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미니스트 가수의 설 자리

이 글은 페미니스트 가수로 알려진1 지현에 관한 글이다. 그는 며칠 전 페미니스트 가수의 설자리는 어디인가요.”라는 질문으로 시작하는 글 한 편을 페이스북에 공개했다.2 자초지종은 이렇다. 그는 최근 열린 한 북콘서트에서 노래를 했다. 이프북스의 신간 『근본없는 페미니즘』의 홍보를 위한 자리였다. 이것이 문제가 되어 그는 “한 여성인권 단체의 20주년 축하무대에 서지 말라는 부탁의 전화”3를 받게 된다. 충격이 컸던 모양이다. 이명박 정권기 관에서 연 행사에서 섭외 취소 통보를 받은 이후로 처음이라고 했다. 페미니스트 가수로서 헌신해 온 20년 세월이 무화되는 듯하다고 했다. 그래서 그는 이렇게 묻기에 이른다, 페미니스트 가수의 설 자리는 어디냐고.

첫 문장을 보고는 페미니스트라서 무대에 서게 되지 못한 줄 알았지만 그런 일은 아니었다. 오히려 페미니스트가 아니라서 ― 적어도 ‘어떤’ 페미니스트가 아니라서 서게 되지 못했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근본없는 페미니즘』의 저자들인 소위 ‘워마드계’와 함께 하면서 생긴 문제니 말이다. 물론 그는 강변한다. 자신 또한 워마드에 동조하지 않는다고 말이다. 그는 이렇게 쓴다. “소수자를 향한 혐오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너무나 명백하고 당연한 것이지요. 그렇지만 내가 동의하는 것은 이들의 삶과 활동 역시 기록되어야 한다고 판단한 그이들 자신과 이프 북스의 입장입니다.”

하지만 그는 책의 출판에 반대하지 않는 정도가 아니라, 그곳에 가서 “축하”하는4 노래를 불렀다. 그래놓고는 마치 연구자로서 관심을 갖고 있어서인 양, 순전히 그들을 관찰하기 위해 간 것인 양 글을 이어가는 것은 비겁하다고 느낀다. 애초에, 출판되어야 하는 것이 아무런 비평 없는 그들의 글인가 하면,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출판될 가치를 갖는 것은 그들의 행동을 기록하고 분석하는 페미니스트의 글이 아닌가.

페미니스트 가수의 설 자리를 묻는 것은 신기한 일이다. 가수의 설 자리는 빤하다. 자신을 불러준 무대, 그리고 자신이 만든 무대. 그 둘밖에 없지 않은가. 출연료만 준다면 불러주는 어디든 가는 가수가 될 것이 아니라면, 불러주는 무대는 가려서 서야 하고, 그런 자신의 모습을 보고 부르지 않는 무대에는 서지 못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자신이 선택한 무대에 대해서는, 자신이 책임질 수밖에 없는 것 아닌가. 정권의 입맛에 달린 문제였던 것도 아닌데 이걸 무슨 탄압처럼 생각한다면 곤란한 일이다.

이제는 “주로 마음을 어루만지고 다독이는 노래들”을 부른다는 그. 김난도나 혜민 같은 치가 될 요량이 아니라면, 아니, 그들조차도, 모두의 마음을 어루만질 수는 없다. 누군가의 마음을 어루만진다는 것은 종종 그 반대편에 있는 다른 누군가에게는 상처를 주는 일이다. 그걸 몰랐다면 나이브했던 거고, 그걸 알고도 그랬다면 물론 감수해야 할 일이다. 어쨌거나 그는, 혐오를 선동하는 이들에게, 일갈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격려하기 위해서 찾아간 것이 아닌가.

그는 여전히, 취소된 무대의 관객들을 사랑할지도 모르겠다. 그들의 마음을 어루만지고 다독이고 싶은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적어도 한동안은 그의 노래는 그들의 마음을 어루만지지도 다독이지도 못할 것이다. 상처 주는 칼날 이상의 것이 되지는 못할 것이다. 워마드의 혐오 선동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그의 말을 의심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그가 그들을 보듬고자 하는 이상, 그들에게 모욕 당하는 이들은 그에게 안기고 싶지 않을 수밖에 없는 일이다.

중언부언 횡설수설해가며 쓸모도 없는 글을 ― 그에게 상처를 주는 것 이상의 의미는 없을 것 같은 글을 쓰는 것은 어쩌면 새벽까지 잠들지 못해 판단력을 잃은 탓이다. 조금 화가 났다. 그의 글을 처음 읽은 그제에도 그랬지만, 그를 비판하는 수많은 댓글들이 달리는 동안, 그리고 한편으로는 섭외를 취소한 단체가 모욕 당하는 동안 그가 아무 말도 없는 것에 조금 화가 났다. 그가 글을 쓴 것은 겨우 이틀 전이므로, 그저 내가 성급한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1. 알려진이라는 말을 굳이 붙인 것은 그의 페미니즘이 의심스러워졌기 때문이다.
  2. https://www.facebook.com/ziihiion/posts/1784473258238607
  3. 이하에서 인용은 모두 지현의 글에서.
  4. 그 공연이 워마드의 혐오의 목소리를 응원하고 축하하기 위한 것이었냐고 묻는다면 단호하게 아니라고 대답하겠습니다. 그렇다고 내가 축하하고 싶은 것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닙니다. 온라인의 익명의 게릴라들이 신상 노출의 공포를 딛고 얼굴을 드러내고 현실의 세계로 나왔다는 것, 거기서 서로 호흡을 나누고 소통하고 체온을 느끼며 위로하고 웃고 울었다는 것, 그것을 축하하고 싶었습니다.”

2 thoughts on “페미니스트 가수의 설 자리

  1. 가서는 이런 말들을 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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