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이 없어졌다 자료집에서> 거울 보기

 출처: 연세대학교 제 22대 총여학생회 <speak-out>이 주최한
            2010 제 12회 여성제 <몸이 없어졌다> 자료집에서

A: 오늘은 그리스 신화 중 나르시서스 이야기를 들려줄게.

  나르시서스는 강의 신 케피소스와 님프 리리오페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이야. 리리오페는 나르시서스를 낳고 나서 테베의 예언자 테이레시아스에게 아들이 오래 살 것인지를 물었는데, 테이레시아스는 “자기 자신을 모르면 오래 살 것”이라고 대답했대. 나르시서스의 아름다운 용모에 반해서 숱한 처녀들과 님프들이 그에게 사랑을 고백했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았어. 그런데 어느 날, 나르시서스에게 사랑을 거절당한 이들 가운데 한 명이 그 역시 똑같은 사랑의 고통을 겪게 해 달라고 빌자 복수의 여신 네메시스가 이를 들어 주었다. 산에서 사냥을 하던 나르시서스는 목이 말라 샘으로 다가갔다가 물에 비친 자신의 아름다운 모습을 사랑하게 되어 한 발짝도 떠나지 못하고 샘만 들여다보다가 결국엔 쓰러져서 죽었대. 아, 샘물에 빠져 죽었던가? 어쨌든 뭐, 죽은 거지.

B: … 정말 나르시서스는 죽어버렸어? 슬프다…

A: 응. 그렇다는데? 그러니까 오늘의 교훈은, 이런 자아도취에 너무 빠지면 안 된다는 거지.

B: 진짜? 진짜 그래? 그렇게 말고… 다르게 거울을 볼 수는 없어?

  *아래 채록된 구술사에서  “-”는 말을 길게 늘인 것을, “…”는 잠시 멈추며 망설이듯 말한 것을 의미한다. 이야기 도중 웃음이나 표정 등의 표현 및 부연 설명은 ( ) 안에 넣었다. 채록자의 말이나 웃음, 행동은 이탤릭체로 썼음을 밝힌다.

 [전략] 그러니까 그건 어느 여름 수요일 아침이었어요. 모처럼 친구랑 점심 약속이 있었거든요. 친한 친군데 걔랑 같이 밥 먹은 적은 별로 없어서 좀 들떠 있었죠. 아, 또 그 날 친구랑 같이 가기로 한 식당이 예전에 잠깐 일했던 곳 근처였거든요? 그래서 거기도 잠깐 들리려고 딱 계획을 짜놨죠. 제가 원래- 먼저 연락해서 밥 약속 잡고 이런 걸 잘 안 해서 그런 바쁜 사교적인 날이 흔치 않은데(웃음)… 여튼 그 날은 좀 많은 사람들을 만난 날이었어요.

 입을 옷을 겨우겨우 고르고 나서 딱 거울을 봤는데! 와- 그 날 진짜 한 15분 넘게 거울만 쳐다보고 있었던 거 같아요. 괜히 이런저런 표정 지어가면서. 다른 사람들처럼 뭐 머리 손질하다가 아니면 화장하다가 그런 게 아니라, 진짜 말 그대로 거울 속 저만 계속 바라보고 있었어요. (잠시 정적)

 평소에는 입을 옷 고르는 데 시간이 얼마나 걸려요?

그때그때 다른데… 평균적으로… 한 10분? 15분? 제가 꾸미는 데 그렇게 공을 많이 들이는 편은 아니에요. 그냥 자연스럽고 편하게 입는 거 좋아해요. 아, 물론 그렇다고 해서 패션에 전혀 신경을 안 쓰는 건 아니구요-. 자연스럽게 제 스타일을 말해줄 수 있는 거 있잖아요. 그런 거 좋아해요.

