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주년 기념 자문자답 (멤버들)

– 왜 가입하고 활동을 하게 되었나요?

한창 네이버 블로그를 하던 시기에 완변에서 다과회를 한다는 포스터를 보고 흥미가 생겨서 다과회에 참석하게 되었다. 그 후에 완변 잡지들을 읽고 자기방어훈련 ‘내 몸이다’를 진행하면서 함께 활동하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대학을 졸업하면서 그간 활동하던 학생운동 단체를 떠났다. (주변인들은 괴로워 했지만) 나로서는 썩 나쁘지는 않은 공간이었다. 하지만 남녀 숙소 분리 정도가 여성주의적 실천의 최고치인 곳이었고… 좀 더 좋은 공간을 찾고 싶었다. 그러다 떠올린 곳이 완변이다. “전의경에게 동성애를 허하라”라는 제목의 전단을 통해 이름을 알게 된, 어느 투쟁 사업장 집회에서 사람들을 마주친 적이 있던, 그런 곳이었다. 기존에 해 오던 노동운동, 장애인운동 등에의 연대를 계속 하면서 여성주의와 퀴어를 말할 수 있는 공간이라고 여겼다. 정체성을 드러내고 만날 수 있는 친구들이 필요했던 것도 같다. (예나제나 나는 커밍아웃을 잘 하지 않는다.)

가장 마음 맞는 친구들이 같이 하자고 해서 시작했습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내가 헛소리를 하면 지적할 것이라는 믿음이 있어서 활동하기 편하다는 점도 있었습니다.

무더운 여름, 샤워하던 중에 불연듯 이런 단체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시 학내 성소수자 모임들에서 ‘좋은’ 사람들이 제법 있는데, 각자 자기 모임의 어둠 속에서 발버둥치고 있었다. 이들이 서로 모여 서로 힘을 얻고 모아서 학내 모임들의 변화를 이끌어내는 그런 단체가 있었으면 했고, 그래서 단체를 만들자고 제안을 하게 되었다. 완변 초기에 ‘대학생’이라는 키워드가 모임 소개에 들어가 있었던 이유다.

갓 차별금지법 반대로 활동을 시작해서 처음 성소수자 활동가들을 집단적으로 만나고 있었다. 엄청 신나있었던 것 같다. 어느 시점에 활동이 마무리되며 여러곳에서 온 사람들이 각자 왔던곳으로 슬슬 돌아가는데 나는 딱히 돌아갈 곳이 없더라.  그냥 옆에 있던 사람들과 계속 여러가지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 같다.

재미있어 보였다. 뭔가 재밌는 글을 쓰고 재밌는 활동을 하는 것 같았다. 평소에도 일상적으로 보는 친구들이었는데, 학내가 아닌 다른 공간을 만들어서 자유롭게 더 하고 싶은 그게 뭘까 궁금했다. 그냥 가까이서 지켜보고 싶었던 것 같다.

서울 와서 3개월 가량 됐을 때 홍보물을 봤다. 무엇이든 시작하고 싶은 시기였고, 지금 생각해보면 성소수자를 만나고 싶어서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아는 사람이 아주 적었다.

퀴어 커뮤니티를 갖고 싶어서

학생운동을 하면서 많이 지친 상태에서 쉰지 1년 정도 되었을 때, 뭔가 활동은 하고 싶은데 다른 공간을 찾고 싶었다. 노동운동과 학생운동을 계속 하고 싶은 생각은 있지만 그 공간에 매몰되고 싶지 않았다. 그 때까지만 해도 퀴어운동을 내 운동으로 가져가 본 적이 없었으니까, 한번쯤 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제일 컸다. 페미니즘 공간이 필요했기도 했고. 제일 큰 이유는 심심해서 이기도.

주변에 활동하는 친구들이 완변을 만든다며 같이 하자고 해서 별 생각 없이 했다. 당시에 완변은 퀴어로서 페미니즘을 기반으로 하는 운동을 하고자 했던 것 같고, 나도 거기에 매력을 느꼈다. 틀에 갇히지 않고 나의 이야기를 정치적으로 쓸 수 있어서 좋았던 것 같다.


