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갈리아를 생각하며

한 달쯤 전, 트위터 부계정에다 “#나는페미니스트다 #나는메갈이다”라는 글을 올렸다. 메갈리아4에서 후원용으로 판매한 티셔츠를 입었다가 게임 작업에서 배제된 한 성우의 일이 알려지고 있을 때쯤이었을 것이다. “#나는메갈이다” 혹은 “내가메갈이다”라는 트윗이 여기저기서 올라오고 있을 때쯤이었을 것이다.
당연히, 자기 사상의 표현이 일자리를 잃을 이유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서, 그리고 그런 불의를 지적하는 사람들에게 연대하는 의미에서 한 트윗이었다. 그러나 곧, 나는 마음이 복잡해졌다. 지난 해 “#나는페미니스트입니다”라는 해시태그가 유행했을 때에도, “#JesuisCharlie”라는 해시태그가 유행했을 때에도 나는 그런 트윗을 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생각해 보기로 했다.
“#나는페미니스트입니다”의 물결에 함께 하지 않은 것은 ― 심지어 그것이 의미 있는 운동이라고 생각하면서도 함께 하지 않은 것은, 그 트윗을 한 이들 중 많은 수의 페미니즘이 양성평등 정도에 머물러 있다고 여겼기 때문이었다. 나의 것과 다른 페미니즘이 물결을 이루고 있었고, 같은 선언으로 내 것이 그것에 섞여 드는 것은 싫었다. 그래서 하지 않았다. “#JesuisCharlie”에 함께 하지 않은 것은 조금 더 복잡한 심경 때문이었지만 기본적으로는 같았다. 테러의 문제에 있어서 누구를 어떻게 비판할 것인가 하는 고민, 그리고 《샤를리 에브도》의 논조에 대한 고민이 있었고, 그런 것들을 드러내지 못한 채 언론의 자유, 생명의 소중함 같은 것으로 읽히기 쉬운 트윗을 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하지 않았다.
나는 대체 왜 “#나는메갈이다”라고, 결의에 찬 것도 아니고 사실도 아닌 말을 한 것일까. 메갈리아를 좋아하지도 않으면서 ― 여러 가지 (이렇게 써도 좋다면) 자정 노력이 있기는 했지만, 워마드는 말할 것도 없이 메갈리아에도 비수술트랜스젠더여성인 내가 있을 자리는 많지 않아 보였다 ― 말이다. 나는 그것이 연대라기보다는 일종의 동정심이라고 결론 내렸다. 이제 막 움트기 시작한 어떤 운동이, 비록 그것이 내가 지금 있는 곳과는 다른 곳에 있다고는 해도 어쨌거나 운동인 한에서, 억압 받는 모습을 보는 것이 안타까워서라고 결론 내렸다.
예전에도 이런 동력으로 무언가를 한 적이 있었다. 바로 2008년 촛불집회다. 꽤 긴 시간을, 잠도 제대로 못 자다시피 하면서 매일 광화문을 향했었다. 그 즈음 채식을 시작했으므로 광우병 쇠고기는 나의 이슈가 아니었고, 정부의 막무가내식 집행은 늘 있는 일이었으므로 유독 열심히 나갈 만한 일도 아니었다. 하지만 집회라고는 와 본적도 없던 이들이 매일 같이 거리로 나와 경찰에게 맞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안 갈 수가 없었다. 그 당시에 나는 내가 동정심으로 움직이고 있음을 잘 알고 있었다.
동정이니 연민이니 하는 것들에 대해서 이런저런 논의들이 많지만, 사람이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동정심으로라도 (또 한 번, 이렇게 써도 좋다면) 좋은 일을 하는 것이 나쁘지는 않을 것이다. 문제는 이것이 내 일이라는 점이다. 나는 마저 고민하게 된다. 나는 촛불집회에 나온 사람들을, 메갈리아 활동을 하는 사람들을 (혹은 소위 트위터 페미니스트들을), 무엇이라고 생각하고 있는가.