 그 날도 그렇게 입긴 했는데, 그래도 그 날은 옷 고르는데 한 30분 넘게 걸린 것 같아요. 오랜만에 보는 사람도 있어서 좀 신경 쓰이기도 했고. 아, 맞다! 사실 전날 밤 대충 다음날 아침에 입을 옷을 정해놨었거든요? 근데 아침에 좀 밍기적대다 보니까- 우리 엄마가 그 옷을 입고 외출해버리신 거예요! (하하!) 아, 진짜-. 그래서 입을 옷 다시 고르고 하다 보니 더 오래 걸린 것 같아요. 하여튼 그래서 결국 그날 캐러멜 색 반바지에 속이 좀 비치는 잔잔한 꽃무늬 블라우스를 입었는데요. 입고 나서 제 방 화장대 거울을 딱 봤는데, 오- 괜찮은 거예요! (웃음) (하하) 근데, 그 때 느낌이 진짜 좀… (그녀는 갑자기 진지해졌다.) (15초간 정적)

 그 때 느낌이 어땠는데요?

좀… 이상하고 묘-했어요. 내가 거울 속의 나를 보고 있는데… 거울 속에 비친 내가 ‘나’이면서도 동시에 내가 아닌 타인인 것 같은 느낌 있잖아요-. 꼭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나르시서스가 된 기분이었어요. 막… 자아도취. 그 날 제(외적인 모습)가 너무 예쁘고 멋있어 보이는 거 있죠? 으아—부끄러워. 아, 죄송해요. 진짜 부끄럽다. 지금 속으로 ‘얘 뭐야? -_-;;’ 이런 생각 드시죠?

 아니에요. 괜찮아요. 다들 가끔 자아도취에 빠질 때 있잖아요. 하하!

아우~ 그래도 그 날은 좀 달랐어요. 왜냐면- 왜냐면… (좀 작은 목소리로) 그 때 전 거울에 비친 제 모습을 보면서 잠재적인 연애 상대로도 호감이 가는 그런 감정을 느꼈거든요. 만약 밖에서 그런 사람을 봤으면 순간 ‘아, 좀 내 스타일인데? 좋은 사람일까? 꺄아~ >_<’ 하며 연애 걸고 싶은 마음이 들 것 같았어요. 이런 거… 너무 좀 이상하지 않아요? (5초간 정적) 제가 소위 “중성적”이라고 하는 외모에 끌리는 편인데- 아, 성별 상관없이요. 근데 지금 제 머리 스타일이 커트형이잖아요. 그래서… 아, 모르겠다. 여튼 저한텐 되게 특별한 경험이었는데, 부끄럽고 민망해서 다른 사람한텐 말을 못하겠더라구요.

 자신의 성정체성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까봐 다른 사람한테 말을 못하신 거예요? 그… 거울에 비친 자기(여자) 모습을 보면서 마치 타인을 향할 때처럼 연애 감정이 일었다고 얘기하면, 상대방이 “야, 그럼 너 원래 다른 여자를 보고도 그런 느낌을 느껴?” 라고 할까봐? 원치 않는 커밍아웃으로 이어질까봐 라거나…?

음… 제 주변 사람들 중 어떤 이들에게 그 때의 제 느낌을 제대로 이야기하지 못한 데에는 그 이유도 있었어요. 하지만 그게 다는 아니었던 것 같아요. 제 (양성애자) 정체성을 알고 또 굳이 “이해”라고 말할 필요도 없이 그냥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친구들에게도 이 이야기를 하기가 어려웠거든요. 그냥… 부끄럽잖아요. (수줍은 미소)

 그리고 일단 그 느낌을 말로 표현하는 거 자체가 어려웠어요. 그 때 거울 앞에 선 순간 나와 타인의 경계 자체가 되게 모호해졌고, 거울 속 나를 바라보는 내 시선 속에 ‘내가 나를 보는 시선’과 ‘타인이 나를 보는 시선’, 그리고 ‘내가 타인을 보는 시선’ 세 개가 다 한꺼번에 들어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어요. 며칠 전에 친구랑 이야기하는데- 걔가 이러더라구요. 앞에 놓인 상을 지금처럼 선명하게 반사하는 거울이 나온 이후로, 우리는 비로소 우리 자신의 시선으로 우리 몸을 볼 수 있게 된 게 아니라 사실은 타인의 시선으로 자신의 몸을 볼 수 있게 되었다고. 또, 어떤 연구자들은 우리가 현재 이미지 산업시대에 온통 거울 혹은 디카, 핸드폰 같은 거울의 변형에 둘러싸인 나르시시즘 문화 속에서 살고 있다고 하기도 하고요. 근데… 나르시시즘적인 의미에서 자기 몸을 보는 거랑, 타인의 시선으로 자기 몸을 보는 게 다른 거예요? 같은 건가? (이 때 그녀가 말을 잠시 멈춰서 나는 ‘내가 대답해야 하는 건가’ 싶어 순간 긴장했지만, 다행히 그녀는 곧 다시 말을 이어갔다.) 잘 모르겠어요. 우리가 우리의 몸을 육체자본으로 여기면서 우리의 몸을 외모를 중심으로 기획하고 통제하려 들 때- 내 몸에 대한 “나”의 욕망과 타인이 내 몸에 대해 간섭하는 근거가 되는 욕망, 그러니까… 소위 사회적으로 구성된 욕망을 어떻게 완전히 철저하게 구분할 수 있어요? 이런 맥락에서는 타인의 시선과 나르시시즘적인 시선 이 두 개가 절대로 서로 모순되는 의미가 아닌 것 같아요.