– 완변의 장점과 단점은?

완변의 장점은 하고 싶은 것을 하는 단체라는 것? 그리고 잡지를 내거나 할 때 항상 다 같이 글 검토를 한다는 점인 것 같다. 글을 혼자 쓰는 것이 아니라 의견을 주고 받아 ‘다 같이’ 쓰는 것이 좋았다. 그리고 단점이라고 해야 할 지는 모르겠지만 굳이 꼽자면 단체라기 보단 느슨한 개인의 연대 모임 같은 느낌이 그렇다.

장점도 단점도 높은 기준과 게으름. 운동적으로 높은 기준을 가진 이들의 상호 감시 및 만장일치 체제 속에서 완변은 매우 안전하고 좋은 공간이다. 게다가 게으르니 별 거 없을 것 같으면 일을 안 하거나 하다가도 쉽게 멈춘다. 완변의 이름으로 하는 활동이나 내는 글을, 마음 놓고 공유할 수 있어 좋다. 하지만 좀 자주 멈추고, 사람을 가리고, 그러다 보니 완변은 사실상 소멸의 위기를 맞게 되는데…

완변의 장점은 하고 싶은 일만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어떤 이슈에 대해 반드시 대응해야 하거나, 매년 어떤 시기가 오면 반드시 어떤 일을 해야 하는 그런 의무감에 시달리지 않는 다는 큰 장점이죠. 동시에 단점도 각자 하고 싶은 일만 한다는 거죠. 혼자 일하기 심심하다면 동료들을 설득/강제해야 하지만, 매우 쉽습니다.

완변의 장점음 구성원 간의 신뢰도가 매우 높고 따라서 할 말, 안할 말을 가리지 않고 할 수 있다는 점이다. 내가 만약 구린 짓을 하고 있다면 언제든 옆에서 “이놈시끼”라고 욕 한 바가지 퍼부어줄 수 있는 사람들이라는 믿음이 있기에 나의 의견을 제시하고 주장하는데 부담이 덜하다. 단점은 이 정도의 상호 신뢰를 요구하는 단체이기에 새로운 회원이 유입되기 힘들고, 따라서 고인 물이 되기 쉽다는 점이다.

장점은 사람들이 잘 떠나지 않는다는 것. 단점은 잘 오지도 않는다는 것.

일정한 틀이 없이 그 때 그 때 하고싶은 걸 한다는 게 장점이자 단점이다. 초기에는 자주 만나다보니 굳이 친목을 나누기보다는 같이 무얼 하고싶은지 앞으로 뭘 할지, 우리가 뭘 할 수 있을지 그런 이야기를 더 나누게 됐던 것 같다. 그래서 아무래도 회의도 글검토도 많이 했었던 것 같은데. 다들 이런저런 사유로 바빠지다보니 자연스럽게 자주 만나지 못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점차 주로 친목적인 만남으로 되어간 것 같다.

사실 평가하기 어렵다. 나의 평가 기준 일부는 완전변태에서 만들어졌다. 그게 단점일지도 모른다. 이제는 너무 편안해서 서로 부딪칠 일도, 알려주거나 설득해내야 할 일도 잘 없다.

장점은 구성원들이 에너지가 많아 완변이 장수할 수 있다는 것  단점은

완변의 장점은 비판이 자유로운 점. 어떤 이야기를 해도 그대로 받아들여주고 그자체로 비난하는데 그게 그렇게 불편하지 않다. 반대로 내가 불편한 점을 이야기해도 마음이 편하다. 완변의 단점은 느슨한 점. 이게 단점인지 잘 모르겠긴 하지만 단체로서 운영이 되는데에는 어느 정도 단점이 되는 것 같다. 우리가 뭐하는 단체인가 하면 잘 설명하기 어렵다. 그리고 단체자체가 느슨하다보니 개인의 역량에 많은 면을 의존하게 된 것 같다.

