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이 없어졌다 자료집에서> 폭식, 거식, 어떤 식으로든 나는 괴물이 아니다

출처: 연세대학교 제 22대 총여학생회 <speak-out>이 주최한
            2010 제 12회 여성제 <몸이 없어졌다> 자료집에서 

나는 괴물이 아니다.

나는 죽음을 바라지 않는다.

나는 죽음을 향하는 것이 아니다.

여성은 지독한 경련을 일으킬 만큼 자극적인 감각을 가지고 있다. 이것이 그녀를 지배하며, 그래서 자신의 상상 속에서 어떤 종류의 환영도 불러일으킬 수 있다. 히스테리성 정신착란증을 보이는 여성은 과거로 되돌아가기도 하고, 미래로 날아가기도 하여 모든 시간대를 그녀의 현재로 만든다. 이 모든 이상한 상념들은 그녀의 성에서 나온 것이다. […] 황홀감이나 환영, 예언, 계시, 도취경에 빠진 시, 그리고 히스테리, 이러한 것들보다 서로 유사한 것은 없다. […] 히스테리에 사로잡힌 여성은 지옥의 고통을 느끼기도 하고 천상의 기쁨을 누리기도 한다. 때로 나는 소름이 끼치기도 하였다. 나는 그 여성이 자신의 일부인 난폭한 짐승의 분노에 빠져있는 모습을 보았고 소리를 들었다. (Denis Diderot, 『여성에 대하여』, Frankfurt 1981, 174)

내 몸은 무엇에 대해 소화불량 상태가 된 것일까? 버스를 타러 가다가 아침에 먹은 것을 모조리 토해냈을 때 나는 거식(폭식)에 대해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내가 무엇을 쓸 수 있을까? 어쨌거나 나의 몸은 닥치는 대로 집어 삼키고 뒤집어지고 게워내고 있다. 이러한 비명소리를 간과할 수는 없다.

거식의 <조건>에 대해서 써 본 적은 있다. 배고픔과 유리된 낮, 깜깜한 자취방, 삽시간에 몰려드는 허기에 대해서. 진공청소기처럼 음식물을 흡입하던 내 혀와 식도에 대해서. 초코파이 한 통을 해치웠고 처음으로 토했고 식탁엔 아무도 없었던 밤에 대해서. 서문에서 자취방으로 가려면 거쳐야했던 5개의 편의점과 만원어치씩 구입했던 몽쉘, 캬라멜 마끼아또, 다이제, 갖가지 맛의 월드콘과 구구콘과 처음으로 토했을 때 목격한 초콜렛과 유지방 덩어리들에 대해서. 변기를 내려다보면 흡사 악귀나 연체동물 같은 형상들이…… 나는 불도 켜지 않고 냉장고 문, 찬장 문, 책상 서랍을 차례로 열어젖혔고 씹을 수 있는 것이면 아무것이든 끄집어내어 삼켰다. 샤니 호빵은 차가운 채로 삼켰고 스팸은 굽지 않고 삼켰다. 버터크림, 글래이즈드 도넛, 금지되었던 음식, 동생이 잠든 시간, 내 방에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내 눈과 동생의 눈과 신촌거리에서 나를 위아래로 훑었던 수천 개의 눈들이 이무기처럼 벽 사방에 뻗쳐있는 허공. 위장이 터질 듯이 부풀어 열기구처럼 나를 허공으로 소환했고, 위에서 내려다보면 나는 흡사 걸신이나 괴물 같은 형상이었다.

어떤 날은 별 생각 없이 쵸코칩 봉지를 뜯었다가 연쇄적으로 마치 발작처럼 다른 음식을 마구 집어먹게 된다. 가끔 거식의 의례들은 내 몸을 34-24-34의 숫자와 비하는 모든 체계와도 닮았다. 삼킨 것들을 칼로리로 수치화해보고 하루 권장섭취량인 2000kcal와 비교해보고 초과한 분량만큼 굶거나 다시 죄책감을 극대화시킨다. 거식은 질서정연하게 치러진다. 과자 한 조각을 참지 못했다는 작은 죄책감에서 비롯해서 종국에는 몸을 오도 가도 못하는 벼랑 끝까지 밀고나간다.

