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이 없어졌다 자료집에서> 뭉툭

 출처: 연세대학교 제 22대 총여학생회 <speak-out>이 주최한
            2010 제 12회 여성제 <몸이 없어졌다> 자료집에서

 어느 시골 마을에서였다. 마을에 사는 친한 선배언니와 함께 길을 걷고 있었다. 지나가던 마을 할머니가 선배에게 반갑게 인사를 하더니, 나를 보고 뭔가 칭찬의 말을 했다. 나는 그때 짧은 커트 머리에, 헐렁한 바지에 박스티를 입고 보정기능이 전혀 없는 속옷을 입고 피부는 까맣게 타 있었다. 누구라도 여자로는 쉽게 보지 않을만한 차림새였다. 그래서 할머니도 나를 남자아이로 보고, 듬직하다고 했던가 하여튼 뭐라고 칭찬을 했다. 그 말을 들은 선배는 “할머니, 얘 여자에요.” 하고 정정을 해 주었다. 그러자 할머니는 조금 놀라면서 “여자라?” 하더니 확인하듯 내 가슴을 쓸어만져 보는 것이었다. 그러더니, 웃는 낯으로 “허허, 뭉툭하니 좋으네” 하시고는, 선배에게 인사를 하고 다시 길을 걸어가셨다.

 이 짧은 에피소드는 나에게는 굉장히 강한 인상으로 남아있다. 가슴을 만져보는 것까지는 별로 놀라울만한 일이 아니었지만, ‘뭉툭하니 좋으네’라는 할머니의 말을 들었을 때 나는 순간 벙 찌는 충격을 받았었다. 그때 내가 예상했던 할머니의 반응은 ‘여자 맞네’라든가, ‘가슴이 작으니 몰랐지’라든가, 뭔가 내 가슴크기와 거기에서 확인한 여성성에 대한 것이었다. 하지만 할머니는 내 가슴크기와 성별을 연결짓는 말을 하지 않았다. 가슴이 ‘뭉툭하고’ 그래서 ‘좋다’는 그 한 문장에 나는 무척 위안을 받았다. 내 가슴은 여성스러운 가슴이거나 여성스럽지 않은 가슴이 아니라, 그냥 ‘뭉툭한’ 가슴이었다.

 그래서 나는 주로 동성애자 커뮤니티에서 가끔 ‘뭉툭’이라는 단어를 이름으로 쓴다. 그 단어가 나를 ‘여성’에서 분리시키는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나는 여성으로 불리기보다는 남녀로 분리되지 않는 하나의 퀴어한 성별로 불리기를 원하고, 내가 가진 몸의 성질들이 하나하나 여성의 것이 맞는지를 확인받기보다는 그 자체로 인정되기를 원한다. 세상은 경계의 몸을 좀처럼 인정하지 않지만, 사실 우리의 몸은 세상이 정해 놓은 경계를 지키지 않는다. 나는 저절로 난 손발과 코밑, 배와 겨드랑이의 털들을 없애고 싶지 않고, 눈이 거북해하는 렌즈를 억지로 끼고 싶지 않고, 와이어가 들어간 브래지어를 입고 싶지 않다. 여성의 몸이 아니라 나의 몸을 갖고 싶다.

 가끔 내 몸이 남성으로 변한다면 어떨까, 하는 상상을 해 본다. 남성으로 변한다는 건 가슴이 보다 납작해지고 페니스와 고환이 생기고 테스토스테론의 분비가 늘어난다는 것 정도로 상상한다. 그러면 과연 뭐가 달라질까. 성별이 달라짐으로써 나는 일부분에서는 규범에 맞게 될 것이고, 일부분에서는 규범에서 벗어날 것이다. 우선 아마도 동성애자에서 이성애자가 될 테니 지금까지 숨기고 감추어야 했던 나의 성애적인 욕망들은 갑자기 정상으로 평가될 거고, 그걸 마음껏 드러낼 수 있는 삶은 참 편할 것 같다. 하지만 주변에 온통 여자친구들뿐인 나의 인간관계나 나의 성격들 중 일부는 ‘남자답지 못한 것’으로 분류되고 이상하게 취급되겠지. 규범 때문에 입지 못하게 될 짧은 반바지나 프릴이 달린 블라우스도 가끔 다시 입어보고 싶어질 것 같은데. 그런 상상 속에서 성별에 대한 규범들은 부자연스럽고 허구적이 된다. 여성으로서 비규범적인 내 몸이 남성으로 변화한다고 해서 규범적이 되지는 않는다. 몸이 규범에 따라 변화하는 것이 아니라, 규범이 몸을 맞고 틀림으로 분절시키고 억압한다. 나는 그렇게밖에 상상할 수가 없다. 이미 세상의 규범에 맞지 않는 몸들은 너무나 많이 있고, 현재의 내 몸 또한 그러하기 때문에, 성별이 바뀌는 것을 모든 ‘여성적’인 것들을 버리고 ‘남성적’인 것들을 갖게 되는 것으로 상상할 수가 없다.