「동지라 불러본 적 없다」라는 글을 쓴 적이 있다. 정치적으로, 좋게 말하면 뾰족해져 갈수록, 나쁘게 말하면 편협해져 갈수록, 뜻을 나눌 동지를 찾을 수 없다는 푸념이었다. 동시에 나는 언제나, 내가 연대한 노동자들보다 높은 자리에 있었다는 고백이었다. 여기저기 다니며 많은 사람들을 만났던 대학에서의 운동을 마친 이후, 이따금 글이나 쓰며 몇 년을 살다가 마주한 메갈리아라는 운동은 내게 그 감정을 다시금 떠오르게 한다. 당시의 고민은 지금과는 결이 조금 달랐던 것 같다. 그때 생각했던 것은 대학의 다른 단체에서 활동하는 이들 혹은 ‘연대’를 나갔던 현장의 노동자들, 철거민들, 농민들, 장애인들이었다. 나와 같은 지위를 가지고서도 다른 시점에 있는 다른 단체 활동가들이 마음에 들지 않았고, (어쨌거나) 엘리트로서, 당사자가 아니라 연대자로서, 현장에 있는 데에서 오는 고민들이 있었다. 지금은, 이 두 가지 고민이 하나로 얽혀 있다.
내가 스스로를 활동가로 여기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메갈리언들이 스스로의 제 1 정체성을 메갈리언으로 삼지는 아마 않을 것이다. 그러나 어떤 의미에서든 그들이 운동을 하고 있다고 한다면, 나는 그들의 시점이 나와 다름에 불만을 느낀다. 트랜스젠더퀴어 배제적인 발화들에 아픔이나 분노 이전에 답답함을 느낀다. 그러나 그들은, 내가 싫어했던 다른 학생 단체 활동가들처럼, 나와 같은 지위에 있지는 않다. 내가 대학에서 쉽게 배울 수 있었던 것들을 메갈리아를 통해서 처음으로 배우게 된 이들, 내가 대학에서 안전하게 말할 수 있었던 것들을 메갈리아를 통해서 처음으로 말하게 된 이들이 섞여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그들을 그저 싫어할 수는 없다. 답답함과 함께, 순전히 엘리트로서 갖는 동정심이, 조금씩 스며나온다.
아마도 나는, “#내가메갈이다”가 필요한 선언이라고 생각한다. 페미니즘의 확장을 위해서도, 사상 검증에의 반대를 위해서도, 직간접적인 피해자들을 지지하기 위해서도 말이다. 그럼에도 그러한 선언을 하기 저어되는 것은 내가 메갈리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메갈리아에서 워마드까지의 흐름과 그 가지들에서 발견되는 이성애중심주의의 흔적들에, 장애인 비하의 흔적들에, 불편함을 느끼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보는 이 없는 곳에나마, 그렇게 선언한 것은 약간의 동정심 때문이었을 것이다.
동정심으로 좋은 일을 해도 좋지만, 이것이 내 일이기에 문제가 된다고 썼다. 거창하게 말하자면 나는 이중의 고민을 하고 있다. 사회적 약자 ― 여기서는 일차적으로 여성을, 이차적으로 메갈리언 여성을 가리키는 듯하다 ― 를 동정하는 것이 옳은 일일 수 있는가? (역사가 단선적이지는 않아도 대강의 방향은 있다고 한다면) 서로 다른 시점에 있어 온전한 연대가 불가능하다고 할 때 운동은 어떻게 가능할 것인가? 내 고민은 이 두 가지 질문으로 수렴된다. 표면상 남성으로 살고 있기에, 여성혐오의 문제를 직접적으로 겪지 않는 듯 보이는 삶을 살고 있기에, 이러한 질문들이 페미니즘 운동과 결합되면 내 운동의 자격을 의심하는 데에까지 고민은 나아간다.
내가 충분히 훌륭한 운동가라면, 이 글의 마지막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대가 어떻게 가능할지에 대한 답이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아무래도, 나는 좋은 운동가는 못 되는 모양이다. 지금 내가 아는 선택지는 두 가지다. 내 삶과 내 운동을 접어두고 당장의 급한, 그리고 큰 운동에 대한 지지를 표명하는 것. 혹은 성에 차지 않는 모든 운동을 비판하며 좋게 말하면 선구자, 나쁘게 말하면 엘리트 전위로서의 위치를 자임하는 것. 이 둘 사이의 간극을 해소할 만한 길을 아는, 훌륭한 운동가는 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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