장점: 우리 단체의 역할, 목표, 성격, 이런 게 고정되어 있지 않았다. 이야기하다가 “이거 재밌겠다”라고 하면 그걸 했다. 해야 되는 일이어서 했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나에게 그게 별로 재미없다면 최소한의 역할만 하면 되었다. 안 하는 것에 크게 죄책감을 느끼지 않을 수 있었다. 억지로 하는 일이 많아지다 결국 지쳐서 쉬게 되는 나로서는 완변의 이런 분위기가 장점이라고 생각한다.단점: 완변은 새로운 회원을 받을 때 기존회원의 만장일치 동의를 거쳐서 받았다. 신입 회원을 모집하고 만나는 자리를 가지기도 했는데, 이 과정이 힘들었다. 완변이 공유하는 정치를 가지고 이걸 언어화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사람이어야 했는데, 너무 문이 좁다고 느꼈다. 우리가 기대하는 것들을 기존의 회원들은 만족하는지도 의문이었고. 서로에 대한 신뢰가 매우 중요한 공간이었고, 새로운 사람과 그걸 만들기는 어려웠다.

– 가장 기억나는 장면은? 기억나는 글은?

딱히 한 장면을 고르긴 어렵지만 잡지 <편>을 준비할 때 카페 같은데서 만나서 회의하고 늘어지고 맛있는거 먹던 게 생각난다. 기억나는 글은 <개인 기록 흐린 기록>과 <함부로 경험이라 말하지 마라> 그리고 <진흙>.

장면 1. 가입하면서도 커밍아웃은 하지 않았다. 가입 후 첫 웹진이었나, 커밍아웃하는 원고를 써서 가져 갔더니 놀란 이들이 있었던 모양이다. 이성애자라고 여겼던 사람이 자신은 트랜스젠더라고, 그러나 성소수자 친구들마저도 나를 쉽게 이성애자라고 여긴다고 말하는 글을 가져갔으니 말이다. 그들이 무릎을 꿇었던 것 같다. (이게 정확한 기억인지 모르겠다.) 이렇게 금세, 크게 사과하는 이들이 있다니, 하며 나도 놀랐다. 좋아 보여서 들어온 완변이었지만, 그 장면을 접하며, 정말 좋은 곳이구나라는 생각을 굳혔던 것 같다.

장면 2. 한 번은 내가 어떤 부적절한 농담에 아우팅이라는 단어를 쓴 적이 있다. 온라인 대화에서였는데 아마도 즉각적이고 집중적이고 강력한 비판을 받았던 것 같다. 하지만 나는 비판의 포인트를 이해하지 못했고, 결국 오프라인 회의까지가 열렸다. 좀 무서웠지만… 그들이 포기하지 않아 준 덕에 다행히 (아마도) 나는 비판의 요점을 이해했고, 사과하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신뢰하는 이들에게서 비판받을 수 있다는 것, 내가 완변에 있는 두 번째 이유다. (첫 번째 이유는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나보다 더 잘 할 수 있는 이들이 있다는 것, 인데 이 자들이 갈수록 말을 안 한다.)

. 나는 완변의 모든 글을 사랑해. 그래서 하나를 꼽을 수는 없지만, 검토를 열심히 했던 글들이 좀 더 기억에 남기는 한다. 비판을 열심히 했던 글들이라는 뜻이다.

의경에게 동성애를 허용하라, 를 광화문 한복판에서 뿌렸던 것이 제일 기억에 남습니다. ‘완전변태’라는 낯뜨거운 이름으로, 게다가 성소수자 행사가 아닌 곳에서 글을 뿌리는 것이 신나고 부끄러웠습니다.
연극 대본 ‘진흙’의 원본. 너무 재밌어서 단숨에 읽었고, 그것으로 연극까지 하게 되었으니, 아마 제일 재밌는 글로 꼽을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한참 활동할 때, 우리는 하는 일에 비해 회의를 참 많이 했다. 회의 자체가 길고 긴 식사, 다과, 술판의 연결이었다는 점도 감안해야겠지만, 모든 생산되는 글에 대해 최소한 한 번의 상호 검토를 했다. 그렇기에 가장 기억나는 것은 내 집에 모여 서로 둥글게 앉아 길고 길게 이야기를 나누던 장면이다. 기억나는 글은 군대에 오리가 있던 시절, 오리가 쓴 글들이다. 나도 저런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만드는 언제나 영감을 주는 훌륭한 글들이었다.

