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이 없어졌다 자료집에서> 너에게

출처: 연세대학교 제 22대 총여학생회 <speak-out>이 주최한
            2010 제 12회 여성제 <몸이 없어졌다> 자료집에서 

처음에 내 몸에 관한 경험을 쓰고 나서 달았던 제목이 “좌절의 기억”이었다. 하지만 내 몸에 관한 그 동안의 느낌을 “좌절”이라는 한 단어로 표현하기엔 뭔가 부족한 느낌도 들었고, 내 몸에게 미안한 느낌마저 들었다. 나에겐 아픔과 슬픔의 이미지로만 기억되던 몸. 하지만 그것은 내 몸이 진정 무엇이고, 뭘 원하는지는 생각하지 않은 채 그저 남들의 시선을 의식하고 남들한테 잘 보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는 동안에 내 몸은 나와 점점 어색해지고, 내 것이 아닌 “다른 무엇”이 되어 버린 것 같다. 그래서 내 몸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고 진실하게 내 몸을 불러보고 싶은 마음에 “너에게”라는 제목을 붙이게 되었다.

어렸을 때 나는 친구들과 다양한 놀이를 하는 걸 좋아했었다. 친구들과 자주 축구를 했었고, 쉬는 시간에는 오목이나 장기를 두는 걸 좋아했었다. 또한, 여자애들과 공기놀이를 하거나 아이앰그라운드 하면서 노는 것도 빠지지 않고 했었다. 하지만 나의 시선을 끄는 놀이는 바로 고무줄 놀이였다. 여자애들이 폴짝 폴짝 뛰면서 즐겁게 웃는 모습에 끌렸던 것 같다. 나도 고무줄 놀이하고 뛰어 다니면 왠지 모를 해방감을 느낄 것만 같았다. 내가 초등학교 다닐 때엔 주로 점심시간에 학교 건물 옆에서 여자애들 여러 명이서 고무줄놀이를 했었다. 내가 학교 다닐 때만 해도 여자와 남자를 구분해서 하는 놀이는 별로 없었지만, 고무줄놀이만큼은 예외였다. 여자애들이 즐겁게 놀 때 항상 고무줄을 가위로 끊는 남자애들이 있었고, 그 애들은 어떻게 하면 잽싸게 고무줄 끊고 잡히지 않을지를 고민했었다. 나는 당시 너무나 소심하고 평소엔 말도 잘 안하는 성격이었기 때문에 그 친구들의 심기를 건드리고 싶지 않았고, 여자애들한테도 같이 하자는 말을 하지 못했었다.

중학교 올라가서는 내 몸을 더 마르고 호리호리하게 보이고 싶은 욕구가 강했었다. 당시 중2때까지만 해도 키는 170 조금 넘는데 몸무게는 40 밖에 나가지 않았었다. 거식증이나 폭식증의 증세는 없었다. 단지 난 같은 학원에 다니는 여자애들 보면서 저 애들보다도 더 말라보이고 싶다는 욕구를 가지고 있을 뿐이었다. 딱히 이유도 없이 먹고 싶은 것도 참아가면서 내 몸을 지치고 힘들게 만들었었다. 결국 한창 클 나이에 뭐하는 짓이냐며 엄마한테 심하게 혼나고 집에서 식사를 할 때엔 반강제로 밥을 먹기에 이르렀다. 그럴 때 내 몸은 포만감을 느끼고 편해지지만 내 머리만은 불편함에 잠을 자지 못하는 경우도 많았다.

 또한 차츰 차츰 생기는 여드름에 나도 모르는 거부감이 강하게 들기 시작했다. 내 얼굴에 나는 이 빨간 건 무엇인가? 만지면 아픈 게 너무나도 싫었다. 그래서 여드름이 생기면 미친 듯이 짜고, 세수할 때에도 일반 비누로 미친 듯이 닦았다. 결국엔 여드름이 걷잡을 수 없이 심해졌고, 병원에 가서 심각하다는 판정을 받기에 이르렀다. 그러자 나는 이렇게 여드름을 만들고 싶지 않은데 내 몸은 자꾸 왜 이러는 건가 하는 좌절감에 빠졌고, 내 몸에 대한 미움이 커져갔다. 그 후 수시로 여드름을 짜는 건 내 머릿속에서 생각하지 않아도 본능적으로 이루어졌다. 결국 이러한 피부에 대한 집착은 내 피부를 심하게 망가뜨렸고, 그 후로 사람들은 내 얼굴을 볼 때 피부만 볼 것 같다는 심한 회의감에 빠져들었다.

