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소수자와 낙태죄 폐지

오늘 11시, 헌법재판소 앞에서는 한 기자회견이 열렸다. “낙태죄는 위헌이다”라는 제목의 이 기자회견은 현재 헌재에서 진행 중인 낙태죄 위헌소송 공개변론을 겨냥한 것으로, 연대체인 모두를위한낙태죄폐지공동행동에서 주관했다. 시민사회단체들이 이러한 기자회견을 여는 시점에, (여성가족부는 낙태죄 폐지 의견을 제출했지만) 주무부처인 법무부에서는 존치 의견을 제출했다. 무려 여성을 “성교는 하되 그에 따른 결과인 임신 및 출산은 원하지 않는” 사람으로 묘사하는 의견서를 말이다.1
최근 낙태죄 폐지는 커다란 사회적 이슈가 되었지만, 여전히 ‘여성들만의’ 문제로 여겨지고 있는 것 같다. 어쨌거나 임신하는 것은, 낙태죄에 직접적으로 영향 받는 것은, ‘여성’2이니까 말이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 법무부의 입장은 섹스를 출산과 직접적으로 연결시키려는 의도, 출산으로 연결되지 않는 섹스를 규제하려는 의도, 성적 자율성과 그에 수반되는 것들 ― 예컨대 성적 쾌락 같은 것 ― 을 제약하려는 의도를 갖고 있다. 출산으로 이어지지 않는 성행위를 부정하고 금지하는 것, 어디서 자주 마주한 것이 아니던가.
낙태죄 존치론은 대개 생명윤리의 탈을 쓰고 나타나지만, 그 기저에 있는 것(중 하나)은  출산에 ― 규범의 재생산에, 국가 발전에 ― 기여하지 않는 섹스를 차단하겠다는 심보, 개개인의 자율성과 쾌락을 규제하겠다는 심보 이상의 것이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낙태죄 폐지를 주장하는 논리와 다양한 성애에 대한 권리 보장을 요구하는 논리는 맞닿아 있을 수밖에 없다. 실제로 2003년 동성 성행위 금지법을 위헌으로 판시한 미국의 로렌스 대 텍사스 사건은 동성애자들의 성적 권리를 옹호하기 위해 피임과 임신중절을 합법화한 판례들을 근거로 가져 오고 있기도 하다.3
임신출산으로 이어지지 않는 이성섹스를 받아들이지 않는 사회는, 당연히 임신출산으로 이어지지 않는 동성간의 섹스를 받아들이지 못한다. 겉보기에 이성 관계로 보이는데 임신출산을 거부하는, 예컨대 출산을 통해 여성으로 고정되기를 거부하는 어떤 논바이너리 트랜스젠더의 섹스 또한 그 사회는 받아들이지 못한다. 결국 낙태죄 폐지를 요구하는 것은 ― 섹스 없는 성적 관계, 그리고 아예 성 없는 관계까지도 포함하여 ― 다양한 형태의 성적 관계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라고, 권력으로써, 폭력으로써 규제하려 들지 말라고 요구하는 것과 같은 선상에 있는 일이다.
누군가는 이것을 ‘물타기’라고 비난하지만, 이런 점에서 나는 모두를위한낙태죄폐지공동행동이라는 이름을 좋아한다. 낙태죄 폐지는 결국 모두의 성적 자율성과 권리를 억압하려 드는 이 국가의 한 모서리를 무너뜨리는 일이라는 점에서, 말 그대로 모두를 위한 일이다. 원하지 않는다 해도, 그럴 수밖에 없다.
  1. 노컷뉴스 기사, 「법무부 “낙태죄 폐지? 성교하되 책임 안지겠다는 것”
  2. ‘여성’과 ‘지정성별 여성’과 ‘해부학적 여성’ 사이에서 고민했지만 어느쪽도 충분한 라벨은 아니라서 짧은 걸 택했다.
  3. 예컨대 “What Lawrence v. Texas Says About the History and Future Of Reproductive Rights“와 같은 글을 참조할 수 있겠다.

One thought on “성소수자와 낙태죄 폐지

  1. 글 쓰다보면 기자회견 끝나겠지 싶어 과거형으로 썼는데 글을 너무 짧게 끝내버렸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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