어디서 회의할지 고민하던 게 기억난다. 조용하고 위치좋고 싸고 맛있는 곳을 고르는 것. 인쇄물을 내기 전의 최종 글검토를 자주 마쯔네 집에서 했는데 이 즈음에는 이미 다들 지쳐 빨리 끝마치고 싶으면서도 또 막상 못끝내서 (혹은 성에 안차서) 안달과 짜증을 조용히 각자 내고 있었던 게 기억난다.
기억나는 글<편>의 기획과 글들이 많이 위로가 되었던 것 같다. 다시 읽어봐야겠다.

주로 마쯔네 집에서 회의를 하던 시기가 있었다. 원형으로 둘러앉아있던 사람들, 프린트아웃한 검토할 글들 따위를 들고 저마다 펜도 제각각 꼭 자기같은 것을 들고선 아주 풀어진 그런 자세들로 저마다 앉거나 눕거나 그런 모양으로 있었는데 그런 느슨함이 장면으로 남아있다. 큰 노란 고무줄이 전혀 팽팽하지 않게 찌그러진 타원 모양으로 있는 그런 느낌.

장면 : 정말 많은 장면이 있을 텐데 이상하게 우리가 신촌에서 회의 하던 초창기, 까페에서 내가 집어먹던 설탕 맛이 떠오른다. 그때 나는 차값이 너무 비싸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설탕이라도 더 먹으려고 했다. 돈도 없지만 물정도 몰랐고, 사회화도 덜 됐고 칙칙했다. 설탕도 과도하게 섭취하고. 그런 내 말을 잘 들어준 게 고맙다는 생각이 든다. 설탕을 그만 먹으라고 한 적도 없었다.글 : 그런 애들 발에 치이도록 많다. 이 말이 한번씩 떠오른다. 내가 쓴 글로는 창간호에 쓴 모친 간병기. 병원에서 수첩에 쓴 일기였고, 날 처음 드러내놓은 경험이다.

좋은 글들이 많았지만  완변이 만드는 여러 종류의 이미지들, 퀴어 퍼레이드를 장식했던 오브제들

장면: 나는 분노를 표출하지 못했던 사람이라, 완변에서 술먹다가 어느 날, 이불을 가져오고 나에게 이걸 때리게 하려고 노력했었다. 결론적으로는 심리치료와 관련된 것은 전문가에게 맡겨야 한다는 것을 깨달은 밤이었지만, 내 입장에서는 매우 고마운 밤이었다. 덕분에 지금은 “꺼져” “닥쳐”정도는 할 수 있다.  글: 엄마를 때리고 쓴 글. 제일 나다운 글이었다고 생각한다. 감정을 표현하는 글보다는 당위를 이야기하는 글에 익숙한 나로써는 내 감정을 온전히 토해낼 수 있는 신기한 경험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글쓰고 잘 썼다고 칭찬받은 것도 처음인듯.

서울퀴어퍼레이드 부스 전시를 위해 1미터가 넘는 혓바닥을 만든 적이 있다. 큰 혀에 손가락 길이의 작은 혀를 만들어 붙이는 고된 노동을 했다. 그 때 재봉틀로 작은 혀를 수없이 만들어 내던 장면이 인상 깊다.글: 내가 썼던 글에 바바리맨이란 단어 사용에 대한 비판이 있었다. 보통 잡지에 내는 글은 검토를 같이하는데, 그건 개인적으로 편하게 홈페이지에 올린 글이었고, 홈페이지에 내 글에 대한 비판도 그대로 공개가 되니까 느낌이 달랐던 것 같다. 내가 비판에 얼마나 취약한지 놀랐던 기억이 남는다.


– 열심히 활동하던 때와 지금의 나는 뭐가 제일 많이 바뀌었나요?

열심히 글도 읽고 사람도 만나고 했던 것 같은데 지금은 아무 것도 하지도 않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글을 쓰는 것도 생각 하는 것도 더 어려워진 것 같다.