– “내가 폭식을 한다고 말하면 <슬퍼>?”

– “너는 어떤데?”

변기를 붙잡고 있으면 머리통이 거꾸로 솟구치는 바람에 얼굴의 모든 구멍에서 액체가 나오는 상태가 발생한다. 구토, 콧물, 눈물, 땀이 걷잡을 수 없이 흐른다. 목구멍에 넣었다 뺐다하면 손가락에까지 끈적하고 추접스러운 액체가 묻는다. 젖은 김에 엉엉 울어보기도 한다. 라면 스프나 마쉬멜로우처럼 생명이라곤 없는 식재료가 된 것 같은 느낌이다. 토사물 그 자체가 된 것 같은 느낌이다. 나는 외로웠고 슬픔, 추악함, 공포감, 들켜선 절대로 안 된다는 확신 같은 것을 느껴.

언제부터 거식이 시작되었는지를 반추해보면 그것은 성적존재로의 <인식>과 분명 관련이 있다. 대학에 입학한 일, 연애를 한 일, 내게 여성이 된다는 것은 무엇을 욕망하는가보다는 무엇에 욕망되어질 수 있는가의 문제였고 내 몸은 욕망되어지기엔 너무 뚱뚱했다. “예뻐졌네.” “살 빠졌네.” “얼굴 부었네.” 일상적으로 건네는 인사들을 거울을 볼 때마다 얼마나 자주 강렬하게 떠올리는지 상대방은 상상도 못할 것이다. 왜 나는 아름답지 않은가? 왜 나는 사랑받지 않는가? 날씬한 몸, 그래 그것이 문제임은 자명하다. 페미니즘도 거식을 멈추진 못했다. “이대로 누워있자.”고 해도 발가벗은 채로는 견딜 수 없었다. 나 자신이나 다른 사람이 이 몸을 통째로 응시하거나 긍정할 수 있다는 것을 믿을 수 없다.

스스로를 독립된 존재로 인지하는 바로 그 순간부터 지배규범은 나의 자화상을 일그러뜨려 놓았다. 나는 누구보다 아름다워지고 싶기도 했고 동시에 절대로 여성이 되고 싶지 않기도 했다. 여성이라는 성적존재가 된다는 것, 그렇게 인지되는 굴곡을 가지게 된다는 것을 견딜 수 없었다. 몸을 입고 유지하고 관리하기 위한 일련의 행위들은 곧 여성이 된다는 것을 의미했고 성폭력적 시선, 성형수술, 남성 등속과 절대 떨어질 수 없었다. 그 사이에서 나는 어떻게든 몸이라는 거대하고 오래된 물체로부터 벗어나고 싶은 마음도 간절했다. 여성으로서 날씬해지길 바라면서 동시에 몸 자체를 거부하려는 사람을 이해할 수 있는지? 세상에는 거울과 쇼윈도와 카메라가 너무 많다. 열등감이나 패배감, 몸을 가졌음을 인지할 때의 부대낌 같은 감정들이 거울에 여과 없이 비춰지고 미니홈피로 인화되곤 했다. 나는 충분히 괴로웠다.

그러나 나의 몸은 일방적으로 당하고만 있는가?

            아니다. 어떤 날엔 누구보다 맹렬하게 행하고 있다는 느낌으로 거식을 한다. 마구 먹어대거나 마구 토해낼 때, 그때만큼 나의 전체가 먹는다는 것에 대해 온전히 몰입하는 경우는 없다. 내가 궁금했던 것들은 오히려 나보다 다른 사람에 대한 것이었다. 왜 얌전하게 점심약속을 잡고 다른 사람과 식사를 하지? 나는 먹는 모습을 공유하고 싶지가 않다. 나에게 식탁은 때때로 거대한 공포와 같다. 왜 다들 토하지 않지?

