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이 없어졌다 자료집에서> 몸은 괜찮지가 않았다.

 출처: 연세대학교 제 22대 총여학생회 <speak-out>이 주최한
            2010 제 12회 여성제 <몸이 없어졌다> 자료집에서 

  얼마전 나는 병무청에 다시 신체검사를 받으러 갔다. 폐결핵을 앓는 바람에 기도가 좁아졌고 그래서 병원에서 다시 신체검사를 받아야 한다고 했다. 의사는 나에게 병사용 진단서를 써줬고, “당신의 기관지에 있는 병은 일종의 장애이기 때문에 군면제 혹은 공익근무 판정을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살을 뺀다면 훨씬 편하게 ‘정상’생활을 할 수 있을 겁니다.” 라고 말했다. 그래서 나는 진단서 하나를 들고 컨테이너 벨트에 오른 나사가 채 조여지지 않은 공산품 마냥 나는 오전 내내 여기저기로 끌려가 내 몸에 대한 판정을 들어야 했다.

  모든 것이 너무 명확해지던 순간이었다. 병원과 병무청, 그리고 그곳의 의사들은 내 몸을 헤집어 정상인 이유와 비정상인 이유를 하나씩 댔다. 그러는 동안 단 한순간도 내가 어떤 상태인지 설명할 수 있는 기회는 없었다. 의사는 내 몸의 질병을 판단했고, 군대는 그것을 확인하고 판정 내렸다. ‘그들은 나를 억압했다.’는 사실은 너무 명확했다. 너무 명확해서 오히려 나는 차라리 속이 시원하다는 생각도 했다. 보이지 않는 것처럼 보였던 나에 대한 규범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상황에서 나는 그 규범들에 대해 더 많이 설명해 낼 수 있을 것 같았다. 병원과 병무청을 오가며 겪었던 일련의 사건들은 규범들이 나를 어떻게 ‘배제’하고 있는지에 대한 명백한 현장 증거들이었다. 그래서 나는 내가 억압받았다는 사실을 내 언어로 명확하게 설명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고, 그렇게 하는 것이 나를 치유하는 일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날 밤 나는 내 뱃살을 칼로 도려내는 망상에 사로잡혀야만 했다. 뭔가 불안했다. 내가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그날 밤 친구에게 내가 병원과 병무청에 경험한 것들이 얼마나 나에게 ‘폭력적’이었는지를 이야기했다. 그리고 내가 그로 인해 받은 스트레스와 ‘피해’들을 이야기했다. 내 뱃살을 칼로 도려내는 망상은 설명할 수 없었기에 이야기하지 않았지만, 나는 충분히 지금의 나를 드러낸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분명한 것은 아직 설명되지 못한 남겨진 이야기들이 있었다는 것이다. 더 명확한 언어로 설명하려고 노력할수록 어쩐지 더 이상 하지 못하게 되는 이야기들이 있었다. 결국 내 목젖을 짓눌러 억지로 토를 하고 체중계에 올라 몸무게를 체크하는 순간 내 몸이 다른 이야기들을 하고 싶어한다는 것을 알았다. 설명할 수 없었던 무언가를 몸이 다시 이야기하고 싶어한다는 것을 눈치챘다. 

  그 시작은 의사의 말이었다. 내 몸이 여느 ‘정상’인의 몸과는 다르다는 말은 내 몸에 엄청난 불일치를 야기했다. 장애에 대한 두려움과 내 몸을 판정하는 의사에 대한 저항과 군대에 가지 않을 수도 있다는 안도, 이 모든 것들이 한꺼번에 몸에 일어났다. 몸이 기억하고 있는 것들은 내가 폭력적인 상황에 처했고, 그래서 내가 상처받았다는 단순한 인과관계가 아니라 내가 살아온 공간이 ‘장애’에 대해 어떻게 이야기했었는지에 대한 것이었으며, ‘정상적’으로 군대에 가지 않는 것이 어떻게 나를 ‘비정상’의 범주로 밀어 넣을 것인지에 대한 공포였다. 또한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왜 그것을 불편하게 여기고 여겨야 한다고 생각하는지에 대한 것이었다. 상상했던 것처럼 명확하게 가해와 피해가 존재하지 않았다. 사실 나는 내 몸에서 겹쳐지고 있는 복잡한 관계들과 상황들, 기억들이 치열하게 갈등하고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알 수 없었다. 나는 내 몸에서 일어나는 것들이 언제나 당연히 내가 설명할 수 있는 것들이라고 생각했지만 그렇지 않았다. 나는 내 몸과 함께 살기는커녕, 내가 정의한 피해를 입증하는데 몸을 동원했다. 몸이 무엇을 말하는지 보다 중요했던 것은 몸의 반응이 내가 정의한 지금의 나와 얼마나 부합하고 있는지에 대한 것이었다. 그래서 몸이 구토하는 순간에도 이것이 피해의 흔적임을 주장하려 했다.

