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들 간의 스킨쉽을 어떻게 해석하느냐, 해석당하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나이대가 크게 차이나지 않는, 겉으로 보기에) 이성간의 스킨쉽 대부분은 매우 쉽게 에로틱한 영역에 빨려들어간다.

반면 동성간의 스킨쉽은 어떤 방식의, 누구에 의해 일어나는 스킨쉽이냐에 따라 다른 해석들이 경합하기도 한다.

군대를 오는 스킨쉽을 좋아하는 게이들에게 팁을 주자면,

1. 일단 남성간의 스킨쉽이 어떻게 해석되는지를 파악해야 한다.

남성들간의 가장 쉽게 용납되는 스킨쉽의 종류에는 어깨동무(긴 시간은 무리), 뒤에서 한번 풀어보라며 꽉 껴안기, 주물러주기, 간지럽히기, 손아귀 세게 잡기, 서로 레슬링을 하며 뒹굴기 정도가 있다. 장난의 맥락에서 통용되는 스킨쉽들이다. 장난과 괴롭힘의 아슬한 경계에서 “공격”의 의미로 성기를 친다거나 뽀뽀를 한다거나 하기도 한다.(때리고 도망가는 거랑 비슷하다.)

그 다음으로 사람에 따라 살짝 긴장을 일으킬 수는 있지만 이상하게 쳐다보지 않을 만한 스킨쉽으로 팔짱끼기, 어깨에 머리 기대기, 손잡기, 엉덩이 찰싹 때리기, 머리쓰다듬어 주기 정도가 있다. 대부분 긴 시간은 무리다. 치고 빠지기를 자연스럽게 해야 된다.

마지막으로 상대를 잘 골라가며 해야되는 스킨쉽으로 주변에서 조금 이상하게 볼 수 있다. 오랜시간 껴안고 있다거나, 이부자리하고 누워 있는데 위에서 덥치기, 살 만지작만지작 거리기.

이보다 수위가 높은 것들은 다루지 않겠어요.

2. 계급관계, 권력관계에 대한 자각이 필요하다.

후임이 선임에게 하는 말은 진실할 수가 없다. 선임이 듣길 원하는 말만 해야 하기 때문이다. 워낙에 권력관계가 계급에 따라 철저한 곳이다 보니. 선임에겐 장난이 후임에겐 폭력이 될 수 있다. 후임은 싫어도 싫다고 못하고 강제로 웃으면서 놀아줘야 하니까. 그렇기에 후임에게 하는 스킨쉽은 당신도 모르는 사이에 성폭력이 될 수 있다. 개인이 아무리 동등한 관계를 후임과 만드려고 해도 군대 시스템의 영향을 받기 때문에 쉽지 않다. 하지만 동기와는 권력관계 없이 친구가 될 수 있다. 장난이 장난일 수 있다. 선임에게 하는 스킨쉽도 상대방의 의사를 쉽게 알 수 있다. 불편하다면 곧바로 “꺼져!”라고 할 거다.

3. 커밍아웃은 스킨쉽의 해석을 힘들게 한다.

위에서 말한 대부분의 스킨쉽은 왠만해서 (진지하게) ‘동성애’를 떠오르게 하지 않는다. 동성애는 불편함(또는 두려움)을 불러온다. 알아서 자기 편한 대로 해석한다. 즉 모든 종류의 남성간 스킨쉽은 둘다 이성애자라는 가정하에서만 이해되는 범위에 놓인다. 워낙에 이성애중심주의가 쩌는 이 사회에서 “게이의 스킨쉽”은 매우 쉽게 ‘변태’의 영역에 쳐박힌다. 커밍아웃을 하고도 대놓고 멀리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그 전에 하던 스킨쉽을 그리 크게 거부하진 않을 거다. 그렇지만 오묘한 긴장이 새로 자리하게 될 거다. 그리고 아마 그 긴장을 게이가 좀 더 신경쓰게 될 것이다.  ‘어깨동무 이 정도하는 건 별로 거부감을 드러내지 않군.’ ‘뒤에서 껴앉는 건 조금 무리겠지? 몸이 경직될지 몰라.’ ‘얘가 이제 나한테는 (스킨쉽을 포함한) 장난을 안 치네.’ 등등.  사람에 따라, 분위기에 따라 새롭게 잡히는(또는 계속 변하는) 스킨쉽 해석의 경계가 혼란스럽다. 


요즘 스킨쉽이 완전 고프다.

군대는 워낙에 권력관계가 쩌는데, 그런데서 쉽게 친해지지 못하는 나에게 불리하다. 게다가 난 서로 치고 박으며 장난치는 ‘남성적인’ 놀이문화에 익숙하지 못해서 불리하다. 스킨쉽을 하기가 불리하다. 그래도 한명 있다. 나보다 선임인데 스킨쉽을 좋아해서 어깨도 기대고, 팔짱도 끼고 그런다. 자주 볼 수 없어서 문제지. (자주봐도 문제다. 아마 서서히 ‘사랑의 구렁텅이’에 빠져 허우적 댈 테니까.)

서로 터놓고 이야기하는 후임 한명이랑도 스킨쉽을 하고 싶은데, 이 아이는 호모포비아가 조금 있다. 커밍아웃을 한 이후로 내가 내 스킨쉽의 의도를 파악하려고 무척 애쓴다. 난 주로 뒤에서 꼭 껴안고 싶을 때가 많다.(날 먼저 안아주진 않아서 일까?) 그 압박감, 따뜻함이 편안하다. 근데 이게 성욕인 걸까? 아님 그냥 친밀감의 표현인 걸까? 여자친구들이랑도 자주 껴안고 그걸 좋아하지만 (맘에 드는) 남자를 껴안을 때 더 좋긴 하다. 근데 그 감정의 차이가 싹뚝 잘려있지는 않고 이어져 있다. 이 친구를 안고 싶은 건 어디쯤 인 걸까? 100%친밀감이면 괜찮고, 성욕 충족의도가 조금이라도 있으면 하면 안되는 걸까? 이 친구는 어떤식으로 받아들일까? 자신이 성욕 충족의 대상이 되었다고 느낄까? 너무 길게 ‘느끼는 듯이’ 안고 있지만 않으면 괜찮은 걸까? 

나”만” 이런 고민을 하게 만드는게 이성애중심주의다. 나”만”에서 짜증나기도 하지만 이런 고민 자체는 재밌다. 완전 변태 같다.

사실 누가 좀 덮쳐줬으면 좋겠다. 근데 나이가 많고 내가 워낙에 만만한 포스를 안 풍기는 지라 그렇게 과감한 자는 없다. 아참. 내가 그냥 별로 안 땡길 수도 있구나. ㅡㅡ;

3 thoughts on “남성들 간의 스킨쉽을 어떻게 해석하느냐, 해석당하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1. 한국에서 게이 코드랑 버디 코드는 행간을 읽어내기가 너무 힘들어. 같은 맥락인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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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재밌어. ㅋㅋㅋㅋㅋ
    근데 군대에서 커밍한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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