에휴… 이렇게 뒤범벅된 몸인데, 거기다가 그 날 아침엔 내가 타인을 보는듯한 느낌까지 더해졌으니- 그 날 제가 얼마나 멍-했겠어요. 아, 아니다. 멍했다기보다는 묘-했죠. 그 느낌이. 아, 근데 좀 재밌는 게- 그 때 전 제가 제 몸을 타자화하고 있다는 생각은 별로 안 들었어요. 마치 타인을 보는 듯이 끌리는 마음을 가지고 거울 속 제 모습을 보긴 했지만.

 네? (나는 그녀의 말이 잘 이해되지 않아 다시 물어야 했다.)

음- 그러니까… ‘타자화’라는 건 자아 혹은 주체가 어떤 ‘타자’를 만들어내고 끊임없이 그 타자를 배제하고 또 (부정적으로) 정의함으로써 자신의 정체성을 형성해가는 뭐 그런 과정이잖아요? 이성을 가진 ‘주체’가 몸을 타자화하고, 자기 몸에 대해서 소유권, 통제권을 주장하고, 막… 몸을 자기 맘대로 기획할 수 있다고 여기면서 성형외과에서 “견적(=성형비용)” 뽑아보고 이런 상황에선 몸/정신 이분법에서 타자화된 몸의 위치에 대해 별 의문이 안 들긴 하는데… 모든 사람이 항상 자기 몸을 타자화하지는 않잖아요. 그 맥락에 따라 다르고… 아, 어쩌다 보니 말이 너무 길어졌네요. 왜 이야기가 막 이렇게까지 흘렀지? 어쨌거나, 그 날 거울 앞에서 전 설레면서도 편안했어요. 거울 속 나를 ‘타인을 보듯이’ 본 거랑 ‘타자화하면서’ 본 건, 말장난 같지만 서로 다른 것 같아요. 전 그냥 그 때… 제 몸이 제 몸을 본 것 같은 느낌이었어요. 그 때 거울을 보고 있던 내 시선엔 아까 말했던 세 가지 시선(내가 나를 보는 시선/ 타인이 나를 보는 시선/ 내가 타인을 보는 시선)이 정말 역설적이게도, 조화를 이루고 있었거든요. 세 가지 빛이 거울 속 내 몸을 관통하는 것 같은? 그리고 또 그 거울에서 반사되어서 거울 앞에 선 내 진짜 몸도 관통하는 것 같은? 그런 느낌이었어요. 세 가지 시선이 뒤죽박죽 모두 공존한다는 걸 알지만… 그렇게 어지럽진 않았어요. 그냥 그렇다고 받아들였거든요. 그냥 그 사실을 내 몸은 조용히 인정하고 있는 것 같았어요. 그… 다양한 종류의 시선들이 모두 겹치고 또 만나는 곳. 그게 몸인 것 같아요. 나중에 내 몸이 또 그 날처럼 어떤 특별한 경험을 하면… 또 그 땐 생각이 바뀔지도 모르겠지만요. (웃음)

-구술자: 조금 쑥스러워하면서도 이야기를 잘 해주었던 타라(Tara)

-채록자: 조금 부끄러워하면서도 이야기를 잘 들었던 타라(Ta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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