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들지 않게

동성애는 내 자신과 관련해서 가장 받아들이기 쉬운 것이었다. 내 상태와 감정이 처음에도 좋았고, 개인적 특성상 국가나 사회규범의 박해를 받아서 더 근사하게 느낀 것도 있었다. 주체적인 욕망과 삶의 모습이라고 생각했다. 이성애는 관습과 제도가 압도해서 자유가 부족하다. 내가 동성애? 좋은데? 그게 첫인상이었고, 결혼한다는 상상을 단 한번도 해본 적 없는 것처럼 나에게 동성애? 그보다 자연스러울 수가 없었다.

처음 정체화하고 줄곧 바이인 채 살지만 그 자체도 불편한 건 크지 않았다. 성골 동성애자 아니면 토하는 사람도 없었고, 더 고약한 사람은 못 만났고. 바이혐오 발언이라는 것들은 한끝만 바꾸면 대체로 나는 좋아할 만했다. 바이박멸 의도가 아니라면야 날 레즈비언으로 묶어도, 내가 레즈비언을 좋아하고, 틀린 말 아니고(여자 좋아하는 사람) 별감정 들지 않는다. 대체로. 레즈비언은 여성 동성애자라고 배워놔서, 바이는 내 성별을 확정짓지 않으면서 내가 의미를 부여하는/할 상대의 성별도 확정짓지 않는 게 좋았고. 틀이 없는 게.

여성성소수자라는 테두리 안에 있는데 이건 복잡하다. 난 여성성소수자를 만나고 드러내는 활동을 하고 싶고, 당분간 하려고 한다. 해왔던 일이나 지금까지의 인간관계도 그 배경이고, 성소수자운동에서 하고 싶은 것과 할 수 있는 것을 겹쳐봤을 때 그 주제가 그랬고, 지금 필요한 활동이고, 또 내가 여자로 살기 싫은 성소수잔데 나 비슷한 사람들과 어울리는 방법이라서. 똑같지 않고 비슷한 사람들과. 근데 이게 넓은 젠더스펙트럼과 경험을 아우르는 말이 아니라 레즈녀, 바이녀, 호명하는 말로만 이용되는 건 별로고, 누누이 말하지만 내가 퀴어녀 되고 싶지가 않고.

사실 테두리 밖에 손바닥만한 땅도 없기 때문이다. 여자로 딱지붙지 않으면서 내가 여자로 살아야 하느라 겪은 것들을 규탄할 수 있기를 바라는데 그건 어디서도 되지 않더라. 그 내 행동조차 매순간 날 더욱 여자로 읽게 만들기 때문에. 성별을 분류하지 않은 상태는 곧 사람이 아닌 상태라서, 성인여자사람이 여자답기를 거부하면 사람 취급을 받기 어렵다. 촌스럽고, 나이값 못 하고, 사회성 떨어지고, 공격적이고, 예의 없고, 누구나 한소리 하고 함부로 대해도 되는 사람이 된다. 그 공격이 때로는 노골적으로 때로는 나조차 모르게 지속돼서, 내가 날 너무 많이 싫어하지 않으면서 요령 있게 살아가는 일이 힘들었다. 나도 아니고 내가 아닌 것도 아닌 채로 사는 건 다들 그렇겠지만, 그래도 분노가 마구 일 때가 있는데 그 분노가 해석될 수도 없는 분노라는 게 날 더 활화산으로 만들어.

지금은 휴화산, 이라서 문자로 옮길 수 있다. 남도 날 훑어보지 않고 나도 거울을 보지 않는 2019년. 내가 누구인지 생각하지 않게 된, 생각할 필요도 없다고 느끼게 된 2019년(이유는 모르겠지만). 드디어 30년간 내게 가장 힘들었던 건 내가 여자여야만 사람일 수가 있는데 그래서 나는 사람이 아니고 싶다는 바로 그 느낌이었다 고 남한테 말하고, 쓸 수 있는 것이다. 힘들지 않게.

/지난 달의 일기

Leave a comment

댓글 남기기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입력창은 * 로 표시되어 있습니다

This site uses Akismet to reduce spam. Learn how your comment data is processed.