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갈은 종북이다

메갈은 종북이다 by 수진

메갈리아(이하 메갈)는 진보 개저씨들의 종북이다. 모든 것을 후려칠 수 있는 도깨비 방망이. 득템 하신 거 축하하지만, 그 아이템은 잡템이다.

메갈과 워마드의 분화 과정이나 지금의 메갈이 어떠한지 알지도 못한다. 알 필요가 없다. 티셔츠 수익금의 용처나 현재 집행 상황도 알 필요가 없다. 페북에도 메갈(4)이 있고 다음에는 워마드라 불리는 메갈이 있기 때문이다. 메갈 비슷한 논리를 펴는 개인도 메갈이다. 메갈의 단어를 하나만 써도 메갈이다. 워마드를 캡처 떠도 호칭은 메갈이다. 저기 북쪽 어딘가에 메갈이라는 거대한 괴뢰집단의 지령을 받았기 때문이다그러니 모두 묶어 메갈이다. 이것에 반론하는 자 역시 메갈이다. 나 역시 메갈일 터이다.

폭력의 평가

많은 이들이 메갈을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이유 중 매우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폭력적이라는 것이다. 우리 사회가 이렇게 비폭력을 추구하다니 놀랍고도 놀랍도다. 우리가 배우는 역사는 폭력의 역사이다. 배제해야 할, 그리고 기념해야 할 역사적 사건 대부분은 폭력적이다. 어떤 폭력은 나쁘다고 배우고 어떤 폭력은 추앙해야 한다고 배운다. 우리는 폭력을 평가한다. 현재 메갈이 슈퍼빌런이 되기까지 메갈의 폭력은 제대로 평가당했는가? 우리는 어떤 기준으로 폭력을 평가해 왔으며 그 기준은 메갈의 폭력을 평가할 때에도 적용되었는가?

메갈은 흔히 일간베스트(이하 일베)와 동급의 위치에 놓인다. 일베 역시 슈퍼빌런이다. 일베는 2010년 무렵에 생겨났다. 2011년에 누군가 유머사이트라며 보여준 일베를 접한 내 개인적인 평가는 그때의 일베나 지금의 일베는 근본적으로 같다는 것이다. 초창기 일베의 행동은 젊은 극우들의 ‘일탈’일 뿐이었다. 2012년에는 일베 안팎에서 비판을 받는 사건들도 꽤 있었다. 발가벗은 여동생 몰카를 인증하고 발언의 수위도 점점 높아져만 갔다. 그래도 아직 그들은 악마가 아니었다. 진중권은 이 시기 일베 회원과 토론도 벌였다.

Chin-debate

2013년 무렵부터 분석이 시작된다. 현재 반 메갈 전도사인 박가분은 이 시기 <일베의 사상>을 썼다. 269페이지나 되는 이 책에는 인터넷 커뮤니티 문화부터 논객, 촛불시위, 나꼼수 등 일베의 탄생 배경에서 그들의 비뚤어진 사상이 어떻게 생겨났고 우리 세대의 한계는 무엇이며 사회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 정말 꼼꼼하게도 많은 것들이 쓰여있다. 논문도 나오기 시작했으며, 중앙대 신문은 일베를 쉽게 정의하는 것에 대해 경계를 하기도 했다. 그들의 폭력은 조심스럽게 분석되었고, 심지어는 ‘우리 안의 일베’를 찾아 자신의 슈퍼 에고 깊숙한 곳을 탐문하기까지 했다. 무엇이 그들을 만들었고 내 잘못은 무엇이었는지 진지 빨고 고민했다.