모두가 몸에 대해 얘기하고 동시에 먹을 것을 권한다. 내가 보기에 이건 극악무도한 모순이다. 모두들 회식자리에서 매운 것을 먹고 친구와 케이크를 먹으며 수다를 떤다. 기본적인 사회성을 갖추려면 뭐든 먹어야 한다. 최소한 커피라도 마셔야 한다. 반면에 예뻐지려면 먹지 않아야 한다. 이러한 간극을 사용하여 위태로운 상품들이 발명된다. 단식원이나 식욕 억제제같은 노골적인 형태가 아니더라도 모두는 언제나 먹지 않는 것을 염두에 두고 먹을 것을 구매한다. 제로 칼로리 콜라나 다이어트 컵누들 같은 것들은 슈퍼에서도 쉽게 구할 수 있다. 물 두 컵을 식사 전에 마시면 적게 먹고도 포만감을 느낀다거나 초콜렛 두 조각을 먹으면 밥맛이 없어진다거나 하는 인터넷 지식들에 끊임없이 노출된다. 위를 잘라내어 음식 섭취량을 줄이는 위우회 수술을 받는 여성들을 보고 모두는 불쌍하다거나 그렇게 까지 해야 할까 라며 혀를 차지만 일상적으로 세밀하게 이뤄지는 먹을 것에 대한 통제나 요법들의 용의주도함에 대해서는 왜 그렇게 다들 무딘가? 모두들 날씬한 몸을 원하지만 먹지 않는 몸을 원하지 않는다. 태생적으로 말랐다거나 먹어도 살이 안찌는 체질은 칭송받지만 그 외에 살을 빼기 위해 굶거나 고기를 먹지 않는 여자는 외모지상주의에 포획된 속물이나 내면을 가꾸지 않는 그저 그런 여자가 된다. 모두들 거식증에 걸렸다는 모델의 앙상한 등을 보며 징그럽다고 말하지만 TV만 틀어도 볼 수 있는 얇은 다리와 신촌 거리에 즐비한 그만큼이나 마른 다리들에 대해서는 왜 아무런 이물감을 느끼지 않는가? 왜 이 전쟁터에서 모두들 그렇게도 침착한가?

거식은 그러한 모순을 가장 통렬히 인지한 몸의 비명소리다. 가장 양심적으로 여자 되기를 수행하는 몸이라면 쉴 새 없이 구역질을 한다는 것이다. 너희가 날씬한 몸을 원한다면 내가 그것이 어떻게 불가능한지를 보여주지. 몸은 짐작과는 달리 아무런 저항이나 부대낌 없이 규범에 구겨 넣어지지 않는다. 이것이 몸의 잉여이다.

히스테리가 있다. 히스테리에는 간질이나 발작, 경련, 호흡곤란, 두통, 메스꺼움 같은 신체반응이 큰 것부터 불감증이나 촉각 마비, 실어증, 기억 상실과 같은 신체반응이 작은 것, 그리고 불안정한 걷기, 생리불순과 같은 부분적인 증상들이 포함된다. 요즘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언어에서는 갑작스러운 짜증, 분노의 발작, 과대공포, 예상불가능, 거짓말, 변덕스러움 같은 증상을 히스테리컬하다고 표현한다. 그동안 히스테리의 증상은 변화해 왔지만 히스테리의 환자 노릇을 독식해온 것은 언제나 여성들이었다.

“히스테라Hystera”는 그리스어로 자궁을, “히스테리아Hysteria”는 자궁의 이동을 뜻한다. 히포크라테스는 히스테리를 “자궁에 의해 야기되는 질식”이라고 지칭하고 특히 처녀, 과부, 불임여성 등에 발생하며 아주 일반적인 최대의 여성 질병이라고 정의했다.1) 자궁의 질식이 곧 병 걸린 여성으로 치환되는 그리스 시대의 등식은 건강한 여성은 곧 임신한 어머니로 치환되던 등식의 대우로 성립했다. 기독교에서는 악마퇴치를 골자로 마녀추방 의식을 통해 히스테리를 치료하려 했고, 르네상스 시대에는 히스테리를 자궁이라는 신체기관의 병으로 진단해 의학수술로 히스테리를 치료하려 했고, 19세기 말 독일에서는 난소를 제거하거나 음핵을 불로 지져 여성의 성욕을 없애려고도 했고, 프로이트에 와서는 히스테리 치료가 남성 리비도를 여성에게서 떼어놓기 위한 정신분석의 영역으로 편입된다.