잘 모르겠다. 예전에 비해 돈을 조금 더 벌게 되었고, 집회에 조금 덜 나가게 되었다는 정도만 느끼며 산다. 이런 저런 경험을 거치며 전업 활동가가 될 수는 없다는 것을 깨달았고, 덕분에 진로 고민이 깊다.

완변이 얼마나 열심히 활동하는지와는 별개의 문제들이다. 완변은 많은 것을 했지만 당위 때문에 급하게 무언가를 한 적은 없으므로, 완변이 별 걸 안 하고 있다는 사실은 가끔 되집퍼 볼 때에만 깨닫는다. 언젠가 무언가 하려니, 여기는 것 같다.

느긋해졌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과거의 활동에 뭔가 문제가 있었던 것이 아닌가 의구심이 듭니다.

늙었다. 단순히 노화했다기보단 여러가지 측면에서 늙어버렸다. 과거에 날카롭게 선을 긋고 이야기하던 많은 지점들이 풍화되어 흐려졌으며, 그렇게 이야기할 필요성도 더 이상 느끼지 못한다. 사람에 대한 호불호가 완전히 사라지진 않았지만, ‘주장들’에 대한 호불호는 확실히 옅어졌고, 각자의 이야기들에서 최소한의 무언가 얻을 것이 있지 않을까 고민해보게 되었다. 내가 모르고 있는 부분이 너무나 많다는 것을 계속해서 깨달아가고 있으며, 그래서 점점 더 무언가를 이야기하기 곤란해졌다. 하지만 인간은 변하기 어려우며, 그 인간이 그 인간이다. 나는 전보다는 나아졌지만 여전히 나태하며 게으르고 안일한 인간이다. 그 안일함이 상대에 대한 관용과 배려, 더 넓은 포용으로서 작동하기를 희망하길 바라게 되었을 뿐이다.

몸이 멀어지며 교류가 적어지고, 어찌할 수 없음과 기력없음에 우울해졌……어…핑계와 죄책감이 늘어간다.

들어와서 초기에는 졸업반이었던 것 같고 얼마 지나지않아 로스쿨 입시 준비를 했다. 그리곤 로스쿨에 들어가서 내내 공부를 했고 지금은 변호사가 되서 이러니저러니 사느라 바빴다. 내가 뭘 했나 생각해보니 그저 옆에 같이 있었다, 그 자리에, 라고밖에는 할 말이 없어서. 열심히 더 자주 같이 있었을 때와, 전혀 참여하지 못했을 때를 기준으로 이야기를 하자니 영 민망하고 궁색하다. 들어왔던 초기에는 글을 쓰는 모임에 들어와놓고서는 글을 쓰는게 무서웠다. 지금도 여전히 글에 있어서는 자기검열이 심한 사람이기는 한데, 직업적으로 나를 드러내지 않고 타인을 위한 글을 기계적으로 쓰다보니, 이상하게 지금은 글을 쓰는게 그렇게 무섭지는 않아졌다. 글을 그다지 쓰지 않다보니 처음에는 소속감이 낮았다,  활동단체로서의 완변에는 말이다. 지금은 스스로 완변이라고 생각한다, 민망해하면서도 말이다.

시민단체 상근활동을 시작하면서부터 글을 거의 안 쓰게 됐다. 새로운 것들을 접하게 되자, 드러난 결과보다 배경에 대해 쓰고 싶은 것들이 더 많아졌다. 그런데 그건 내가 쓸 수 있는 글이 아니라고 생각했고, 지금도 그렇다. 나와 연결된 것들을 비판해야 할 때 마음속에서 내 책임을 삭제하거나 또 다른 외부를 찾아내곤 한다.  하지만 필요한 건 내가 다른 가능성을 찾고 그것을 실현시키는 것이다. 나는 전보다 힘과 분노를 더 많이 느끼고 매사에 냉정해진 것 같지만 동시에 자신 없고 지친 느낌도 든다. 지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뭔지, 그걸 통해서 무엇이 바뀔 것인지, 그게 좋거나 옳은지 생각만 하며 실제로 저지르는 건 적은 사람이 됐다.