그들이 절대 악이 된 것은 2014년 세월호가 결정적이었다. 폭식투쟁과 어묵 드립 때문이다. 그 즈음에 만물 일베설이라는 단어가 널리 쓰이게 되었다. 일베의 행동을 일반화하는 현상에 이름까지 붙인 것이다. 찌질이 집단이 아닌 절대 악으로의 평가는 일베 탄생 이후 한참이 지난 후였다. 그동안 일베의 폭력은 평가를 받았고 그 평가들이 쌓여 현재 일베의 이미지가 만들어졌다. 우리는 일베의 폭력마저 공정한 평가의 과정을 거치게 해주었고, 그 과정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

우리는 늘 폭력을 평가한다. 폭력적이라 나쁜 폭력은 죄 없는 민간인을 대량으로 살해할 경우에나 그러하다. 똑같이 불을 질러도 누군 방화범이고 누군 민주투사가 된다. 경찰 버스를 넘어뜨리고 고추 낙서를 하더라도 촛불집회를 싸잡아 폭력적이라 폄훼하는 것은 생각하기 싫다는 뜻일 뿐이다. 실제로 집회에서 일어난 폭력이라 할지라도 그것이 국가폭력을 향한 저항폭력이라는 점에서 쉴드를 치기도 한다. ‘집회가 좀 폭력적이면 어때! 쫄지 마! ㅅㅂ!’라는 주장도 힘을 가진다. 말콤엑스의 운동은 폭력적이었다. 욕을 입에 달고 사셨다. 폭동을 선동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는 발언도 수없이 했다. 백인은 악마라 했고 미국 흑인들에게 아무것도 하지 않은 히틀러와 스탈린이 최고의 백인이라 했다. 하지만 말콤엑스나 일베나 그놈이 그놈이라 하지 않는다. 폭력은 폭력적이기에 나쁜 것이 아니다. 그 폭력의 이유가 가당치 않을 때 그 폭력은 나쁜 폭력이 된다.

폭력적인 광주 시민군

국가폭력을 향한 저항폭력

메갈의 폭력

작년 이맘때 등장한 메갈은 등장과 동시에 악마가 되었다. 폭력적인 언어를 사용하기 때문이란다. 폭력적인 어휘를 만들어 사용하면 그 텍스트는 폭력적일까? 박가분의 <정말로 메갈리아의 혐오발언은 ‘일부’의 문제일까>를 비판한 쉭릯님의 <박가분 선생님의 초월자적 면모와 정보검색론의 혁신을 찬탄하며>에 따르면 일베를 그렇게 애정 하며 분석한 박가분은 메갈리아에 대해서는 손쉬운 방법론을 택한다. 가방끈이 짧아 양적 분석은 꿈도 못 꾸는 나 같은 사람에게는 혁신적이다. 그의 방법론을 사용하여 검색어 한남충 site:megalian.com으로 검색한 결과의 첫 번째 페이지에 실린 게시물들을 클릭하여 살펴보겠다. 박가분의 말대로라면 이 게시물들은 모두 근거 없는 남성혐오가 표현되어야 한다.

캐나다에 있는 내 검색 결과는 이러하다. (1) 한남충과 만나 어이없는 일을 겪은 이야기, (2) 아빠라는 인간에게 폭행당한 이야기, (3) 워마드의 한남충 만화, (4) 예능 프로 스크랩, (5) 한남충 조롱, (6) 아빠라는 인간이 여자 끼고 술 마시다 걸렸다는 이야기, (7) 뉴스 댓글 스크랩, (8) 뉴스 댓글 스크랩, (9) 한남충 조롱(자작 만화), (10) 위안부가 자발적이었다며 피케팅 하는 아저씨 사진

댓글 스크랩이란 이런 것을 올리고 한남충이라 욕하는 것을 뜻한다.

댓글 스크랩이란 이런 것을 올리고 한남충이라 욕하는 것을 뜻한다.

세 개의 경험담과 네 개의 스크랩과 세 개의 현상 비판 및 조롱으로 나뉜다. 실체적 대상이 불분명한 것(만화 등)을 모두 ‘나쁜 폭력’으로 분류해도 70%가 이유 있는 폭력이다. 내가 접한 메갈 발 게시물의 많은 비율 역시 스크랩과 자신이 겪은 여성혐오를 말하는 것이었다. 어떤 분께서 최근에 올린 페이스북 포스팅을 보았다. 그분이 메갈리아에 매료되었던 건 한 게시물 때문이었단다. 성폭행 피해자가 쓴 그 글은 ‘메갈에는 내 이야기를 해도 도리어 날 욕하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었다. 다른 곳에서는 항상 2차 가해를 받았지만 메갈에서는 그를 위로하고 가해자를 욕해줬단다. 물론 여기에도 가해자를 까면서 그 한남충 재기시켜라 등의 ‘폭력적인 어휘’를 사용했을 것이다.

