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랜스젠더의 자격

나는 장애를 가진 사람들의 투쟁, 특히 장애여성의 투쟁이 곧 나의 투쟁이라고 느꼈다(지금도 나는 그렇게 느끼고 있다). 그렇게 느꼈음에도 나는 내가 다른 장애인들보다 훨씬 나은 상태이기 때문에 스스로를 장애인에 속한다고 생각할 자격이 없는 것처럼 느끼기도 했다.

나는 다른 장애인들, 열악한 환경에 있는 일부 장애인들이 스스로를 장애인으로 여기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 “다른 사람들이 나보다 더 훨씬 안 좋은 상황인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었다. 나는 때때로 이것이 좌절, 비애, 수치감을 느끼지 않기 위해 자신의 어려움을 최소화하려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아니면 다른 사람들을 동정할 권리를 붙들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함으로써 다른 사람들보다 자신이 더 강하고, 건강하고, 훨씬 ‘정상적인’ 것처럼 느끼기 위해서 말이다. 나는 이런 태도가 장애를 가진 사람들은 완전히 무능력하고, 자기 자신을 포함해서 다른 이들을 위해 할 수 있는 게 없으며, 자선이 필요한 존재라는 고정관념에 따른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고정관념을 갖고 있는 사람들은 자신이 할 수 있는 게 조금이라도 있다면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그리고 자신을 피하기 위해서 자기 자신을 장애인으로 생각하기를 거부한다.

그 밖에  다른 것들도 나를 힘들게 했다. 내가 스스로를 장애인으로 규정하기 꺼림칙했던 것은 나보다 더 심한 장애를 가진 상태로 살아온 사람들에 대한 경외감 때문이었다. 결국 나는 여러 대처 방법의 대부분을 그들에게서 배웠다. 내가 불편했던 것은 정상적인 몸을 가지고 있을able-bodied 당시 장애를 가진 사람들의 어려움과 내가 비장애인으로서 누린 특권을 거의 알지 못했고 이해하려고 하지 않았다는 죄책감과 두려움 때문이기도 했다.

수잔 웬델,  강진영·김은정·황지성 옮김,
『거부당한 몸』(그린비, 2013), 68-69쪽.

트랜스젠더로 정체화한 것은 거의 십 년 전의 일이다. 한동안 트위터 프로필 같은 곳에 ‘비수술 MTF 트랜스젠더 레즈비언’이라고 적어 두거나 완전변태 홈페이지에 글을 쓰거나 한 경우들을 제외하면, 나는 누가 묻지 않는 한 정체성을 거의 말하지 않으며 살아 왔다. 커밍아웃이란 것이 여러모로 귀찮은 일이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커밍아웃 이후에 올 알지 못할 사건에 대한 두려움 때문만도 아니었다.

나는 늘, 스스로가 트랜스젠더라고 말하는 것에 부담감을 느낀다. 스스로를 의심하고 있다고 말해도 좋겠다. 내가 정말로 트랜스젠더일까? 내게 스스로를 그렇게 소개할 자격이 있을까? 이런 생각들은, 트랜스젠더에 대해 말하거나 생각할 때 종종 내 머리를 가득 채우곤 한다. 어지간해선 커밍아웃을 하지 않는 것은, 귀찮음이나 두려움 이전에, 그런 이유 때문이다.

트랜스젠더에 대해 배워 온 것들이 있다. 어릴 때부터 상대방 성의 옷을 입기를 좋아하고 상대방 성의 놀이를 하기를 좋아했으며, 신체적인 성별 재지정에 대한 강한 갈망을 느끼고 ―  그래서 종종 모든 것을 희생해 그것을 이뤄내며 ― 스스로의 성별에 대해 의구심을 갖지 않는 존재들, 그런 존재들이 트랜스젠더들이라고 배워 왔다.

그렇다면 나는 트랜스젠더가 아니었다. 여성 집단에 속할 때 편안함을 느끼긴 했지만 나는 치마나 화장을 좋아하지도, 인형놀이를 좋아하지도 않았다. 그렇다고 축구에 열을 올린 것은 아니었지만 늘 이런저런 기계들과 로봇들, 혹은 공룔 모형들을 가지고 놀았고 스스로를 꾸미지 않는 것을 편안하게 여겼으며, 심지어, 여성을 향하는 성적 지향을 가졌다. 그렇다는 나는 트랜스젠더가 아니었다.

모든 트랜스젠더가 저렇지는 않다는 것을, 비수술 트랜스젠더라는 존재들이 있다는 것을 배운 것은 대학을 반 넘게 다닌 시점이었다. 그것을 알게 되고 약간의 고민을 하고 나는 그것을 내 이름으로 삼았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내가 배워온 모든 것이 사라지지는 않았다. 여전히 나는, 내가 트랜스젠더라고 말하기에는 부족하다고 느낀다.

‘실제의’ 인물들을 접하면 그런 감정은 더 깊어진다. 숱한 커밍아웃은 물론이고 수술까지를 통과해 자신이 원하는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는 이들, 그것을 위해 가장 앞장서서 싸우고 있는 이들을 보면 말이다. 나는 아무것도 희생할 생각이 없고 앞장서기에는 게으르므로, 그리고 이렇다는 것은 어쩌면 절실하지 않다는 뜻이므로, 나는 망설인다. 나는 의심한다. 나는 죄책감을 느낀다.

어쩌면 여기에 내가 할 일이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게 살지 않는 트랜스젠더가 있다는 것을 알리는 데에, 트랜스젠더가 꼭 그렇게 사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리는 데에, 나와 비슷한 당신 또한 죄책감을 가질 필요가, 스스로를 의심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리는 데에 말이다.

트랜스젠더의 자격을 생각한다. 자격 요건 따위 없다고, 감히 내가 말해도 좋은 것일지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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