나보다 세상이 더 많이 바뀐 것 같다. 퀴어에 관한 활발한 논의들.

지금의 나는 많은 부분을 포기하고 산다. 불편한 것들을 이야기하지 않고, 그러려니 하고 산다. 답답함을 앉고 사는 느낌이 든다.  예전엔 하고 싶은 것이 많았다면 지금은 해야 하는 것이 더 많다. 술이 맛이 없다. 완변사람들이 더 가까이 있었으면 좋을 텐데.

그땐 ‘어떻게 살아야 하지?’라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알고 싶은 거, 해보고 싶은 거, 배워야 할 것들이 많았다. 지식이 나에게 들어와 소화되고, 나를 바꾸고 밖으로 나오는 속도와 양이 많았다. 느끼는 감정도 다양하고 강렬했다. 그때가 좋았던 것 같지만, 항상 그럴 수는 없는 거 같고, 지금의 나로 사는 법을 배우고 있는 것 같다.


– 앞으로 완변이 어떻게 되면 좋을 것 같나요?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으면 좋겠다. 나중에 뭐라도 같이 할 수 있으면 더 좋겠고.

완변은 단체가 아니라 네트워크라고 모두 동의했었습니다. 특정한 규칙도 없고, 연례 행사도 없기 때문에, 사람에 따라 움직이는 곳이라고 생각합니다. 새로운 사람들이 들어온다면 완전히 바뀔테니, ‘앞으로’ 내가 무엇을 희망하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새로운 사람들이 들어오지 않는다면, 2년에 한 번씩 재미있는 일 하면서, 앞으로도 친목의 네트워크로 남아주었으면 합니다.

사실 몇년 전부터 단체로서의 완변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고, 그런 이야기를 몇 번 꺼냈었다. 나는 그냥 완변이 그런 단체가 있었으며, 그 사람들이 저 사람들이다고 십년 쯤 뒤에 이야기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러기 위해서는 두 가지가 충족이 되어야할 것이다. 하나는 완변이 기억될만한 성과를 남기는 것과 다른 하나는 완변의 구성원들이 서로 모이고 연락하며 현장에 가끔씩이라도 얼굴을 드러내는 것. 첫번째는 잘 모르겠고, 두번째는 계속 이어져나갔으면 좋겠다.

내가 힘이 날 때까지 계속 있기만 했으면 좋겠다.

글쎄. 앞으로의 완변 사람들은 상상이 가도 앞으로의 완변은 잘 모르겠다. 나는 완변 사람들이 온전히 존재할 수 있는 공간으로 완변이 지속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요즘 같은 시점에서는 모든 단체를 비판할 수 있는 완변이 있었으면 하기도 한다.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은 있다 완변이 법인이면 어떨까. 혹은 지금 당장이라도 임의단체로 등록을 하면? 매번 모임 때마다 현수막을 들고 사진을 남기는 모습이 상상이 안되기는 하지만, 언젠가는 지정기부금단체가 될수도 있으려나 하는 그런 생각. 상근 활동가한테는 충분한 월급을 줄 수 있었으면 좋겠는데 하는 그런 실없는 생각. 실제로 전혀 그런 형태와 가깝지 않게 있어온 완변이어서 지금 이대로도 너무 편하고 좋은 공간인데 뭘 그렇게까지 해야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가도 10년 넘게 여성주의를 표방해온 성소수자단체가 우리말고도 또 있나, 싶어지면 앞으로도 명맥을 이어나갈 방도란 무엇일까 하면서 다시금 단체의 형식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변화하지는 않을 것 같다. 이대로여도 좋다.

20주년 행사도 했으면 좋겠다.

잘 모르겠다. 누가 할지부터 머리에 먼저 떠오르는 난 망한 것 같다. 기존의 단체가 아닌 이상한 형태로 아무도 하지 않을 만한 것들을 하면 좋겠다.


– 활동하면서 가장 후회되는 일은?

딱히 없다. 다만 ‘완변의 서리씨는 어떻게 생각해?’ 라는 질문을 들을 때 마다 뭐라도 말할 걸, 두루뭉술하게 회피하던 내가 아쉽다.