또 많은 비율을 차지하는 것이 소위 미러링 게시물. 원본이 존재하는 패러디 소설이다. 이것들은 열심히 캡처 당해 돌아다니며 메갈을 비난하는 근거로 활용된다. ‘좆린이’ 게시물을 올린 사람은 신상이 털리고 문자로 메신저로 온갖 쌍욕을 다 먹었는데, 그 자신이 아동 성폭력 피해자였다. 자신을 괴롭혀온, 현실에서 유통되고 힘을 가진 로린이라는 단어는 건재하지만, 자신이 좆린이라는 가상의 단어를 만들자 다들 정의봉을 깎아 들고 마녀사냥을 나섰다고 한다. 방파제에서 한남을 밀어 죽였는데 안 걸렸다는 게시물은 일베에 올라온 여성을 죽이고 방파제에 던졌는데 안 걸렸다는 게시물을 미러링 한 것이었는데, 경찰은 해당 유저에 대해 즉각적으로 수사를 시작했고 일베는 아무 일 없었다.

메갈이 비판 당하는 또 다른 이유 중 하나는 소수자 혐오이다. 팟캐스트 <이이제이>에서는 이 점을 들며메갈의 실체를 알라한다. 여성혐오가 철철 넘치던 <시사대담>의 헌정방송을 자임하는 그들의 낮은 수준을 잠시 참고 알아보자. 메갈 초기, 소수자 혐오가 논란이 되자 메갈은 공지를 올려소수자 혐오 금지. 싫으면 중이 떠나셈.이라 말했고, 그래서 떠난 중들이 워마드이다. 그러니 소수자 혐오를 이야기하며 메갈을 언급하는 것은 정의당도 NL이란 이야기나 다름없다. 6.25 및 베트남 참전군인 비하를 박가분 메소드로 살펴본 결과는 한국군 위안부 등에 대한 비판이 대부분임을 알 수 있다. ‘6.25 메갈’ 검색어로 이미지 검색을 했을 때 나오는 캡처 이미지는 전부 워마드이다. 그래도 이것은 마법의 키워드, 메갈이다. 익숙한 낙인 찍기다.

물론 메갈에는 밑도 끝도 없는 욕설들도 많다. 특정인을 향한 명예훼손도 발생했다. 난 메갈의 모든 폭력이 옳은가 그른가를 평가하는 것이 아니다. 메갈의 폭력성이 다른 수많은 폭력과 동등한 수준의 공정한 평가의 과정을 거쳤는가를 묻는 것이다. 그 폭력을 평가하는 시선이 너무나 폭력적이라는 것이다. 여성의 모든 특질이 그러하듯, 메갈이라는 폭력도 품평의 대상일 뿐이었다.

남혐은 없다

메갈을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또 다른 입장은 ‘난 여혐도 싫고 남혐도 싫다’이다. 팟캐스트 <신넘버쓰리>의 남태우 씨나 여러 진보적 매체의 기고들이 그러하다. 모든 혐오는 나쁘니 싫다는 것이다. 그 지점에서 사고를 멈추기를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남혐이란 무엇인가? 그 이전에 혐오란 무엇인가?

남혐에 대한 우려를 표하는 의견을 접할 때 내 생각은 이렇다. ‘아… 증말… 혐오 당해본 적도 없는 유리 심장들이 혐오 걱정하고 앉아 있네’. 혐오는 단순히 듣기 싫은 이야기나 욕설을 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혐오를 경계해야 하는 이유는 상대적 강자로부터 소수자를 지키기 위함이다. 소수자들은 구조적 착취나 부당한 폭력에 노출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며 이는 지금도 실재하기 때문이다.

