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랜스 혐오의 정의 (Transyclopedie 발췌)

트랜스혐오(Transphobie)

 

  1. 정의

« 트랜스혐오(Transphobie) »라는 개념은 트랜스정체화 과정에서 일어나는 모든 차별과 장애, 고의적 침묵을 지적한다. 트랜스혐오를 트랜스정체성을 가진 사람에 대한 적의라고 정의하면, 트랜스혐오는 성기 재지정 수술을 받은 사람에 대한 차별로 한정된다. 그렇지만 트랜스혐오는 일반적으로 트랜스가 경험했거나 느낀 차별과 편견으로 재구성된다. 다른 포비아와 마찬가지로 트랜스혐오는 그 자체로 드러나는 것이 아니다. 트랜스혐오는 동성애혐오나 성차별주의의 형식을 택하여 나타나고, 트랜스정체성에 대한 명백한 적대의 형식을 가지는 경우는 드물다. 또한, 트랜스혐오는 법률 문서에 찾아볼 수 없고, 동성애혐오나 성차별 개념과 연결되어 드러난다. 최근에는 수많은 트랜스 차별 사례 (특히 직장 관련)들이 동성애혐오나 성차별 행위와 구분되지 않은 채로 인지되어왔다. 2012년 7월 « 성정체성 »에 근거한 차별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2012년 7월 유럽인권위의 « 인권과 젠더정체성 » 에서 토마스 함마르버그(Thomas Hammarberg)는 « 젠더정체성 » 개념을 도처에서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 성정체성 » 개념이 낯설 수 있다) 또, 트랜스정체성을 가진 사람에게 장애물은 때때로 겹쳐서 나타난다. 성차별과 트랜스혐오는 서로 얽혀있고, 그것을 구분하기란 매우 어렵다. 따라서, 성별의 변화에 따른 배제인지, 일반적인 젠더 이질성에 따른 배제인지 구분하기란 쉽지 않다. 트랜스혐오에서 차별의 첫 단계는 직접적으로 트랜스정체성에 기인한다. 트랜스로서 인정되거나 감지되면 차별 행위가 일어난다. 그러나 대부분, 재현은 중첩되고, 넘치는 의심으로 만들어진 의혹은 차별 대우, 즉 공격의 주요 원동력이 된다.

 

트랜스혐오가 존재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 현상이 결합되어야 한다. 트랜스 몸(혹은 트랜스정체성의 표현)의 법적/기술적 생성과 젠더 정치, 젠더 규범의 재인지 시스템이 그 두 가지 현상이다. 따라서 트랜스혐오는 다음 두 요소 사이에서 일어나는 정의 충돌의 표현이다. 한편으로는 이분법적이고 고정된 젠더/성별 헤게모니(남성=남성적 ; 여성=여성적)의 실천과 표현이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 남성적 » = 남성 = 남성성의 성별 공식을 교란하는 표현과 실천의 몸이 대립하는 것이다. 즉, 트랜스혐오가 나타나는 것은 « 트랜스 몸 »과 « 젠더 규범 »의 충돌에서 트랜스혐오가 나타나는 것이다.

 

  1. 트랜스혐오인가 « 시스젠더중심주의»인가

트랜스혐오 반대는 프랑스 트렌스젠더 운동에서 주요한 주제가 되었다. 때로는 LGB그룹의 편에서 트랜스혐오 반대의 어휘와 행동을 공개토론에서 강제하는데 성공하기도 한다. 동성애혐오 문제처럼, 트랜스혐오 개념도 완벽하게 전복, « 반전 »을 말한다. 이 « 반전 »으로 다음과 같은 상황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지금까지 우리 사회가, 정신과 의사가, 심리 상담가가, 의사들이 혹은 재판관들이 트랜스 현상에 대해 자주 질문했다면, 이제는 트랜스현상이 젠더 관계와 규범 관계에 대해 질문할 차례라는 것이다. « 호모포비아는 다른 젠더에게 부과된 자질을 보이거나 혹은 그 자질을 보인다고 간주되는 사람들에 대한 차별이다 » (W.Lang, 1994). 더 자세히 설명하면, « 이 정의는 젠더 개념에서 병행하는 성차별주의와 동성애혐오를 연결하고, 또 그들을 차별 당하게 만드는 개인에게 부과된 특성을 탈-본질화한다. 그러나 우리는 동성애혐오를 식별할 수 있고, 이성애정상성에서 구분할 수 있다. 다니엘 벨젤 랑(Daniel Welzer Lang)의 정의에 따르면 이성애정상성은 다음과 같다.