이 모든 기괴한 의술의 공통점은 히스테리 여성의 몸을 없애려는 시도라는 데서 찾을 수 있다. 정신-몸, 문명-자연, 이성-비이성의 대립항에서 언제나 여성에게 후자의 역할을 내맡기고는, 그와 동시에 남성의 논리적 언어로 설명할 수 없는 여성의 몸 언어들을 소거해버리려는 것이다. 사실 그들은 노처녀 히스테리나 주부 히스테리 언어를 비정상적인 것으로 분류하지만, 히스테리의 특징으로 여겨지는 허영심, 질투심, 신용없음과 같은 항목들은 그동안 여성을 싸잡아 비하하는 데 사용해온 여성의 보편적이고 정상적인 특징이라는 것이 성실하게 표출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여성이 지배적인 몸 규범을 가장 완벽하게 재현할 때, 그것이 히스테리가 된다.

그러므로 히스테리 환자들은 “정상적인” 여성을 재현함으로써 이러한 “정상적인” 상태가 사실은 가장 불합리하다는 것을 직시하도록 만든다. 육체에는 질서정연한 기능이랄 것이 없음을, 육체는 보편적이고 논리적인 언어에 얌전히 포획당하지 않음을 사지를 뒤틀며 증명한다. 언어가 여성의 몸에 부여해온 이상적인 몸-이미지를 파기한다. 규범과 법칙들을 혼란에 빠뜨린다. 무질서를 조성한다. ‘히스테리는 논리, 질서, 이성 등이 모두 “인공작품”임을 공표하며 그럼으로써 그것들이 가장 주장하고 싶어 하는 것, 즉 자명성을 제거한다. 어떠한 여자도 히스테리 환자처럼 그렇게 완벽하게 여자역할을 연기하지 못한다.’2)

나에겐 거식증이 있다. 히스테리가 육체를 빼앗기지 않으려는 저항이었다면 거식증은 육제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저항에 가깝다. 여성의 몸에 필연적으로 부과되는 섹슈얼리티나 이미지 같은 것에 포획당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침착하고도 냉정하게 스스로의 몸을 유기해버린다. 나는 몸이 없다. 그 몸은 나의 몸이 아니다. 너희가 먹는 몸과 날씬한 몸 모두를 원한다면 나는 그 모두를 버려주지. 이것은 규범에 연속적으로 패배하면서도 끝내 그를 따라잡으려는 감정만이 아니다. 불가능한 두 개의 몸을 강요해놓고도 시치미를 떼는 그의 뺨을 후려갈기는 일격 같은 것이다. 놀이동산이 존재하는 이유는 놀이동산 바깥의 세상이 놀이동산임을 감추기 위한 것이다. 온 세상이 몸에 대한 광기와 집착으로 가득 차 있음을, 모든 몸이 아주 낮은 소리로 구토하고 있음을, 나의 거식하는 몸은 직시하고 있다.

그러므로 나의 몸은 존재하기를 포기하지 않았다. 정신과 분리된 몸, 프로젝트화 된 몸으로 구획되기를 맹렬히 뿌리치고 무언가를 끈질기게 발화하고 있다.

몸이 말하게 한다. 몸의 말을 듣는다. 이것은 병리적이거나 추악한 형태로 나타날 수도 있다. 몸은 아프면 성실하게 생채기를 내고 열꽃을 피운다. 국가는 전쟁통에 죽은 시체들을 감추려든다. 나의 몸뚱이는 내 마지막 보루이다. 나는 끝까지 둔감해지지 않을 것이다.

– 매운 카레 먹으러 혜화동에 갈 것, 파니

2 thoughts on “<몸이 없어졌다 자료집에서> 폭식, 거식, 어떤 식으로든 나는 괴물이 아니다

  1. 자꾸 폭식을해요..제가 괴물같고 죽고만싶어요 거식증도 폭식증도 싫어요
    신경성 대식증이였다가 다시 다이어트했는데도 또 폭식이와요 죽어라 다이어트 왜했나 싶어요.. 주변에 사랑하는사람들에게 폐만 끼쳐요……저는 왜사는건가요 정말..이런데 집착하고있는 제자신이 싫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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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지금은 어떻게 살고 계시나요,,, 너무 오래된 글 이라 답을 기대하진 않지만
      저도 폭식 거식을 겪고 있는 입장이라 궁금해서 자료찾다가 이 글을 보게 되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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