인종혐오, 동성애혐오, 트랜스혐오, 장애인혐오 등 혐오를 붙여 만든 합성명사들의 앞부분은 모두 소수자 집단이다. 아무 단어에 혐오를 붙인다고 의미가 형성되는 것이 아니다. 아무리 정치인과 재벌을 싫어하는 감정이 넘치더라도 정치인혐오, 재벌혐오란 말을 만들어내지 않는다. 상대를 비판 혹은 비난하는 것이 혐오라 정의한다면 <나꼼수>는 혐오를 조장하는 방송이었고 민주화운동도 혐오에 기반을 둔 활동이었다. 어떤 정치적 의견에 반대한다면 다 혐오가 될 것이다. 혐오는 그런 게 아니다. 다수 집단의 언어와 사고가 소수 집단이 마땅히 누려야 할 이익을 부당하게 침해할 때 그 사고와 언어는 혐오라는 이름을 얻게 되고 무조건 비판받아야 마땅한 폭력이 되는 것이다.

남혐이란 수십 년이 지나도 그런 힘 한 터럭도 얻을 수 없는, 이미 우리에게 익숙한 사이버 언어폭력 이상의 의미를 가질 수 없다. 남혐을 우려하는 것은 언젠가는 소멸할 태양의 수명을 걱정하는 것과 같다. 합성명사로서 남성혐오는 존재할 수 없다. 내가 남자도 해보고 여자도 해보고 혐오도 당해봐서 아는데, 한국 남성 집단 일반은 혐오의 대상이 될 일 절대 없으니 걱정 붙들어 매시기 바란다.

한국 트랜스젠더의 직업군은 성 산업, 막노동 등에 편중되어 있다. 케이블 TV에서 1회만 방영된 트랜스젠더판 미녀들의 수다는 엄청난 항의 전화로 편성이 취소되었다. 평등한 교육의 기회와 직업선택의 기회는 학교에서, 직장에서 거부당해 박탈당한다. 그런 유리천장쯤은 있어줘야 혐오다. 혐오를 당해본 적도 없으면서 혐오를 언어폭력과 동일한 개념으로 정의하고 벌벌 떠는 사람들, 한심하다.

남성혐오는 존재하지 않는 허상이다. 허상에 불과한 남성혐오를 여성혐오와 등치 시켜 모두까기를 시전하는 것은 저울이 없거나 저울을 볼 수 없거나 볼 생각이 없거나 볼 줄을 모르거나 핑크색 코끼리 탈을 쓰고 있단 소리에 불과하다. 겨우 1년 전에 생긴 메갈의 언어가 폭력적이라고 그것을 혐오라 규정하며 유구한 역사를 가진 실존하는 여성혐오와 대칭 시키는 일은 심각한 지적 태만이다. 혐오가 무엇인지 전혀 모른다는 이야기다. 혐오가 뭔지도 모르면서 욕 좀 먹은 것을 혐오라 정의하는 자들이여, 제발 그 입 닥치라. 왜 항상 부끄러움은 내 몫인가?

그 티셔츠는 나쁜 티셔츠인가?

쉽게 품평 당한 메갈은 쉽게 휘두를 수 있는 도깨비 방망이가 되었다. 메갈의 언어를 사용하는 것은, 메갈의 주장과 비슷하기라도 한 의견을 내는 것은 메갈리안이라는 것이고 그 의견이 무엇이든 무시해도 좋은 것이 된다. 메갈에 대한 평가는 ‘저 빨갱이에서 파생된 새로운 빨갱이가 파는 하얀 굿즈를 사는 것을 보니 당연히 빨갱이인 넌 계약을 해지 당해도 되고, 그 빨갱이를 지지하는 만화가도 빨갱이구나. 거 글 쓰는 분도 빨갱이요?’ 수준에서 한 걸음도 나아가지 않는다.