 

개인이나 기관에 의한, 동성애와 공존하는 초월성과 이성애의 우월성의 끊임없는 “홍보”. 이성애주의는 다른 의견이 없는 한, 모두가 이성애자라는 것을 기정사실화 한다.

 

트랜스혐오의 정의는 트랜스혐오와 시스젠더중심주의으로 나뉜다. 트랜스혐오는 법률적으로 차별을 드러내는 것, 다르게 말하면, 차별의 방향성과 원인을 트랜스정체성의 인식의 직접적 책임으로 돌리는 행위를 말하고, 시스젠더 중심주의는 더 일반적이고 현실적으로, 비천하고 비정상적인 젠더 이질성을 분열시키는 것, 그리고 트랜스정체성의 실행과 표현을 방해하는 장애물의 총체를 구성하는 것을 말한다. 만약 우리가 트랜스혐오와 시스젠더중심주의 사이의 차이를 드러낸다면, 이건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첫째는 어떤 것들이 쉽게 분리되지 못한다는 것을 알려주기 위해서이다. 이를 통해 배제 논리의 복잡성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두번째 이유는 차별과 배제의 미끄러짐(glissement)에 관련된 것이다. 의미적으로 뿐만 아니라, 원인-결과로서의 미끄러짐 말이다. 트랜스혐오 개념으로 혐오되는 대상(le phobisé)이 아닌 트랜스공포증(phobie)의 책임을 물을 수 있다면, 트랜스 정체성 표현의 자격을 박탈시키는 시스젠더 문화의 « 인정 »을 물리칠 수 있게 된다. 도미니크 슈나퍼의 제안처럼, « 단순히 평가만 할 것이 아니라, 관찰된 지형을 만들어내는 사회적 과정을 이해해야 한다 »(2005) 혐오와 혐오의 방식을 고발하는 것은 문화적 가변성들을 연결시키지는 못하고, 순서가 뒤바뀔 수 있는 법적 대립들을 연결하게 된다.

트랜스와 트랜스혐오에 대한 연구는 미국이 프랑스보다 앞섰다. 2002년 힐(Hill)은 트랜스혐오를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 사회의 젠더 표현에 부응하지 못하는 사람들에 대한 감정적 혐오감 » 힐은 « 트랜스혐오 »와 « 젠더 지우기 »를 강조한다. 이는 젠더 이질성에 대항한 토벌대 파견으로 해석할 수 있다. « 공격이나 괴롭힘이다 » 힐은 이 배제 논리를 « 젠더리즘 »이라고 명명한다. 즉,

 

« ”섹스”와 “젠더” 사이의 불일치 혹은 젠더 부적합성에 부정적 인상을 강화하는 이데올로기. 이것은 전형적인 방식의 “남성” 혹은 “여성”처럼 보이지 않는 사람들을 계속해서 판단하는 문화적 구조와 믿음이다. “젠더리스트”는 젠더의 사회문화적 표현에 부합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병리학의 타격을 받았다고 생각한다. 이성애성차별주의도 마찬가지이다 … »

 

« 트랜스혐오와 동성애차별의 상관성에서의 성차 (Gender differences in correlates with homophobia and transphobia) »(2008)에서, 줄리 나고시(Julie Nagoshi)와 캐서린 아담스(Katerine Adams)는 힐의 이전 정의로 돌아와서, 호모포비아와 트랜스혐오를 교차로의 교란 요소와 같은 젠더 이질성의 프리즘으로 마주하기를 제안한다. 줄리 나고시와 캐서린 아담스에 따르면, 이 배제에는 이중적 표현이 존재한다. 한 편에는 트랜스정체성을 가진 사람에게 향하는 트랜스혐오와, 다른 편에는 동성애혐오를 성차별주의와 연결시키고, 성차별주의를 트랜스혐오와 연결하는 젠더 이질성 배제의 막연하고 위험한 논리이다.

 

Thomas, Maud-Yeuse, Karine Espinera, and Arnaud Alessandrin. La Transyclopédie: Tout savoir sur les transidentités. Lulu. com, 2012, p292-2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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