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하는 여자

음악하는 여자가 되고 싶다.

안타깝게도 뻔한 모습이지만,
통이 넓은 치마 아래로 가는 발목이 보이고, 길고 하얀 손가락이 기타와 잘 어울리는 모습이면 좋겠다.

그런 발목과 손가락은 갖지 못했고, 아마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갑자기 발목 뼈가 가늘어지고 손가락이 성장하는 일은 없겠지.

음치라서 다행이다.

음치가 아니었더라면 나는 음악을 했을 텐데,

음악을 하면서도 내가 그리는 음악하는 여자가 되지 못한다면 지금보다 더 슬플 것 같다.

생득적이랄까, 어떤 이름이 적당할지는 모르겠지만 근본적인 종류의 불가능성을 안고 있다는 것은 때로 좋은 일이다.

하지 않는 것, 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좋은 핑계가 되니까 말이다.

애초에 음악을 할 수 없으니까, 음악하는 사람들이 해야 하는 수많은 고민들에서 나는 빗겨서 있다.

정치적으로 올바른 예술에 대해서 고민하지 않아도 되고, 음악인을 ‘볼거리’로 환원시켜 버리는 사회에 노출되지 않아도 된다.

그렇게 생각하면, 남자의 몸을 갖고 태어난 것도 좋은 일일 수도 있다.

여성에게 가해지는 사회적 차별과 편견에서 빗겨선 채, 담담히 그것을 비판하고 한편으로 담담히 여성이기를 꿈꿀 수 있으니까.

분명히 편한 일이지만, 그것 때문에 슬프다. 편하다는 것도, 편할 수 있다는 것도, 때로 그것을 누리고 있다는 것도.

다행인 것은, 담담할 수 있음에도 나는 담담하게 살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분노하고, 갈망하고, 온전한 감정들을 느끼고 있다는 점이다.

음치가 아니었더라면, 그 분노와 갈망을 어떤 가락과 어떤 소리로 노래해야 할지 고민해야 했겠지만, 그러지 않아도 되어서 다행이다.

나는 음치니까.

 

 

 

 

늦게 다는 덧.

글 올리고 나서 길을 걷다가 생각난 건데, 내가 꿈꾸던 음악하는 여자는 저런 모습이 아니었다.

요즘 듣는 시와랑 오지은 때문에 생긴 일시적인 이미지였던 거다.

내가 원래 동경하고 있던 외양은, 방실이에 훨씬 가깝다. 커다란 몸집에, 글램 룩…이 잘 어울리고 풍부한 성량을 지닌 사람을 늘 꿈꿨다.

헤어 스프레이의 모터마우스 메이벨이나 드림걸즈의 에디나 뭐 그런 모습.

아흑, 오염됐구낫.

5 thoughts on “음악하는 여자

  1. 음치 1인 공감.. ㅎㅎㅎㅎㅎ
    아…음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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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어울릴 것 같아요! 헤어 스프레이의 모터 마우스 하니까 확 오네요. 헤어 스프레이는 뮤지컬로 직접 봤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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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하지만 음치라는 거…………………………..ㅋㅋㅋㅋ

  3. 통이 넓은 치마 아래로 가는 발목이 보이고, 길고 하얀 손가락이 기타와 잘 어울리는 모습이면 좋겠다.<<난 진짜 이랬음 좋겠어요ㅠ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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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그것도 나쁘지 않지만, 전 포스 있는 모습이 더 좋아요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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