 성별에 대한 규범들은 20대가 되면서 나를 갑작스레 덮쳐왔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특정한 성별이 된다는 것도 포함하는 것 같았다. 불과 몇 달 전까지 금지되었던 짧은 치마나 긴 머리, 화장은 이제 은연중에 권장되었다. 그러한 여성성을 더 많이 가진 사람이 선배들에게 더 많은 사랑을 받고 더 쉽게 집단에 동화된다는 걸 느꼈고, 나도 그런 여성스러운 차림을 했을 때 더 많은 칭찬과 환대를 받을 수 있었다. 그건 처음에는 신선한 즐거움이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몸에 대한 억압이 되었다. 바싹 마른 몸이 아니면 타이트하거나 노출이 있는 여성스러운 옷은 입을 수가 없었고, 치마를 입었을 때는 발이 아프더라도 힐을 신지 않으면 모양이 예쁘지 않았다. 겨드랑이 털은 매일 면도해야 했고 팔다리의 털들도 신경이 쓰였다. 나는 늘 다이어트를 했고 발바닥에 굳은살이 생기도록 구두를 신었으며, 어느새 그날 옷차림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수업이 남아 있어도 집에 오게 되었고, 엠티에 가서도 새벽에 일어나 화장을 하게 되었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게 해도 내가 원하는 것만큼 여성스럽지 않고 아름답지 않은, 그래서 환대받지 못하는 내 몸에 대한 혐오감은 점점 감당하기 어려워져 갔다.

 어느 날 더 이상 견디지 못하게 된 나는 그 모든 걸 버리기로 했다. 가부장적인 학교 속에서 환대받지 못하더라도 나 스스로는 나 자신을 당당하게 유지할 수 있는 힘을 갖고 싶었다. 그래서 머리를 자르고 중학교 때나 입던 굴곡 없는 옷을 다시 꺼내 입고 화장을 하지 않고 학교에 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그런 모습으로 사람들을 제대로 바라보기가 힘들었다. 누군가의 눈에 내 모습이 담기는 것을 목격하고 싶지 않았다. 모든 것이 낯설고, 나와는 다른 것 같고, 세상과 분리되어 있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그런 느낌 속에서도 버티는 힘이 생기자 곧 사람들은 내 생각만큼 나에게 관심 갖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되었다.

 나는 꾸준한 노력과 탐색을 통해 다행히도 이제 그 규범의 강박에서 벗어날 수 있는 나름대로의 길을 찾았고, 시간이 지날수록 조금씩 자유로워지고 있다. 성별로부터 비교적 자유롭게 있을 수 있는 공간과 친구들을 만났으며, 최대한 사회의 요구에 얽매이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하고, 최대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면서 살고 있다. 끊임없고 끝없는 사회의 요구 속에서 나는 틈새의 삶을 산다. 그리고 내 삶에 만족한다. 이런 틈새가 좀 더 넓어지고 아늑해져서 더 많은 사람들이 이런 삶을 선택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몸에 대한 온갖 규범들을 억압으로 느끼는 나 같은 사람들이 아늑함을 느낄 수 있는 공간들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뭉툭하니 좋으네’ 하시던 할머니에게서 느꼈던 것처럼, 규범에 오염되지 않은 눈을 갖고 그런 눈들 속에서 살고 싶다.

-by 따뜻하게 안아줘요, 뭉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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