 하지만 중학교 다닐 때엔 키도 부쩍 커지고 축구, 농구 같은 운동도 친구들과 잘 어울려서 했기 때문에 학교에서 친구들 사귀는 데 있어서 큰 문제는 없었다. 또한, 어렸을 때부터 호기심을 풀지 않으면 몸이 불편했을 정도로 끈기가 있는 성격 덕분에 공부도 잘해서 반장도 해보고 많은 친구들을 사귀었었다. 하지만 이런 내 몸의 고마움의 크기보다는 피부로부터 느끼는 내 몸에 대한 미움과 혐오감이 더 커서 이런 몸을 주신 부모님을 미워하기 일쑤였다.

 결국 고등학교 올라가서는 내 몸에 대한 혐오감이 더 커졌다. 친구나 선생님과 대화할 때도 나는 마치 죄인처럼 얼굴을 푹 숙이면서 눈도 안 마주치고 얘기를 하게 되었고, 사진을 찍는 기피 증세까지 보이기 시작했다. 그래서 아직도 내 고등학교 시절의 사진은 나름 깔끔하게 나온 졸업사진을 제외하고는 2,3장 밖에 남아있지 않다. 그 후 대학교 들어오면서 피부 관리에 대해 차츰 알아가게 되었고, 돈이 많지 않았던 나는 저렴한 가격 선에서 피부 관리를 하기 시작했다. 무작정 내 얼굴, 내 피부를 질책하지 말고, 그들의 고충을 들어주고 달래주자라는 식으로 말이다. 하지만 6년 피부에 학대를 해왔기 때문에 피부 개선은 매우 천천히 이루어졌다. 다행이도 요샌 친구들도 많이 좋아졌다고 칭찬하지만, 과제 때문에 며칠 밤을 새면서 내 몸을 혹사시키는 내 피부는 화가 난 듯 심하게 빨개지고 벗겨진 상태로 나한테 항의를 한다.

 고등학교 시절엔 두발 제한이 엄격하게 적용되었다. 머리를 길게 기르는 학생의 경우 밤에 학교에 나와 운동장 수십 바퀴를 오리걸음으로 걷게 하던지, 체육관 모든 지역을 청소시키는 등의 가혹한 처벌이 내려졌다. 그래도 깡이 있던 학생들은 선생님이 교실을 돌 때 화장실에 숨어있는 등의 전술로 아슬아슬하게 피해갔다. 당시 소심했던 나는 그 친구들이 머리를 길게 기르고 젤과 왁스를 바르는 모습이 부러웠다. 그래서 대학교 들어간 후에 몇 개월씩 머리를 다듬으면서 머리를 굉장히 길게 길렀다. 그 때는 머리카락이 금방 자라는 여자애들이 부러운 적도 있었다. 몇 개월씩 신경을 쓰자 내 머리카락은 내 몸에서 가장 중요한 일부가 되었다. 그 후 난 과감하게 전부 노란색으로 염색을 하고 싶었다. 하지만, 우리 엄마가 결사적으로 반대를 하였다. 머릿결이 나빠진다, 양아치로 보인다는 등의 이유로. 고등학교 다닐 때 “대학교에 입학만 하면하고 싶은 거 뭐든지 하게 해줄게”라고 약속을 했던 엄마였다. 엄마의 거짓말에 실망했지만 난 그래도 꿋꿋이 엄마한테 염색을 하겠다고 얘기를 하고 미용실에 갔다. 하지만 당시 미용실의 직원의 말은 더 충격적이었다. 엄마가 전략적으로 미용실 직원에게 “이 애 노란색으로 염색하면 이상하죠? 그냥 브리지나 넣는 게 어떨까요?”라고 하자 직원은 “네 브리지가 더 어울릴 거 같아요. 그래도 결정은 본인이 하셔야죠.”라고 말하는 것이 아닌가. 그러자 엄마는 아군을 만난 듯이 나한테 계속해서 브리지만 해라, 염색할 돈은 없다는 식으로 협박을 했고, 결국 브리지만  넣는 것에 만족해야 했었다.