후회되는 일, 같은 건 딱히 없는 것 같다. 하고 싶으면서 할 수 있는 일, 은 대강 하면서 지내 왔으니까. 하고 싶지만 (기력이 없어서) 못 해 아쉬운 일들은 좀 있다. 주변부라고는 해도 어쨌거나 ‘운동판 내부’의 모임으로서, 내부에서 잘 나오지 않는 비판들을 좀 더 열심히 하지 못해 아쉬운 구석들이 있다.

완변 외에서는 활동하지 않은 것이 후회됩니다.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안전한 장소를 믿고, 결국 아무 것도 하지 않는 사람이 되었네요. 역시 사람은 적당히 하고 싶지 않은 일도 했을 때, 하고 싶은 일을 열심히 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완변에 관심을 보였던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그 모두를 회원으로서, 아니면 최소한 지인으로서 남기지 못한 것이 아쉽다면 아쉬운 일이다. 나는 사람 욕심이 많은 인간이고 이 욕심이 가끔은 터무니없이 구리다는 것을 알면서도 어쩔 수 없이 갖게 된다. 후회는 욕망이 있어야 남는 법이니까, 아마 이게 가장 후회되는 일인 것 같다.

스스로를 폐쇄적으로 만들기 쉬웠던 것 같다. 이런 사람들을 자주 보니 이렇지 않은 사람들과는 관계맺는 법에 점점 서툴러졌다. 이 사람들이 주위에 없을 때엔 혼자있는 기분이 들곤 해 자주 서글펐다.

후회라고 할 것까지야 있나, 시간이 많았을 때 더 열심히 활동해야 했는데 하는 아쉬움 정도.

가장 원없이 이것저것 할 수 있었던 때에 더 열의를 갖고 하면 어땠을까. 그런데 내가 욕심을 갖기 시작하면 그게 더 안 좋은 결과를 만들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모두에게 조금 더 잘했다면 좋았을 것 같다. 우리가 다같이 있을 때. 어제도 만나고 내일도 만나던 때에. 대개 남한테 잘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이럴 시간에 하나라도 잘하면 될 텐데 쓸데없이 말로만 하는 소리다.

없음

취업준비하면서부터 열심히 하지 않은 것. 바쁘다는 것은 핑계인 것 같고, 운동에 큰 의미를 못찾으면서 술마실 때 정도만 완변을 찾은 것 같다. 그러다보니 활동과 관련해서는 나 자신이 발언하기도 조심해지고, 어느 순간 다른 사람들이 하는 활동에 숟가락만 얹는 형태가 되어 버린 것 같다. 좀 더 열심히 하면서 사람들의 활동을 지지해줄 수 있는 나였었으면 좋았을 것을 이라는 후회를 한다.

성소수자인권운동에는 비판이 너무 없다고 했다. 외부자로서 그 비판을 하는 게 완변 역할이라는 이야기도 했었다. 내가 성소수자인권 활동을 하게 되면서, 활동가들도 알게 되고, 어느새 내 활동이 성소수자인권운동이 되어버렸다.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단체도, 문제 제기를 받는 사람/단체도 내가 같이 활동해왔고, 앞으로도 만나게 될 사람들이었다. 이건 잘못이다라고 지적도 글을 쓰고 끝나는 것이 아니었다. 그러면 서운해할 만한 관계들이 어느새 만들어져 있었다. 얼굴을 마주하고 설득하고 조율하고 감정을 살펴야 했다. 외부가 아닌 내부자로서 비판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내가 무엇을 얻고 잃게 될지 생각해야 할게 너무 많았다. 그 모든 것을 받아들이면서 끌고 나가기에 나는 벅찼고, 언제부턴가 그런 일들에는 모두 외면했다. 그러다 보니 완변에서 몇 차례 성소수자 단체나 개인 활동가에게 문제제기하는 글을 검토할 때, 제대로 참여하지 않았다. 내가 할 만한 상태가 아니긴 했지만, 그때만큼이라도 더 적극적일걸. 후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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