저 티셔츠는 해로운 티셔츠다

저 티셔츠는 해로운 티셔츠다

메갈과 직접적인 연관이 없는 메갈리아4가 페이스북 코리아를 상대로 한 법정 비용 마련을 위해 판매한 티셔츠는 메갈에 대한 평가가 그러했듯 손쉽게 ‘나쁜 티셔츠’가 되었다. 이유는 단 한 가지다. 메갈리아4가 올린 모금 비용의 사용처에 ‘메갈리아 활동 중 법적 분쟁에 휘말리신 분들’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사실 메갈리아4는 150만 원이 필요했다. 그런데 웬걸? 1억 3천만 원이 모금된 것이다. 애당초 이 추가 모금액에 대한 용처가 있던 게 아니다. 예상도 못 한 큰돈이 생겼을 때 사람들의 반응은 크게 두 가지일 것이다. 슈킹하거나 우왕좌왕하거나. 메갈리아4의 운영진들도 분명히 당황했을 것이다. 그리고 회의를 거듭해 용처를 정했을 것이다. 그 모금액은 변호사의 조언을 받아 집행된다 했다. 신청서를 보내면 심사를 통해 지원을 결정한다 했다. 애당초 허투루 쓰지 않겠다는 것이다. 그래도 사람들은 마녀사냥을 시작했다. 기나긴 공지에서 단 한 단어, ‘메갈리아’ 때문이다.

메갈리아4 운영진들은 다시 공지를 올려 허위사실 적시에 의한 명예훼손은 제외한다고 뜻을 명확히 했지만, 마녀사냥은 멈추지 않았다. 현재까지 확인된 모금액의 사용처는 페이스북 코리아를 상대로 한 고소 비용과 어려서부터 아빠라는 사람에게 성폭행을 당했던 여성의 소송비용이다. 그래도 여전히 그 티셔츠는 나쁜 티셔츠이다. ‘메갈리아 활동’이란 앞서 살펴본 바대로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며 수익금의 용처를 자세히 밝혔지만 이미 군중은 빨갱이를 지원하는 혁명자금으로 결론지었다. 메갈과 워마드의 모든 악행과 악행으로 보이는 것 모두가 이 티셔츠에 투영되었다. 이 ‘나쁜 티셔츠’를 인증한 김자연 성우는 그의 경력에 큰 타격을 입었고 게임회사에 다닌다던 한 여성도 직장을 잃은 것으로 알고 있다.

손쉬운 정의구현은 이름부터 정의인 정의당에서도 벌어졌다. 진보적인 신문, 팟캐스트, 트위터 인사들 등등, 모두가 아무 생각 없음을 인증하지 못해 안달이다. 모두가 빤쓰를 내리고 빨갱이 사냥을 하지 못해 안달이다. 그 종북몰이, 어디서 배워왔는가?

왜 여성에겐 저항의 한 방법으로 선택 가능한 폭력이란 것이 허락되지 않는가? 그게 고작 언어폭력인데 말이다. 인터넷이 보급되던 1990년대 말부터 지금까지 인터넷에는 여성을 향한 언어폭력이 항상 넘쳐났는데, 남성을 향한 언어폭력을 시작하자마자 철저하게 배제당한 이유는 무엇인가? 왜 그 폭력을 촉발한 원인이 무엇인지 아무도 고민하지 않는가? 왜 자세히 알아볼 생각은 안 하고 모든 것을 한데 버무려 낙인을 찍고 사냥을 하는가? 왜 메갈은 일베를 평가하던 수준 이하의 잣대로 품평 당하는가? 이 ‘왜?’라는 질문을 던져나가는 것이 페미니즘이다.

왜?

페미니즘은 성평등이나 비폭력 따위의 좁은 개념이 아니다. 그것은 ‘왜?’라는 질문에 따른 결과일 뿐이다. 페미니즘은 우리가 살고 있는 남성 중심적인 세계에 대한 의문에서 시작한다. 1900년을 당연한 듯 살아왔기 때문에 생각하지 못했던 질문이다. 왜 메갈 빨갱이 타령하는 팟캐스트 진행자들은 다 남성일까? 왜 여성이 진행하는 인기 팟캐스트를 찾기 어려운가? 그건 여성이 팟캐스트를 진행하면 재미가 없기 때문이다. 왜 재미가 없을까? 그렇게 교육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청자들도 그것이 익숙하지 않도록 교육받았기 때문이다.

흔히 남성은 죽기 직전에 철 든다고 한다. 그리고 여성은 일찍 철 든다 한다. 그건 생물학적 남녀의 차이일까? 내가 호르몬 맞아봐서 아는데 차이는 존재한다. 하지만 그게 인간의 성격을 송두리째 바꿀 만큼 크지는 않다. 우리 사회가 남성과 여성에게 요구하는 것이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이것은 우리 언어에도 스며들어있다. 왜 ‘여자답다’와 ‘남성스럽다’는 없을까?