   나는 몸이 타자로써 살아온 역사를 이해하지 못하고 그래서 결국 내 몸과 함께 살 고민을 하지 않았다. 나는 그 ‘고매한’ 주체정신을 지키기 위해 의사의 말과, 병무청의 컨베이어벨트를 ‘피해’로 치환하여 몸에 전가 시켰다. 정신은 언제나 나의 판단을 하지만, 몸은 언제나 상처가 생기고, 흔적이 묻기 때문에 혐오해야 하는 것으로 이야기했다. 모든 것이 ‘내 뜻과 같지 않다’고 이야기하는 순간들 마다 내 몸을 부정하고, 내몰았다. 그렇게 나는 ‘나’를 설명하기 위해 몸의 언어들을 동원했다. 의사의 말을 폭력적인 말로 설명하기 위해 내 몸의 구토를 동원했고, 병무청의 무자비한 신체검열을 설명하기 위해 내 몸에 찾아온 불면증을 동원했다. 그래서 내 몸의 언어와 기억들은 언제나 설명되지 않는 잉여로만 남겨졌다.

  그렇기 때문에 내 몸과 함께 살 고민을 하기 위해서는 몸에게 “괜찮다”라고 말하는 것에 그쳐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나는 쉽게 내 몸을 긍정한답시고, 의사가 뭐라고 말했어도, 병무청에서 온갖 기계들이 나의 신체등급을 매기기 위해 어떻게 달려들었어도 ‘괜찮다’고 말했지만 몸은 ‘괜찮지가’ 않았다. 몸은 더 말하고 있었다. 그것은 단지 내가 내 몸을 좀 더 긍정해야 한다는 맥락과는 또 다른 이야기들을 만들었다. 나는 몸의 이야기를 좀 더 온전히 드러냄으로써, 이제껏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들과 다시 마주했다. 장애에 대한 차별이, 군대의 가부장적 언어가 단지 나의 외부에 존재하는 ‘어떤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내 몸에 간섭되고 경계지워지는 구체적인 삶의 공간이라는 것과 다시 마주했다. 나는 몸이 괜찮지 않을뿐더러, 몸에게 괜찮다고 말하는 것 자체가 끊임없이 몸을 타자화하고 배제하는 과정이라는 것을 다시 이야기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몸과 함께 살기 위한 고민을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몸은 내가 살아온 공간에서 일어났던 일들을 나름의 방식으로 기억하고 있었다. 내가 군대가 얼마나 폭력적인 공간인지에 대해서만 설명하던 순간들에도 몸은 명확하게 구분되지 않는, 무수한 경계들이 다시 얽혀드는 그 모든 불일치와 비틀림들을 온전히 감당하고 있었다. 몸은 단지 피해의 흔적을 기록한 일기장이 아니라, 그 공간을 함께 살아가는 나의 ‘관계’들이었다.

  때문에 일상의 공간에서 매순간 타자화되고 있는 몸의 역겨움과 애매모호함, 혼란스러움, 정의되지 않음 같은 것들에도 불구하고 왜 몸의 이야기를 다시 드러내어 이야기해야하는지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일상적으로 타자화 했던 몸, 그래서 역겹기도, 혐오스럽기도, 괴물같기도 했던 몸에게 괜찮다며 긍정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몸을 끊임없이 타자화해야함에도 불구하고 왜 몸의 이야기들을 드러내는 것이 내 삶에서 의미있는 일이며, 또 몸의 이야기들이 어떤 다른 방식의 이야기들을 가능하게 하는지 고민해야 하는 것이다.

  몸과 함께 산다는 것은 몸이 드러내는 이야기들을 포착하고 마주치기 위해서 노력하는 것이어야 한다. 몸의 경험을 설명되지 않는 비이성적이고 병리적인 것으로 이야기하지 않고, 또 그것을 ‘나’라는 주체의 언어와 일치시키기 위해 규제하고 조절하지 않아야 한다. 몸의 이야기를 그대로 드러내어 몸의 삶과 일상이 만들어내는 이야기와 역사가 존중받을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지금 이 순간에도 몸은 여전히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몸과 함께 살기 위해 노력해야 함을 잊지 않아야 한다.

by 몸 말하는, 나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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