 하지만 친구들의 반응은 예상외였다. 외국인 같다, 너무 안 어울린다, 네가 무슨 개그맨인 줄 아냐는 등의 혹평만 오고 갔다. 그 중에 가장 황당했던 말은 “너 혹시 게이냐?”라는 말이었다. 그 말이 정확히 뭘 의미하는지 알려달라고 하자 “변태 같자나. 그게 뭐야?”였다. 난 너무나 화가 나서 “내 머리가 어째서 변태 같다는 거야? 게이에 대해서 잘 알지도 못하면서 그런 말하는거냐?” 라고 따지자 그 친구도 나한테 질 수 없다며 화를 냈었다. 결국 주변의 여자애들도 이상하다는 식의 반응을 보이는 등 좋은 얘기가 하나도 없다는 걸 알게 된 후 난 내가 젤 아끼던 머리를 검은색으로 바꾸고 짧게 잘랐다. 그러고 집에 돌아오자마자 아버지께서 반가워하시며 “얼마나 깔끔하고 보기 좋냐?”라고 말했을 때의 불편함. 내가 보기엔 그 전의 헤어스타일이 더 좋은데. 그렇다면 누가 보기 좋게 잘라야 하는 건가하며 느끼던 어색함이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나는 변성기가 금방 지나가버렸다. 그래서 목소리가 약간 높고, 노래 부르면서도 내가 목소리가 약간 모기 목소리 같다는 느낌을 갖는다. 또한, 친구들과 친하게 지내기 시작하면서 대화의 주도를 내가 잡으면 말을 굉장히 많이 하는 편이다. 한 번은 집에서 엄마와 대화를 열심히 하는 중이었다. 엄마께서 나한테 친구 만날 때도 그렇게 말 많이 하고, 빨리하고, 경박한 톤으로 말하느냐고 물어봤었다. 그래서 나는 친한 친구 만날 때에도 이렇게 말하는데 그게 경박한 건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러자 엄마께서는 덩치도 있는 애가 그래야겠냐면서 친구 만날 땐 말 많이 하는 건 좋지만, 친구 말할 기회도 주고 말 좀 줄이고, 목소리도 좀 굵게 하라고 말하셨다. 그러면서 여자는 네가 남자답게 의젓하고 말도 신중하게 하는 모습을 보여야 좋아한다면서 목소리를 좀 더 신경 쓰라고 말하셨다. 난 약간 하이톤 같은 목소리가 좋은데, 왠지 반가운 친구 볼 때엔 말 더 많이 하고 싶고, 더 많이 말하려면 빨리 말해야하는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흔히 말하는 남자답게, 멋있게 보이려면 내가 하고 싶은 말도 하지 못하고 내 목소리도 약간 거짓되게 숨겨야하는 건가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엄마의 가벼운 충고라 생각하면서 넘어갔었다. 하지만 그 이후로 친구를 만날 때 아무리 편하게 느껴지고, 기분이 좋아도 어느 정도 내 목소리에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말하고 싶은 방식대로 말하지 못하면서 내 몸에 대해 또 한 번 좌절감을 맞보게 된 것이다.

 지금까지 몸에 관련된 기억들을 풀어보니, 몸에 대한 고마움과 뿌듯함 보다는 내 몸에 대한 혐오감, 내 몸을 마음대로 표현하지 못하는 좌절감이 더 컸던 것 같다. 이렇게 내 몸을 싫어했었나 하는 생각에 괜히 미안한 감정마저 든다. 이러한 감정은 과연 나만 갖고 있는 특별한 감정일까? 소위 말하는 인기 많고 멋있는 친구들은 과연 자기 몸에 대하여 어떤 생각을 갖고 있을까? 그들도 주변에서의 인정을 얻기 위해 몸을 꾸미고 가끔은 혹사시킬 때엔 나와 비슷한 감정을 갖고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결국 우리가 갖고 있는 것은 우리의 몸이 아니라 그저 남들이 바라고 내가 꿈꾸던 형태를 쫓다 고꾸라진 하나의 덩어리는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몸이 없어졌다는 걸 이제야 실감하게 되었는데, 과연 몸은 어디로 가버린 것인가? 지금 나를 감싸고 있는 것들이 언제부터 타인들의 시선과 나의 강박관념의 덩어리로 바뀐 것일까? 이런 생각들이 나를 휩쓸자 이제는 좌절감이 아닌 “나를 떠난” 내 몸을 어떻게 찾아야 할지 답답함만이 나를 감싼다. 그냥 남들의 시선 신경 쓰지 않고 내 마음대로 꾸미고, 내 마음대로 관리하면 네가 다시 돌아와 줄까? 나를 둘러싸고 있는 표피들에서 일어나는 변화들을 인정하고 감싸주면 너를 다시 찾을 수 있을까? 내 몸을 찾기 위한 여러 가지 방법을 생각해 보지만 사라진 내 몸을 찾기란 쉽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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