‘~답다’는 항상 긍정적인 자격 획득의 언어인 반면 ‘~스럽다’는 대상을 평가하는 언어이다. 오로지 남성만이 긍정적 남성성을 가질 수 있으며(남자답다) 심지어는 여성적인 속성도 가질 수 있다(여성스럽다). 그러나 여성에게는 긍정적인 여성적 속성은 존재하지 않는다. ‘A는 정말 여성답구나!’라는 말은 존재하지 않는다. 한국어의 세계에선 여성성은 평가의 대상이며 남성성은 불가침의 영역이다. 심지어 ‘여성스럽다’는 문법적 예외이다. ‘OO스럽다’는 OO에게는 쓰지 않는다. 자연은 자연스러울 수 없으며 촌은 촌스러울 수 없다.

이런 언어를 사용하는 우리는 자연스럽게 여성성과 남성성에 대한 스테레오 타잎을 가지게 된다. 그리고 어릴 때부터 여성은 평가의 대상이 되는 여성스러움을, 남성은 자격습득의 의미인 남자다움을 교육받는다. 사회가 용인하는 남성의 스펙트럼은 너무나 다양한데 여성은 그렇지 못하다. 여성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사회에 의해 좁은 틀에 맞도록 길들여진다. 철도 일찍 들고 개드립도 잘 못 치고 비판도 잘 못 하고 어둠의 다크도 찾지 않는다. 그래서 여성이 진행하는 팟캐스트는 재미가 없다. (L살롱 사랑합니다.) 설치고 떠들고 말할 기회를 금지당했기 때문이다. 여성의 박탈된 기회 위에서 더 많은 기회를 허락받고 자유롭게 떠드는 팟캐스트 진행자들이 메갈이란 이름의 빨갱이 사냥에 나서는 것은 비극적 코미디다. 우리 세계는 여성혐오 위에 세워져 있다. 아무도 여성혐오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이 두 개의 사진 중 하나는 웃음을 주었고 하나는 당사자가 사과해야 했다.

이 두 개의 사진 중 하나는 보는 이들이게 웃음을 주었고 하나는 당사자가 사과해야 했다.

질문을 통해 답을 찾고 깨달음을 얻는 것이 페미니즘이다. 깨달음을 얻으면 행동을 할 것이다. 누군가는 사회 운동을 할 것이며 누군가는 글을 써서 설득을 시도하겠고, 누군가는 푸코를 인용하며 논문을 쓸 것이고 누군가는 체계적인 정리를 시작하고 누군가는 소리칠 것이다.

“씨발 좆같네?”

이것도 페미니즘이다.

마치며

메갈은 빨갱이다. 여성혐오는 공격하기 편리한 것들을 모두 한데 뭉뚱그려 메갈이라는 낙인을 찍는 것으로 발현되고 있다. 페이스북을 하다 보면 페미니즘적 시각을 가진 게시물에 ‘난 메갈리아가 싫어요’라는 댓글들이 달리는 것을 쉽게 볼 수 있다. 정작 본문에는 메갈은 언급조차 없는데도 말이다. 평생 그렇게 살아온 사람이라면 내가 신경 써줄 이유는 없지만, 자칭 진보라는 인간들의 뇌가 우동사리화 되는 것은 보아 넘기기 어렵다.

그들은 말한다. 여성혐오 문제는 문재인이 당선되면 나아질 것이라고. 좆 까라. 강남역 사건을 혐오범죄라 정의하기를 거부한 표창원이 있는 당이 집권한다고 뭐가 나아질 리 없다. 청년 비례대표 남녀 순번을 억지로 뒤바꾼 당이 집권한다고 뭐가 나아질 리 없다. 저출산 대책이 여성정책의 절반인 정당이 집권한다고 무엇이 달라지겠는가? 바꿔야 할 것은 정권이 아니라 종북몰이를 하는 당신의 머릿속이다.

One thought on “메갈은 종북이다

  1. 아하 ‘OO답다’와 ‘OO스럽다’가 그런 차이가 있었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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