일 때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훈육은 ‘학생’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는 시기에는 ‘학생은 단정해야 한다.’는 명제에 따라 노골적 ‘성애화’를 금지한다. 하지만 그 명제는 가부장들이 꾸준히 행해온 ‘성애화’의 작업을 은폐하기 위한 장치일 뿐이다. ‘학생은 단정해야 한다.’라는 명제는 ‘학생은 무성적 존재이다.’라는 명제로 이어진다. 그것은 ‘학생은 성적 욕망을 가지지 않는 존재다.’라는 명제까지 다다른다. 그 명제 하에서 많은 ‘학생’들의 몸의 서사는 난도질당한다. 이렇게 난도질당한 서사는 20대 여성에게 노골적으로 드러난 성애화 요구를 통해, 가부장의 통제가 가능한 단조로운 몸이 아니면 살해당하기에 이른다. 이렇게 살해당한 몸의 서사들을 직시 하려고 노력하는 것은 비록 고통스럽고 명확하지 않아 더듬거리게 되겠지만, 이러한 시도는 사라진 몸의 서사를 찾기 위한 시작이 될 것이다.

by 성애화 너마저!!!!!!!! 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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